<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18)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

2015.03.30 11:33:58 호수 0호

세금 안 내고 고급빌라서 '떵떵'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8화는 365억원을 체납한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이다.



고급 빌라가 즐비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A빌라는 한강변의 올림픽대로와 청담동 오솔길을 마주본 곳에 있다. 중세 영주의 성처럼 우뚝 솟아있는 A빌라는 지난 2월 기준 한 세대 전세가가 13억원을 호가했다.

지난 24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10대 여성 수십명이 SM엔터테인먼트 오피스 앞을 서성였다. 바로 옆 블록으로 걷자 A빌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수 연예인이 입주한 것으로 알려진 A빌라에는 의외의 인물이 거주하고 있다. 13년째 365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텨온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이하 이동보)이다.

고급빌라 거주

이동보는 2002년 11월부터 주민세 등 2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체납액은 42억62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동보는 2000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4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체납액은 322억3800만원이다.

이동보는 2010년까지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빌라를 자신의 주소지로 등록했다. 그러나 당국에 통보 없이 2011년 무렵 A빌라로 거주지를 옮겼다. 세금을 받으러 간 서울시38세금징수과 직원은 허탕을 쳐야했다. A빌라의 실소유주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둘째 부인으로 알려졌지만 이동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동보는 지난 1974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장녀 예리씨를 첫 아내로 맞아들였다. 결혼 중매자로 전해진 사람은 고 육영수 여사다. 이동보와 예리씨는 2005년 전후 이혼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는 명확치 않다. 2005년 11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예리씨는 남편(이동보)에 대해 "아예 (얘기를) 꺼내지 말라"라고 했다.

당시 예리씨와 이동보의 장녀 이모씨는 사업가로 변신해 대외활동에 주력했다. 같은 해 서울고법은 분식회계를 통해 대출금을 횡령하고 납품대금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동보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공공교롭게도 이 시기 둘 사이의 이혼이 결정됐거나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이후 기사를 보면 이동보와 예리씨가 이혼한 것으로 돼 있다. 이들의 이혼 사유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동보에게 징역 3년6월을 확정 선고한 대법원은 한쪽에서 면죄부를 내렸다. 분식회계 과정에서 과다 납부된 법인세에 대해 환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판결에 따라 코오롱TNS는 60억원을 절세할 수 있었다.

서울시 42억원 국세청 322억3800만원
월드컵 비리로 실형 벤처업체 고문 위촉

앞서 이동보는 900억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을 회계에서 누락하고, 당기 순이익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단기차입금을 부채로 보지 않고 기업 재무를 적정하다고 평가한 C회계법인은 부실감사를 이유로 법원에서 투자자(코오롱TNS CP를 매입한 상호저축은행·종합금융사 등)에게 배상 명령을 받았다.

관련 재판에서 이동보는 회사 직원을 통해 감사보고서에 부당 개입한 책임이 인정됐다. 당시 C회계법인은 '코오롱TNS가 6000억원 규모의 중국 관광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해 높은 매출 신장이 기대된다'라고 감사보고서에 적었다. 법원은 이 같은 문구가 투자자를 속이기 위한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코오롱TNS는 1988년 코오롱그룹에서 분리돼 나온 회사다. 자본금은 150억원으로 부도 직전 이동보의 지분율은 100%였다. 이동보는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인 고 이동찬과 이복형제 사이다.

하지만 코오롱그룹 측은 일관되게 "코오롱TNS는 코오롱과 아무 관계없는 회사며,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실제 두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내부 거래를 일절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코오롱TNS는 1969년 설립 이래 고속버스 운송사업 및 해외 여행사업을 주력 삼아 성장했다. 1988년부터는 사업 다각화를 꾀해 ▲자동차부품 업체인 일진금속공업 ▲인조피혁 생산업체인 대성합성화학 ▲에폭시 주조업체인 삼성특수화학 ▲석제품 제조업체인 세진대리석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차입금 규모가 1200억원에 달해 자본 잠식에 빠졌고, 금융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코오롱TNS는 '2002 한·일월드컵 기념품(휘장)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2002년 7월 코오롱TNS는 금융권에서 돌아온 37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했다.


월드컵의 열기가 식자 여의도 안팎에서 기념품 사업과 관련한 온갖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검찰은 즉각 이동보를 향한 수사에 착수해 기념품 비리는 물론 그의 수십억원대 횡령 혐의를 밝혀냈다. 당시 이동보는 자사 주식을 매입할 목적으로 1990년대부터 회삿돈을 빼돌려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

이동보가 법정 구속된 후 2000억원대 분식회계, 200억원대 배임·횡령 사건은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실형을 살고 나온 '회장님' 앞에 남은 것은 300억원 규모의 체납 세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동보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납세를 회피했다. 코오롱과 관련한 주식을 갖고 있다는 소문부터 부유한 생활을 즐긴다는 첩보까지 과세당국에 흘러들었다.

문제는 보험을 압류하는 등의 노력에도 이동보 명의의 재산이 더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동보는 출소 후 10년 가까이 체납자로 살고 있다.

이동보를 돕는 조력자가 여럿 있지만 그들의 책임을 묻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A빌라는 건물 관리인이 입구를 막아 접근이 어려웠다. 기자는 최근 이동보를 회사 고문으로 영입한 D사 실무자와 접촉해 해명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할 수 없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돈이 없다"

벤처업체인 D사는 "우리 대표님(이모씨)이 사적인 자리에서 이동보를 만나 고문직을 제의했다"라며 "고문료는 지급되지 않았고, 조직이 젊기 때문에 지식 공유 차원에서 부탁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보가 고액체납자인 것을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D사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덧붙여 D사는 "순수한 의도로 모신 것"이라며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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