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말년에 체면 구긴 박희태 전 국회의장

2014.09.22 10:32:44 호수 0호

만지긴 만졌는데 성희롱은 아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 장본인이자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76) 전 국회의장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골프장 캐디 A씨의 신체 부위를 수차례 만진 게 알려지면서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박 전 의장은 “손녀 같아서 귀엽단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불렀다.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말년에 먹구름이 제대로 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께 강원도 원주의 한 골프장에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캐디 A씨의 신체를 함부로 만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다음날인 12일 해당 골프장 측은 “전날 오전 8시30분 박 전 국회의장을 포함한 남자 2명과 여자 2명이 라운딩을 시작했고 9번째 홀에서 라운딩을 함께하던 A씨가 캐디 마스터에게 교체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골프장 측은 9번째 홀에서 A씨를 다른 캐디로 교체했다. 골프장 측은 “교체 요청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데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며 “자문변호사를 통해 A씨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가슴 한번 
툭 찔렀을 뿐“
 
김 전 의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A씨의 동료들도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개하는 상황이다. A씨의 동료 B씨는 “어제 ‘동료가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문이 골프장 전체에 퍼졌다”며 “제대로 된 경찰 조사가 이뤄져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몇 년 전에 내가 모시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행실이 과히 좋지 않았다”며 “캐디 동료들 사이에서 기피 고객으로 소문이 났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장은 사건 당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날 밤 A씨를 다시 만나는 등 적극적으로 수습을 시도했지만, 이룬 것이 없었다고 전해졌다.
 

A씨는 성추행을 당한 다음날인 12일 오후 3시30분께 원주경찰서를 찾아 자신이 당한 피해신고를 접수했고, 피해자 진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피해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박 전 의장은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박 전 의장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경찰 관게자는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는 상관없다.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상당한 정황과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수사를 맡은 강원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16일 박 전 의장을 피혐의자(피내사자) 신분으로 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박 전 의장은 10일 이내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박 전 의장이 출석요구에 응할 때 까지 2차, 3차 출석 요구서를 추가로 발송할 계획이다. 경찰은 골프장 측 등 참고인 조사까지 완료한 상태다.
 
또 경찰은 박 전 의장의 소환조사 이후 정식 입건할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6월부터 성범죄 친고죄 조항이 폐지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해도 수사기관이 인지해 처벌에 나설 수 있게 된 점도 입건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골프장 캐디 추태 일파만파
궁색한 해명에 비난의 화살 
 
지난 14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남윤인순)는 성명을 통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다”며 “세월호 사고와 국회 파행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집권여당의 상임고문은 골프나 치고, 성추행 사건까지 일으키고 있다. 집권여당의 정국 상황 인식 수준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다음날 정의당 김제남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번 일이 수없이 반복돼온 새누리당 관련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4대악을 척결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성추문 파문이 연이어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뻔뻔한 해명
 
17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을 통해 “박희태는 ‘손가락 끝으로 가슴 한 번 툭 찔렀다’ ‘귀엽다는 수준에서 터치’ ‘등허리나 팔뚝을 만진 것은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싶다’고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때 한 번만 싫은 표정을 지었으면 그랬겠냐. 전혀 그럼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나타낸 일이 없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박 전 의장을 비판했다.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그간 정치인은 자신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친밀감의 표시였다’고 발뺌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또한 사건 처리과정에서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그 결과 유야무야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19일 새정치민주연합은 허영일 부대변인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한다’며 논평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의 우발적 행동보다 골프 치면서 홀마다 성추행을 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님의 죄질이 더 무겁다”면서 “박희태 전 의장의 행적과 언행에는 증거인멸의 가능성도 농후하기 때문에 경찰은 박 의장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해야,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사건에 대해 법의 원칙적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경찰의 과잉의지와 정권 눈치보기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도 지친다”며 “개미지옥을 파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개미귀신을 보는 것 같다”고 힐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사건 발생일부터 현재까지 박 전 의장의 성희롱 고소 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박 전 의장 캐디 성추행 논란은 부끄럽게도 외신을 탔다. 미국의 국제적인 골프뉴스 사이트 <골프뉴스넷>이 지난 14일 ‘한국 유명 정치인 여성 캐디 성추행 혐의’라는 제목으로 박 전 의장의 얼굴과 함께 성추행 소식을 올렸다고 외신전문사이트 <뉴스프로>가 18일 전했다. <골프뉴스넷>은 인터넷 뉴스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미국에 2600만명, 해외에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에게 서비스하는 사이트다. <골프뉴스넷>은 박 전 의장이 2012년 당권다툼에서 동료 당원들을 매수한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덧붙였다.
 
