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에 고통받는 탈북자들<탈북자 2인 생생토로>

2010.05.11 09:35:31 호수 0호

“천안함 뉴스만 봐도 온몸이 바들바들”

탈북자들이 떨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탓이다. ‘천안함’ 뉴스만 봐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여차하면 신변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암살 미수 사건까지 알려지면서 탈북자들끼리도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현재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의 땅을 찾는 탈북자 수는 매년 3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은 탈북에 성공해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신변 위협에 대한 불안감에 실명 공개를 거부한 탈북자 김모(44)씨와 이모(40)씨를 만나 그들의 고통을 직접 들어봤다.

천안함 북한 소행 의혹, 황장엽 암살 간첩 등에 새터민 가슴앓이
탈북자들과의 접촉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생활고 가중’  


“요즈음 탈북자들은 하루하루 초긴장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간혹 정부와 북한 간 대립각을 세울 때도 이 정도로 불안감이 엄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이후 북한의 테러 행각에 대한 안전문제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탈북 성공해
안심했었는데…



서울 영등포 한 찻집에서 만난 탈북자 김씨의 말이다. 김씨는 황장엽 암살 미수사건으로 간첩 2명이 붙잡힌 것에 탈북자들이 큰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같이 동행한 탈북자 이씨는 “간첩들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물론 그 동안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불순분자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이어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넘어온 우리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생활했다. 그런데 황장엽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이씨에 따르면 요즈음 탈북자들은 매우 예민하다고 한다. 위장간첩 체포 소식이 전해지면서 탈북자들은 심리적 정서적 압박감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동료를 믿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탈북자에게 쏟아지는 편견과 의심의 시선이 무척 힘겹다고 한다.

김씨는 “탈북자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어려운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데 천안함 사건과 위장간첩 사건으로 더욱 힘겨워 하고 있다”며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오직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내려온 우리들이 북한의 안전문제 위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탈북자들은 탈북 순간부터 심한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가뜩이나 탈북자들을 돕는 것도 쉽지 않는 상황에서 이 같은 사건들이 겹쳐 탈북자들의 고통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탈북자들은 사실 상당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며 “돈 때문에, 언어 때문에, 취업 장벽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정부에선 탈북자들이 초기 정착할 때 정착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예컨대 정부의 정착지원 사업 일환으로 전국 22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하나센터는 매년 3000명에 육박하는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교육시설과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그리움·돈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

김씨는 “하나센터에서는 3주간의 초기 집중교육과 1년 동안의 사후 관리를 통해 탈북자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그러나 생활 밀착형 도움을 주기에는 교육시설과 주거지의 거리가 먼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여성 탈북자들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에는 정부의 적절치 못한 대책과 우리 사회의 고질적 편견이 한몫 거들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김씨는 “요즈음 분위기도 심상치 않는 데다 일감마저 떨어져 고통이 증가하고 있다”며 “일자리도 잃고 신변 위협도 느끼고 불안감이 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강변했다.

김씨에 따르면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단기성과 위주에다 차별적이다. 가구별·개인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격증 취득 등 능력에 따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 탈북자의 경우 한국 여성들이 기피하는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요리·재봉·세공 등 분야가 그것이다.

탈북 때 정신적 두려움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요인도 있다. 이들은 그 요인으로 북한에서 가졌던 직업과 재능을 남한에서 살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여건을 꼬집었다. 북한에서 아무리 인텔리로 살았어도 남한에서는 남들이 꺼리는 ‘3D업종’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큰 좌절을 겪고 있다고.

이씨는 “여성 탈북자들이 가장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부정적 인식”이라며 “탈북자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히면 취업을 거부당하거나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 내몰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마디로 정착과정에서 받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어도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는 게 탈북자들의 신세”라며 “이것은 말만 대한민국 국민이지 3등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성토했다.

일감 잃거나 신변위협 느끼는 등 불안에 떠는 탈북자 급증
“죄의식·민생고·병마·브로커에 시달린다” 고통 호소
   

이씨에 따르면 여성 탈북자들의 또 다른 고통은 신체면역력 저하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다.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받은 정신적 두려움에서 오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고통을 누구한테 터놓지 못하는 속앓이에 더욱 고통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속병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위축되고 있다.

김씨는 사실 탈북자들의 고충을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악덕 탈북 브로커의 활개를 꼽았다. 실제 하나원에는 탈북자들이 3개월 동안 교육을 마치고 퇴소하는 날 그 앞에 악덕 브로커들이 진을 치고 있다. 탈북비용을 받기 위해서다. 심지어는 폭력까지 행사하기도 한다.

김씨는 “하나원을 퇴소할 때 탈북자들은 정착 지원금 600만원 중 절반인 300만원을 은행계좌를 통해 받는다”면서 “하지만 브로커들에게 탈북지원금을 내고 나면 한 푼도 손에 쥘 수가 없다”고 실상을 공개했다.


따돌림과 스트레스 장애
탈북청소년 탈선 러시

탈북자들이 죄의식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도 문제다. 이씨는 이에 대해 “탈북자들은 가족을 북에 남겨두고 떠나온 데 따른 죄의식으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처벌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남한에서는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다. 10대 탈북 청소년의 경우 심한 따돌림과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북한과는 전혀 다른 남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탈북 10대 청소년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며 수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면서 “때문에 남한에 도착한 뒤에도 기본적인 수학이나 읽기능력이 뒤떨어져 있고 여기에다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따돌리고 업신여기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탈선현장으로 빠지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탈북자들의 고통을 한가롭게 지켜볼 때가 아니다”면서 “정부는 탈북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외교력을 가지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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