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연이은 사망사고 <무슨일이>

2010.03.02 13:03:43 호수 0호

“노동자 죽어나가는 조선소 사업장 퇴출하라!”

조선업계에 연초부터 곡소리가 가득하다. 올 들어 이미 7명의 노동자가 조선소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사망 원인은 추락사, 질식사, 폭발사고 등 다양하지만 일부 사업장에선 정확한 사인조차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에 업계 일각에선 회사측의 안전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계 노조측은 노동부가 조선소의 ‘자율안전보건관리’ 정책을 폐지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SLS조선·STX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줄초상
올 들어 7명 사망 … 추락·실족·질식사 등 안전 관리 부주의 원인


지난 10일 경남 진해에 위치한 STX조선해양에서 군함 외부 족장(발판) 해체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조모(33)씨가 바다로 떨어져 숨졌다.
이날 조씨는 건조 중이던 군함의 시운전과 경사도검사 등을 위해 족장 철거 작업을 진행 중이었으며 작업 도중 실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당시 바다에 빠진 조씨를 확인한 회사측이 곧바로 해경에 신고를 했지만 현장 구조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결국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STX·현대삼호중공업
협력직원 잇따라 사망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 일각에선 이번 사고의 책임이 STX조선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STX조선이 안전수칙을 위반하고 보호 장비를 미지급 하는 등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는 것.

실제 한 언론은 족장 해체작업의 경우 비가 오는 날은 사고위험이 높아 금지하고 있지만 회사는 검사 일정을 이유로 작업을 재촉했고, 결국 비가 그친 뒤 작업을 시작한 조씨가 자신이 철거하던 족장이 기울어지면서 바다로 추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언론은 당시 조씨에게는 구명정이나 구명조끼 등 보호 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STX는 안전관리 규정을 위반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STX 한 관계자는 “당시 철거 작업은 규정대로 진행됐으며 회사가 업무와 관련해 위반한 사항은 없다”며 “보호 장비의 경우 비상시를 대비해 현장에 상시 배치하고 사고 발생 즉시 해경에 신고하는 등 여러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는 현재 어느 사업장보다도 현장 관리에 철저하다고 자신한다”며 “유감스럽지만 이번 사고는 고인의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로 보인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적극적으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STX와 달리 최근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 도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삼호중공업은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는 분위기다.
현재 현대삼호중공업은 이 노동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안팎의 끊임없는 관심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는 사고 후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사망한 직원의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25일 오후 3시20분경 전남 영암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 내 호퍼탱크에서 연삭기로 선박 블록 작업을 하던 강모(42)씨와 인근의 동료 1명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쓰러졌다. 다행히 쓰러진 지 몇 분 만에 발견된 동료 직원은 목숨을 건졌지만 초기에 발견되지 못했던 강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강씨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병원측의 소견과 함께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이 실시됐지만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고로 노동계는 현대삼호중공업을 향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 지난 4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조선분과 노조 대표들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추모집회를 갖는 한편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날 노조는 “파원두건을 쓰고 일하던 두 명의 노동자가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이 중 한 명이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현장 관리자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이와 함께 지난 1년간 현대삼호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전반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노동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매우 조심스런 입장이다.
현대삼호중공업 한 관계자는 “직원의 사망원인은 아직 조사 중에 있으며 회사는 사고 이후 안전관리 책임을 더욱 강화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회사는 안전사고의 책임 소재에 있어선 한 발 뒤로 물러난 태도를 취했다. 관계자는 “이번에 사망한 고인은 본사의 직원이 아닌 사내 협력사에 소속된 직원으로 안전관리나 책임, 보상 등 모든 문제는 협력사에서 담당하게 된다”며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협력사에 문의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직원 사망 후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은 경남 통영에 위치한 SLS조선의 한 사업장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사고 소식이 전해지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4일, 바다 속에서 작업 중이던 한 직원이 수압으로 질식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당일 오후 1시30분경 SLS조선의 스쿠버업체 소속인 직원 서모(54)씨는 건조한 노르웨이 선적 4만톤급 선박의 프로펠러를 수중에서 촬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서씨는 갑작스레 작동한 프로펠러에 의해 잠수장비가 벗겨진 뒤 숨진채 발견되었는데 당시 발생한 수압 탓에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보상은 협력사와 상의”
노조 측 관리책임자 문책 요구

업계에 따르면 당시 SLS 시운전부 소속 작업자 두 명이 엔진 워밍 작업에 대한 지시를 받고 프로펠러를 가동시켰지만 수면 아래 서씨가 작업 중이었던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선 이번 사고가 담당자의 업무상 과실로 인한 인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무 담당자가 작업 전반에 대한 정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일부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담당자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SLS조선은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담당자의 책임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입장이다.
SLS조선 한 관계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관련자들이 모두 경찰의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아직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경찰 조사가 완료되면 이후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소재를 물어 담당자 등에 대한 후속조치가 진행되는 게 순서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잇따른 안전사고 사업장 책임론 가중
노조, 조선소 긴급 안전점검 실시요구


면 직원 사망 후 뒤늦게 사태수습에 분주한 모습을 보인 사업장도 있다. 주인공은 산업재해 현장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다.
경남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는 지난 한 달간 폭발?추락?질식 등 다양한 사유로 다수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1월20일까지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직원만 이미 4명에 달한다.

지난달 20일에는 선박 블럭에 스프레이 도장 작업을 하던 이모(44)씨가 폭발사고로 사망했고, 앞서 8일에는 안벽과 선박을 연결하는 대형 사다리가 바다로 추락해 작업 중이던 직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또한 지난달 2일에는 건조중인 선박 안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직원 박모(28)씨와 이모(53)씨 등 2명이 아르곤가스에 질식돼 목숨을 잃었다.

대우조선은 사고 이후 현장 안전관리 책임자 4~5명을 경질하는 한편 현장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 사태 수습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노동계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지난해 최악의 사업장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기도 전 연초부터 직원들의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관계자 경질 등 강도 높은 조치로 업계의 비난을 누그러뜨리려는 속내가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연초부터 조선업계 산업현장 곳곳에서 중대재해 사고가 잇따르자 결국 금속노조는 단체 행동에 나섰다.
지난 4일 금속노조 산하 조선업종분과 소속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소 노동자들의 사망사고에 따른 사업장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금속노조는 이 자리에서 노동부가 직접 관리 감독에 나서 사업장 관리에 소홀한 조선업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뿔난 노동자 노동부 향해 항의
‘조선소 자율관리제’ 폐지 요구

노조는 조선업계의 중대재해 사고의 원인은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역시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 한 관계자는 “조선업 재해 다발 원인은 노동부의 ‘자율안전보건관리’라는 잘못된 재해예방 정책에 기인한 사업주들의 생산우선 경영에 있다”며 “‘자율안전보건관리’는 사측의 자의적인 평가 방식에 따른 불합리한 제도로 폐지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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