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해외 원정 도박 실태 고발

2010.05.11 09:44:18 호수 0호

명품서비스에 한번, 본전 생각에 또한번 ‘폭삭’

`해외 원정 도박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때 일부 연예인들이 대중의 눈을 피해가며 도박을 하기 위해 선택했던 원정 도박에 일반인들까지도 빠져들고 있는 것. 특히 부유층들의 원정 도박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학원장, 공인회계사, 병원이사장 등 부유층의 원정 도박을 하다 적발됐다. 이들 가운데는 도박에 빠져 70억원에 가까운 재산을 탕진하고 중국집 종업원으로 전락한 사업가도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필리핀으로 원정 떠나 카지노 도박 일삼은 이들 대거 적발
공인회계사, 병원 이사장, 중견 기업체 대표 등 부유층 주류


필리핀으로 원정을 떠나 카지노 도박을 일삼은 부유층이 대거 적발됐다. 지난 3일 경기경찰청 외사범죄수사대는 2008년 6월부터 지난 1월까지 필리핀 앙헬레스시티 ‘발리바고’ 카지노에서 원정 도박을 한 31명과 이를 알선한 전당포, 불법 환전업자 6명 등 37명을 상습 도박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항공권에 외제차까지?
고급서비스로 유혹

이번에 적발된 원정 도박사범에는 공인회계사, 병원 이사장, 중견 기업체 대표, 고소득 자영업자 등 부유층 인사들이 주류를 차지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등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은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도박을 했고 가산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원정 도박에 빠져든 경로는 다양했다. 그 중 하나는 총책을 맡고 있는 브로커 김모(46·필리핀 체류)씨를 통해서였다. 김씨는 강원랜드 인근에서 여행사를 운영했는데 이 곳을 찾는 도박꾼들을 자연스럽게 해외원정도박으로 이끈 것이다. 또 하나의 경로는 강원랜드 인근에서 전당포를 운영하는 모집책을 통해서였다. 이들 모집책은 항공권, 호텔숙박권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도박꾼들을 유혹해 필리핀 행을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도 원정 도박을 광고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이밖에 필리핀 관광지에 온 한국인들에게 동포라는 점을 내세워 접근한 뒤 카지노에 발을 들이게 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도박꾼을 모집한 브로커 김씨 등은 필리핀 현지 카지노 2층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본격적으로 원정도박꾼들을 관리했다. 먼저 이들은 현지 카지노측과 ‘파코르시스템(PAGCOR: 필리핀 게임진흥사업부의 외국인 고객 카지노 유치 방안)’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뒤 한국인 고객이 30만페소(한화 700만원) 이상 도박을 하면 골프 부킹, 항공권, 호텔 숙박권, 고급차량 등 VIP급 편의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도박꾼들을 유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도박자금을 탕진해 도박을 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돈을 구해줬다. 자신들의 국내 계좌를 통해 송금, 환전하도록 하거나 현지에서 직접 현금을 빌려주며 도박을 계속 하도록 도와준 것.

이처럼 원정 도박꾼들이 도박에 많은 돈을 쓰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고객 시드머니(고객이 칩으로 환전한 금액)의 3%에 해당하는 수수료와 총 베팅금액의 0.5~1.5%에 해당하는 롤링 포인트를 받는 등 부수입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베팅에 비례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던 도박꾼들은 각종 술책에 넘어가며 하루하루 도박에 빠져들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원정 도박사범들은 보통 3박4일, 길게는 한달 동안 필리핀에 머물면서 도박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도박꾼들은 호텔 등의 VIP급 대우에 매료돼 필리핀 행을 멈출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카지노에서 한 게임은 ‘바카라’. 이 게임은 게임 방법이 쉽고 간단해 누구나 할 수 있는데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따거나 잃을 수 있는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다. 이 때문에 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카지노게임 중 하나다. 도박꾼들이 바카라게임에 들인 돈은 1인당 평균 4300만원. 많게는 3억원의 돈을 카지노로 잃은 도박꾼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중견기업 대표 전모(52)씨는 2008년 5월부터 최근까지 무려 25회에 걸쳐 필리핀으로 도박여행을 떠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가 도박으로 잃은 돈은 무려 2억원. 가져간 돈을 모두 도박에 탕진한 전씨는 모집책을 통해 국내에서 자금을 송금 받아 또 다시 도박에 빠져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도박으로 인해 인생 전체가 나락으로 빠져든 경우도 있었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던 나모(56)씨가 그 주인공. 경기도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나씨는 지난 2000년 10월 강원랜드를 찾았다가 바카라 게임에 빠졌다. 하룻밤에 그가 잃은 돈은 3000만원. 본전 생각이 났던 나씨는 다음날도 돈을 싸들고 강원랜드를 찾았다.

