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분석]신울진 원전 입찰 6대 의문점

2010.03.23 09:14:39 호수 0호

별들의 ‘수주 전쟁’ 의혹·허점투성이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전쟁’으로 관심을 모은 신울진 원전 입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게 탈락업체들의 주장이다. 건설업계에선 이 틈새로 이런저런 ‘설’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실정이다. 신울진 원전 입찰을 둘러싼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1조4000억 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 공정성 두고 잡음
‘이랬다 저랬다’자격기준, 입찰방식 등 수시로 바꿔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신울진 1·2호기 원자력발전소 주설비공사(건설공사) 입찰에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최종 낙찰자로 선정했다.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신울진 1·2호기 공사 입찰엔 입찰자격 사전심사(PQ)를 통과한 현대(현대건설·SK건설·GS건설)와 대우(대우건설·두산중공업·포스코건설), 삼성(삼성건설·금호산업·삼부토건), 대림(대림산업·동아건설·삼환건설) 등 4개 컨소시엄이 맞붙었다.

치열한 경쟁 왜?



이번 입찰이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 전쟁’으로 관심을 모은 이유다. 이중 현대건설(지분 45%)을 대표사로 SK건설(30%)과 GS건설(25%)이 참여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 끝에 예정가격의 81.4%인 1조909억원에 응찰해 입찰금액 적정성 심사를 거쳐 최종 낙찰자로 결정됐다.

현대건설은 신고리 1·2·3·4호기 시공 대표사로 참여하는 등 국내에서 가동되는 원전 20기 가운데 12기를 시공한 바 있다. 발전용량 1400㎿급의 신울진 1·2호기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되는 한국형 원자로 ‘APR1400’모델과 같다. 따라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향후 ‘한국형 원전’수출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신울진 1·2호기 공사는 다음달 부지 정지공사에 착수해 각각 2016년 6월과 2017년 4월 준공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연쇄 부도설이 나도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건설업계에 대형 프로젝트 신울진 원전 1·2호기 공사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은 사업”이라며 “국내 내로라하는 공룡 건설사들이 모두 입찰에 참여한 만큼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앞으로 수천조원에 이르는 국내와 해외 원전 공사가 줄줄이 예정돼 있어 이번 공사 수주의 의미가 컸다”며 “건설사들은 우선 국내에서 수주 실적을 쌓아야 향후 해외사업 수주에 유리하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입찰에 나섰다”고 전했다.

9차례 유찰 왜?

그러나 탈락한 업체들이 반발했다. 신울진 원전 입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있는 것.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게 탈락업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이후 10차례에 걸쳐 유찰될 때부터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했다”고 지적했다. 입찰이 끝난 뒤 탈락 업체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가격과 기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공개경쟁입찰’로 진행된 신울진 원전 1·2호기 입찰은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4월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최종 낙찰자가 선정된 지난 15일까지 무려 10번이나 유찰되는 진통을 겪었다. 한 번씩 유찰될 때마다 “공정성과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입찰자격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은 게 초기 유찰 이유였다. 한수원은 급하게 자격조건을 완화해 다시 입찰을 진행했으나 이번엔 저가 입찰이 발목을 잡았다. 예상 사업비가 1조4000억원인데 건설사들이 이를 훨씬 밑도는 가격을 써낸 것. 심지어 9000억원을 써낸 회사도 있었다.
한수원은 “가격이 너무 낮으면 안정성 등 시공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유찰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고장 왜?

전자입찰 시스템에 장애가 생겨 입찰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자입찰에서 현장입찰로 입찰 방식이 바뀌었다. 한수원은 당초 10일 오후 3시까지 전자입찰 방식으로 신청을 접수받은 뒤 접수마감 당일 낙찰업체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입찰 심사를 앞두고 갑자기 전산 시스템이 고장 나자 직접 현장에서 신청을 접수받은 다음 낙찰자를 발표하는 현장입찰로 입찰 방식을 변경했다. 한수원은 업체들이 바뀐 입찰 방식에 이의를 제기해 한때 재입찰을 검토했지만 “자체 법률 검토 결과 문제가 없다”며 지난 15일 낙찰자 선정을 강행했다.
한수원은 “입찰 과정에 대해 외부 법률 및 계약전문가의 참여하에 종합 검토, 심의를 거친 결과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산 시스템이 고장 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수원은 단순 오류라고만 둘러대고 있다.
한수원은 “지식경제부 사이버보안센타에서 전산자료를 넘겨받아 곧바로 조사에 착수한 결과 과부하에 따른 단순한 전산 프로그램 오류로 판명됐다”며 “입찰 참가 업체의 전산담당자들에게 전산장애 원인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해킹 의혹이 일고 있다. 이는 한 건설사가 특정업체의 고의적인 해킹으로 전산시스템이 고장 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여기에 돌연 전산 프로그램이 다운됐다는 점이 해킹 의혹을 키웠다.
한수원은 “해킹은 없었다”란 애매한 말만 반복할 뿐 갑자기 접속자들이 많이 몰린 이유 등을 속 시원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입찰가 수정 왜?

