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세종시 정국’에 밀려 큰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간 기 싸움이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세종시 공방’ 이외에 ‘무상급식’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세종시 블랙홀’에 빠져 별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친이·친박 갈등이 고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야권은 더욱 소외되고 있는 상황인 것.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무상급식’이라는 카드를 내밀면서 정치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세종시 정국, 6·2 지방선거 이슈 잠식
민주 ‘무상급식’으로 한나라 뒤통수 쳐
민주당이 지난달 18일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을 전면 도입하겠다는 당론을 확정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지방선거 주요 이슈로 부상한 ‘무상급식’ 정책을 두고 여야가 날카로운 신경전을 시작한 것이다. 다음날인 19일 한나라당 조해진 대변인은 ‘민주당의 초·중등학교 무상급식 전면 도입’에 대해 “각 학부모와 학생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전면무상급식은 결과적으로 반서민적인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밝혔다.
민주당, ‘무상급식’카드로 허 찔러
그러면서 “급식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서민들이나 중산층 가운데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당연히 지원돼야 한다”면서도 “형편이 넉넉하고 지원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력으로 급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유 있는 가정,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에게까지도 무차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부자급식’이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여유가 있는 가정, 부유한 가정은 스스로 급식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며 “오히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서민이나 중산층 가정들, 자녀들을 돕는데 급식을 비롯해 여러 가지 교육여건이나 환경을 개선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진정으로 친서민정책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공격에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그러면 부자 자녀들은 맛있는 도시락 먹고, 돈 없는 서민 자녀들만 따로 모아서 공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냐”며 즉각 반격했다.
그러면서 “밥을 먹이겠다는 것인가, 학생들을 차별화해서 망신을 주겠다는 것인가”라며 “도대체 이런 비교육적이고 천박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한나라당의 본질이 의심스럽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 고작 유람선이나 띄우려는 4대강 사업은 괜찮고, 어린 학생들 무상급식은 왜 안 된다는 것이냐”며 “부자감세라고 깎아 준 종부세만 모아도 학생들 무상급식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확정하자 야권 후보들은 앞 다퉈 ‘무상급식’을 주요 정책공약으로 선언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이계안 전 의원은 지난달 19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23조원 부자감세를 하지 않고, 종부세 등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의 극히 일부로 전국 모든 초·중고학생들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노회찬 당대표도 지난달 21일 무상급식 확대 문제와 관련, “급식복지에 무관심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신속히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무상급식의 빈부 선별 적용은 ‘아이들에 대한 창피주기 복지이자 낙인찍기 복지’의 전형”이라며 “이런 복지는 복지라고 볼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선병렬 민주당 대전시장 예비후보도 지난달 24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정책발표회를 통해 전면적 무상급식을 공약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후보와 정당의 공약에 대해 찬반을 힘주어 말하는 것은 분명한 선거개입이며 관건선거”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야권의 ‘무상급식’ 공격에 정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모 의원은 25일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 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지만 원희룡 의원이 치고 나오면서 구도가 복잡해 졌다”며 “당내의 내부 입장을 조율하기도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무상급식 전면도입에 대해 정부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부담능력이 있는 사람까지 일률적으로 급식비를 지원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 최저생계비 130% 이하 저소득층자녀 101만명과 전체 농어촌 학생 96만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무상급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내부 이견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시장 후보에 나서고 있는 원 의원은 초등학교 무상급식 전면도입을 주장하는 반면 오 시장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무상급식에 찬성하면 원 의원을, 반대하면 오 시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경기도의 경우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교과위원장이면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이종걸 의원과 진보성향의 김상곤 경기교육감을 상대해야 하는 경기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찬반 양론이 갈린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한나라, ‘어찌하오리까?’ 딜레마
교과위 소속 한나라당 한 의원은 “세종시 정국으로 인해 지방선거가 별다른 이슈가 없다가 무상급식 카드가 나오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같은 사안이 돼 버렸다”며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정치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김진영 강원대 교수는 칼럼을 통해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판단으로,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면서 “학교급식 제도는 교육과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하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급식은 북유럽의 소수 국가를 제외하고는 실시하는 국가가 없다. 즉, 학교급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가족의 경제적 처지에 따라서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