하지만 행운은 나씨에게는 오지 않았다. 몇 달 동안 하루 종일 도박에 빠졌지만 매번 잃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아내도 잃었다. 심장병이 있었던 아내는 나씨가 카지노에 발을 들인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한때는 70억대 자산가
도박 빠져 ‘철가방’ 신세

아내의 죽음도 나씨를 돌려놓지 못했다. 나씨는 그 후에도 매달 강원랜드를 찾았고 5~6년 만에 전 재산 70억원을 날렸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살시도까지 한 나씨. 그러나 목숨 줄을 놓을 수는 없었던 나씨는 중국음식점 종업원으로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카지노에서 영원히 손을 뗄 거라 자신했던 나씨. 하지만 최근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도박판에 들어갔고 이번 경찰조사에 적발됐다.
한편 경찰은 필리핀 현지로 달아난 브로커 김씨 등 3명의 검거를 위해 현지 경찰에 공조수사를 요청하고, 조사과정에서 필리핀 카지노에 출입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돼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부유층들의 원정 도박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져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마카오에서 100억대의 도박을 한 부유층들이 적발돼 파문을 낳았다. 이들은 환치기를 통해 거액을 해외로 빼돌려 도박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권모(45)씨 등 도박 알선조직 ‘롤링에이전시’ 직원들은 2008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중국 마카오 현지에서 중소기업 대표인 강모(47)씨 등 20명을 카지노에 알선하고 카지노 측으로부터 베팅금액의 1% 상당을 수수료로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호텔숙박, 고급 외제차 등 VIP급 서비스 유혹에 돈 펑펑
70억 탕진하고 음식점 종업원 신세 …무서운 도박 중독


강씨 등 도박 사범들은 롤링에이전트의 안내에 따라 마카오 지역 카지노를 전전하며 도박을 해 1인당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결과 마카오 현지 도박 알선 조직은 한국인 도박꾼을 도박판에 끌어들이기 위해 강원랜드 출신 한국인 에이전트를 영입한 뒤 부유층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에이전트는 항공권, 호텔사용료 할인 등의 특전을 걸고 부유층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벤츠 등 고급차량과 통역서비스 등 각종 고급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환심을 사 카지노로 끌어들였다. 주요 고객층이 부유층의 저명인사인 탓에 ‘확실한 신분보장’도 내세웠다. 도박을 하더라도 절대 신분이 들통 날 염려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

또 도박 알선 조직은 환치기 업자들과 손을 잡고 고객들이 도박 자금이 떨어지면 환치기를 통해 자금을 조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최근 해외 원정 도박에 발을 들이는 부유층들은 대부분 해외 카지노업체와 한국인 에이전트들이 만든 덫에 걸려 돈과 명예를 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번 빠지면 쉽게 끊을 수 없는 도박의 중독성에 있다. 매일 도박장을 찾아 수천만원의 돈을 잃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는 절대 도박중독자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박을 끊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난 도박 중독 아니야”
자신하는 사이 나락으로

그러나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폐인의 길로 한 발자국씩 걸어들어 가는 것이 도박의 위험성이다. 한국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는 도박중독자가 되는 진행과정을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그 중 1단계는 ‘따는 시기’다. 이는 자신의 수입에 비해 매우 큰돈을 따면서 도박으로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에 빠지는 시기다. 도박에 대한 강한 흥미가 생기는 것도 이때다. 물론 돈을 잃을 때도 있지만 도박자들은 딴 것에 대해서만 회상하는 경향이 있고 잃은 것에 대해서는 부정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힘든 노동활동 없이 큰돈을 한 번에 거머쥐어 본 경험은 도박장으로 걸어가는 걸음을 가볍게 할 수 밖에 없다. 2단계는 ‘잃는 시기’다. 도박으로 돈을 딴 경험만을 떠올리다가 자신이 돈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때다. 이때 도박 중독자들은 도박을 중단하지 않고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잃게 된다.

마지막 3단계는 ‘절망의 시기’다. 이 시기에 도달한 도박자들은 이성적·도덕적 판단을 하지 못한다. 도박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도 이 시기다. 도박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 행동이 다음의 큰 승리를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이라고 합리화한다. 재산을 잃어가면서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이를 지키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마약 중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힘으로 도박을 조절하지 못하고 조울증, 공황장애 등의 정신장애로 고통 받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도박의 강력한 중독성은 두뇌 반응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병이라고 할 수 있다”며 “스스로 도박을 끊기 어려운 만큼 의사나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