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대란' 신풍속도 천태만상

2015.01.26 10:16:06 호수 0호

이 눈치 보고 ‘뻐끔’ 저 눈치 보고 ‘뻐끔’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연초 건대역 근처 넥타이 부대가 동전을 짤랑짤랑 거리며 가판을 향해 걸어온다. 동전 박스로 보이는 곳에 100원짜리 3개를 던져 넣고 담배 한 개비를 집는다. 고무줄에 묶여있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곤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갓 지어진 흡연부스가 있지만 들어가 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무리 속에는 전자담배를 목에 걸고 물고 있는 사람, 옆구리가 터진 DIY(Do It Yourself)담배를 맛있게 피는 사람 등 다양했다. 

  


연초 정부는 담뱃값 2000원 인상, 모든 음식점 금연구역 지정, 과태료 확대 등 강력한 금연정책을 세우고 있다. 끽연가들에게는 혹독하기만 한 겨울이다. 열악해진 흡연권 속 애연가들은 까치담배, 전자담배, DIY담배 등을 찾으며 스스로 흡연권을 찾아 나섰다. 앞으로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가판을 가거나, 전자담배를 물거나, 손수 말아 피우는 등 다양한 풍경이 연출될 전망이다. 금연구역 전면 확대로 인한 흡연부스 등장, 격동하는 금연정책으로 현재 진행 중인 담배의 천태만상을 집어본다.  
 
[까치담배 재등장]     
 
편의점이나 길거리 노점상에서는 까치담배가 재등장했다. 담배 포장을 풀어서 낱개로 파는 건데, 원래는 불법이다. 담배사업법상에서 담배는 포장 상태 그대로 정해진 가격으로 팔게 되어 있다. 담배 한 갑이 4500원이며, 한 개비당 300원에 판다면 개비당 80원 더 붙여서 파는 거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일용직이나 노인들이 주로 찾지만, 광화문 직장인들도 많이 찾고 있다. 까치담배는 너나없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7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이 때문에 담배 풍속도도 유신시대로 회귀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불티나는 전자담배]
 
온라인 쇼핑사이트들에 따르면 지난달 담뱃값 인상을 한 달 앞두고 전자담배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 17배 정도가 늘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자담배도 유해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매우 많다. 보건복지부가 조사 결과 전자담배 속에도 니코틴,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기타 여러 가지 환경호르몬들이 많이 검출됐다.
 

또 진짜 담배를 피울 때보다 니코틴 중독이 더 심화 될 수도 있으며, 구체적으로 이 제조물 안에 어떤 물질이 들어가는지 명확하게 규제되고 있지 않아서 유해물질이 더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직장인이 가죽 목걸이에 전자담배를 꽂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 인기가 흡사 패션 아이템으로까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DIY’ 담배시대]
 
인터넷상에는 직접 담배를 만들어 피우자는 DIY 담배도 등장했다. Do It Yourself, 담배 농가에서 직접 담뱃잎을 사서 서류분쇄기로 담뱃잎을 잘게 자른 후에 롤링머신을 이용해서 담배를 직접 말아 피우면 된다. 현행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외부에 판매하지 않고 자기가 피울 목적으로 집에서 담배를 재배해서 담배를 만들어 피우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야박해진 담배인심]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기쁜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군가 ‘전우’의 한 대목이다. 군가의 가사에도 등장할 만큼 그동안 우리나라 끽연가들의 담배 인심은 후한 편이었다. 길에서 낯선 사람의 요청에도 선뜻 내주던 담배 한 개비인데 하물며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전우에게 주는 한 개비 담배가 아쉬웠을까. 하지만 새 해 들어 담뱃값이 대폭 인상되며 담배 한 개비 빌리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직장인들은 요즘은 회사 동료들에게 담배 한 대 빌려달라고 말하기도 겁난다고 밝혔다. 한 직장인은 “사실 예전에는 담배가 떨어지면 몇 대 얻어 피우고 한 갑으로 갚는 광경이 흔했는데 이제는 빌리기도 빌려주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며 "연말에 미리 사둔 담배가 몇 갑 남았는데 금연은 쉽지 않을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내쫓긴 흡연자…거리서도 범죄자 취급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찬밥신세’
 
사실 한 갑에 4500원 하는 담배 한 개비의 가격은 200원이 조금 넘는 정도. 물론 개비 당 100원 꼴이던 전보다는 큰 폭으로 인상 됐지만, 사실 동료와 나누기에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즐기던 기호품의 가격이 갑자기 100% 가까이 인상됐다는 점에서 애연가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은 생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
 
또 한 쪽에서는 새해라는 특수성으로 금연 클리닉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금연초, 금연 패치 같은 금연 보조제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금연클리닉은 작년보다 세 배 정도, 금연 보조제 시장은 9배 정도 증가했다. 월동준비형, 사재기파, 담배 난민족 등과 같이 흡연하기가 어려운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손님 대이동]
 
올해부터 전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 커피 전문점과 음식점, 술집의 주인들은 반으로 뚝 떨어진 매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반면, 금연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스크린 골프장, 유흥주점, 당구장은 갈 곳 없는 담배 난민들의 쉼터로 뜨겁게 사랑받고 있다고. 아예 ‘흡연 가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적극적인 흡연 마케팅으로 성업 중이다. 
 
이 때문에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등은 ‘흡연자 천국’으로 떠올랐다. 편히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들이 사라지면서 흡연이 가능한 이곳 소규모 체육시설들로 흡연자들이 몰렸다. 흡연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일부 PC방과 카페, 술집 등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조적인 모습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민들의 수용성 등을 고려하다보니 음식점 등과 달리 이곳은 시행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잔혹사]
 
현형 법상 금연구역에서 흡연 시 과태료 1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흡연 과태료 확대로 현재 자치구나 자치단체장의 의지로 금연 단속을 철저히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흡연자들의 항의가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흡연하는 구민들도 유권자인 만큼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흡연자들은 자유롭게 담배를 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고심 중이다. 일부 자치구에선 실외 흡연 부스를 설치하거나 검토 중이지만 서울시와 대다수 자치구는 '금연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광진구는 지난 12월 유동인구가 많은 건대입구역 2번 출구와 강변 동서울터미널 호남선 2곳에 실외 흡연부스를 설치한 뒤 시범 운영 중이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15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오전 5시 30분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개방된다. 광진구 관계자는 “아무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 마찰과 민원이 많았다”며 “비흡연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흡연공간을 별도로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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