한수원의 전산 프로그램이 돌연 다운된 것은 입찰 제안서 마감일인 10일 오후 12시께다. 한수원은 부랴부랴 마감을 오후 3시로 연장하고 온라인 입찰이 아닌 현장 입찰로 방식을 변경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개찰이냐, 재입찰이냐’를 두고 고민하다 결국 15일까지 시간을 질질 끌었다. 이 과정에서 입찰 정보 유출 우려가 새어나왔다.
특히 한수원이 현장 입찰에서 일부 컨소시엄이 입찰 가격을 수정하도록 허용해 공정성 시비를 증폭시켰다. 한수원은 입찰 당일 4개 컨소시엄이 모인 자리에서 “입찰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존 전산입찰 때의 내용을 수정할 수 있다”고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부업체는 전자입찰 때와 다르게 적어내는 등 입찰 가격을 수정해 제출했다.

지난해 4월부터 10차례나 유찰
전산시스템 고장…오류? 해킹?


최저가 입찰방식이 적용된 이번 입찰에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4개 컨소시엄 중 가장 낮은 가격인 1조909억원을 써내 공사를 땄다. 차순위인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1조910억원을 적어내 고배를 마셨다. 1조원이 넘는 공사가 불과 1억원 차이로 당락이 갈린 것이다.
건설업계에선 “1조원이 넘는 공사에 1억원 차이로 갈린 것은 드문 일”이란 의견과 “작은 금액 차이로 낙찰자가 결정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순순히 승복 왜?

이번 입찰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난무하자 입찰 직후 업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갖가지 의문도 이들 업체에서 모두 흘러나왔다. 나아가 일부업체는 입찰 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적지 않은 후유증과 파장이 예상됐다.
한 탈락업체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에 따라 대응 수위를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들의 불만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삼성, 대우, 대림 컨소시엄이 입찰 결과에 승복한 것. 법적 대응 얘기도 쏙 들어갔다.
탈락 업체들의 입장 변화는 정부를 상대로 강경 대응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2호기 말고도 다른 원전 건설공사 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건설사로선 한수원 등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한수원은 올해 신울진 원전1·2호기에 이어 내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2012년 신울진 3·4호기 등 매년 원전건설공사를 발주할 예정이다.
신고리 5ㆍ6호기의 경우 준공일이 각각 2018년 12월, 2019년 12월이다. 발주에서 건설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5∼6년인 점을 감안할 때 2011∼2012년 입찰이 예상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에서만 18∼20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또 2030년까지 원전 80기를 수출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발주하는 원전 물량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 입찰 결과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미운털이 박히면 수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귀띔했다.

지경부 발뺌 왜?

‘나몰라라’하는 지식경제부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신울진 1·2호기 건설은 엄연한 국책사업이다. 총 사업비 6조2981억원, 동원 인력만 연인원 기준 약 620만명에 달하는 초대형 건설공사다. 건설 과정에서 소요되는 정부 예산도 만만찮다. 약 8605억원의 지원 사업비가 들어간다. 지역경제개발세 명목으로 6600억원가량의 재정 지원도 예정돼 있다. 원전건설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투자되는 정부 예산은 총 1조8600억원을 웃돈다.

원전산업을 관할하는 소관부처는 지식경제부다. 그러나 지경부는 신울진 1·2호기 입찰 논란이 거세지자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경부는 입찰 과정의 허술한 관리와 이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신울진 원전 사업은 지경부와 관련이 없다. 한수원이 책임지고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라”는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말 UAE 원전 수주, 지난달 터키 국영발전사와의 원전사업 협력 공동선언문 채택 당시 ‘떵떵’거린 것과 전혀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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