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가의 어머니 명계춘 여사가 타계했다.
두산그룹은 지난 16일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부인인 명 여사가 오전 4시40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5세.
명 여사는 1913년 서울 출신으로 숙명여고를 졸업한 지 두 달 만인 1931년 5월 박 초대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박 초대회장은 두산그룹 모태인 ‘박승직상점’을 세운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으로, 당시 경성고상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양가에서 혼담이 오가던 중 숙명여고 정구선수였던 명 여사가 전국여자연식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본 뒤 결혼 결심을 했다고 한다.
명 여사는 박 초대회장이 동양맥주를 창립하고 대한상의 회장을 지내는 등 국가경제 발전에 주력하는 동안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내조와 자식교육에 전념해 강한 정신력과 포용력을 갖춘 ‘현모양처 표본’이란 평가를 받아 왔다.
1973년 박 초대회장이 타계한 뒤부터는 두산가의 ‘정신적 지주’로서 가풍인 근검절약과 인화의 정신을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전수해 왔다. 명 여사는 두산그룹이 창업 1백주년을 맞은 1996년 8월 경기도 광주시 탄벌동 선영에 세운 창업 1백주년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한 데 이어 2005년 4월엔 박 초대회장이 인재양성을 위해 만든 ‘DLI-연강원’의 리모델링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명 여사가 타계하면서 두산 오너 일가가 모처럼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명 여사는 박 초대회장과 사이에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용욱 이생 회장 등 슬하에 6남1녀를 뒀다.
이들은 이날 낮 12시부터 서울대병원에서 모친인 명 여사 빈소를 차려놓고 문상객을 맞았지만,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두산 일가는 2005년 7월 박용오 회장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의 비자금 건을 검찰에 투서하면서 불거진 ‘형제의 난’으로 형제 간 법적 분쟁에 휩싸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