박 “싫은 표정 아니었다” 
캐디 “홀마다 더듬었다”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살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전당대회 직전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을 통해 같은 당 고승덕 전 의원실에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 1심과 2심에서 모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해 박 전 의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 특별사면을 받았다.
 
박 전 의장이 돈봉투를 뿌린 사실이 알려지게 된 건 고승덕 전 의원이 <서울경제>에 ‘로터리 칼럼’을 쓰면서부터였다. 그는 칼럼에서 “한번은 전당대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필자에게 봉투가 배달됐다. 어느 후보가 보낸 것이었다. 상당한 돈이 담겨 있었다. 필자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소신에 따라 봉투를 돌려보냈다. 필자는 어차피 그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 후보에게 투표했다.
 
문제는 그 후 벌어졌다. 당선된 후보가 필자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싸늘했다. 이상했다. 지지했는데 왜 그렇게 대할까. 정치 선배에게 물어보니 돈을 돌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며 “지금까지도 그 선배의 냉대는 계속되고 있다. 필자에게 죄가 있다면 당내선거에서 돈을 말없이 돌려주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몰랐던 점”이라며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문제점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고 전 의원의 말은 여의도 정가에서는 대부분 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다.


한나라당 간판 바꾼
돈봉투 사건의 주범
 
박 전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2008년 친이계는 실제로 자신들을 대표할 인물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가 박 전 의원을 공식후보로 추대했고, 그해 전당대회에서 친이계의 지지를 받은 박 전 의장이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됐다. 300만원 돈봉투를 전달한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박 전 의장이 당 대표가 되자,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박 전 의장 돈봉투 사건은 당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혁신 작업에 매진하던 새누리당에게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다. 박 전 의장은 국회의장 신분으로 무당적 신분이었지만 새누리당에서 6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당 대표까지 역임했다. 이를 두고 ‘친이계(친이명박) 죽이기’라는 당내 논란까지 겹치며 해묵은 친이-친박 계파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달았었다.
 
때문에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즉각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등 박 전 의장의 ‘결자해지’를 바랐지만 통하지 않았다. 당시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 전 의장은 “문제가 된 이 사건은 4년 전의 일이다. 저는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 제기됐던 ‘국회의장 사퇴 요구’도 일축했다. 그저 총선불출마 입장만 밝혔던 것이다.
 
6선 의원에 국회의장
돈봉투 파문으로 망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국회문제이므로 여야 원내대표들이 조속히 현명하게 처리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누리당이 약속했던 정치쇄신에 역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새누리당은 박 전 의장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면서 당의 ‘어른’으로 모셨다. 정치쇄신 역행의 꼭지점을 찍었던 것. 이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개정한 당헌·당규나 윤리강령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새누리당 당원규정 7조는 ‘공사를 막론하고 품행이 깨끗한 자’ ‘과거의 행적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지 아니하는 자’로 당원자격심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정경선 의무를 명시한 윤리강령 13조에는 “당직 또는 공직후보자 경선에 출마하는 자는 공정한 경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며”라며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할 행위 첫 머리로 올려놨다.
 
박 전 의장은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3회 고등고시 법학과에 합격해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그는 1988년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에 영입돼 고향 남해군이 포함된 남해군·하동군 선거구에 출마해 제13대 국회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초선 때인 88년 12월부터는 당 대변인을 맡아 4년3개월간 직을 수행했다. 대변인 시절에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의 정치 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으나, 이중국적을 가진 딸이 이화여대에 특례입학 혜택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돼 장관 취임 10일 만에 사퇴했다.
 
같은 해 말부터 94년 초 사이에는 당시 민주당 김원웅 의원이 여야의원 137명의 서명을 받아 반민법의 취지를 이어받은 ‘민족정통성회복특별법안’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강력한 저항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었던 김 전 의장이 완강히 심의를 거부해 아예 상정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 9단이…
순식간에 몰락
 
14, 15, 16, 17대 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면서 국회 내 입지를 굳혀간 그는 17대 시절에는 국회부의장직도 수행했다. 5선을 기록한 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중진의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4월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정몽준 의원을 제치고,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경남 양산 재출마를 선언으로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2009년 10월28일 양산 재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내세운 친노 후보 송인배에게 쫓기며 고전하다 3000여표 차(3만801표(38.1%), 송인배 2만7502표(34.1))로 가까스로 당선되면서 6선이라는 진기록을 세웠고, 당내 입지를 확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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