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잠룡들이 지방선거 연합을 둔 힘겨루기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장으로 불리는 6월 지방선거는 향후 대권구도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야권의 경우 어떻게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합, 후보단일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점이 관건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정동영 의원,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장관은 각각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각자 처한 상황과 세부적인 구상 탓에 이러한 방법들은 크고 작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야권 잠룡들의 ‘후보단일화’에 녹아있는 정치 셈법을 따라가 봤다.
정세균“기득권 내놓겠다” 야당 회의석상으로 불러
정동영“지지자 연합정당으로 일대일 구도 만들자”
유시민, 야5당 공천배분 통한 후보단일화 방법 제안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단일화’를 위한 야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앞서고 있지만 후보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판세가 뒤집히는 것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TNS코리아가 지난 1월19일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비롯한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 어느 정당이 우세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43.8%가 ‘한나라당이 우세할 것’이라고 응답한 것. ‘민주당이 우세할 것’이라는 전망은 15.5%에 그쳤으며, ‘양당이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은 30.3%로 나타났다.
지방선거 전국 판세
야권 후보단일화가 좌우
그러나 ‘내일 지방선거가 있고, 출마후보가 인물면에서 비슷하다면,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단일화 후보 중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냐’는 질문에는 ‘야권단일후보’를 선택한 이가 48%로 ‘한나라당 후보’라고 답한 35.7%를 앞섰다.
정치컨설팅업체 ‘P&C’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2월 ‘여론으로 보는 지방선거 구도 및 흐름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전략적 투표’ 가능성을 분석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 어느 쪽이 우세할 것으로 보냐’는 질문의 결과만 보면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유리한 고지에 서 있으며 승리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된다. 46.6%에 달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가 36%로 민주당의 정당지지도 18.8%를 크게 앞서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분석에 주요하게 작용한 것.
그러나 보고서는 “6월 지방선거 구도를 전망할 때 그간의 ‘한나라당 우위 구도’가 무너지고 ‘한나라당 vs 비한나라당 대결 구도’가 복원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한나라당 vs 비한나라당 대결 구도’의 핵심으로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 가능성을 지적했다.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한나라당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당선가능성이 높은 비한나라당 정당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지적하며 “정당지지도에서 한나라당이 호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앞서고 있지만 야권 단일후보 출마 시 유권자 선호 후보면에서는 T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무당파가 대거 ‘야권 단일후보’로 결집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현재 야권은 각 정당이 모여 후보단일화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후보단일화가 이뤄질 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며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할 경우 ‘전략적 투표’ 행태가 다소 약화되겠지만 선거구도가 변하지 않는 한 ‘전략적 투표’ 행태는 유지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비한나라당 진영 유권자 다수는 야권의 여러 후보 중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정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권도 후보단일화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6일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단일화를 위한 ‘야5당 정책연합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이들은 이날 1차 회의에서 시민단체를 포함한 ‘2010 지방선거 공동승리를 위한 야5당 협상회의’를 구성했다. ‘민주통합 시민행동’ ‘시민주권’ ‘희망과 대안’ ‘2010연대’ 등 4개 시민사회단체들과 손을 잡은, 이른바 ‘5+4 연대’다.
이들은 4차례 심야 회의를 통해 정책합의 수준, 후보단일화 방식, 각 정당의 지분율 등에 대해 논했다. 후보단일화 방법으로는 야권 후보가 모두 참여하는 국민경선, 민주당 후보 대 작은 4야당 후보의 경쟁, 민주당이 제안한 시민공천배심제의 지역별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올해 초 야권에 지방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야당끼리 공천연합을 통해 승리할 경우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데 같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에 의해 유지돼온 지방정부보다 훨씬 유능한 지방정부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방공동정부를 설명했다.
전병헌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선거 승리 뒤 지방권력을 독식하지 말고 권력을 연대한 주체들과 분점하자는 것”이라며 “지자체의 여러가지 임명직, 산하기관장 가운데 선거연대 주체들이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자리를 맡으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권은 일부 동의를 표하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다. 국민참여당은 “우리당은 이미 지방연립정부를 제안한 바 있다”면서 “이는 선거 전 연대로 지방권력을 되찾아오고 이후 연립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는데 언론을 통해 본 바로는 민주당이 승리하면 다른 정당이 자치 행정에 참여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보신당도 “자리를 매개로 하는 방식 이전에 선거를 같이 치르기 위한 정책 합의부터 돼야 한다고 본다”고 거리를 뒀다.
정 대표가 “후보에게 공천장을 주고나면 당은 아무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후보자 선정전에 연대가 마무리 돼야 한다”고 야권의 연대를 재촉하는 것에 대해서도 야권 일각에서 반발하고 있다.
너도나도 후보단일화
목적은 같아도 가는 길 달라
정동영 의원은 정 대표의 구상을 지방선거 전반으로 확대시켰다. 정 의원은 지난달 24일 열린 ‘2010년 지방선거 승리의 길’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일대일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연합정당론을 제시했다.
현행법상 다른 정당 후보 간에는 경선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정 의원은 일종의 ‘페이퍼 정당’ 개념의 ‘지지자 연합정당’을 만들어 각 당의 후보를 입당시킨 뒤 국민경선을 통해 야권 단일 후보를 뽑고, 선거 후에는 각 후보의 지지율을 기초로 지방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당 지도부와 야4당 모두 거리를 두고 있다. “선거를 위한 정당 창당은 오히려 선거연합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것. 군소정당의 경우 지방선거를 통해 당명과 기호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은 이날 토론회에서 “후보를 단일화하고 기호까지 통일하면 선거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단일화 경선을 하려면 후보들이 자기 당에서 나와 특정한 당으로 모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수진영의 공격과 진보진영의 불편함을 무릅쓰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전 장관은 ‘공천 배분’을 들고 나왔다. 유 전 장관은 지난달 19일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 가능한 모든 지역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야당이 연합해서 단일후보를 내서 대결하면 전국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서 “광역단체장의 경우 일정 기간 동안 각 정당들이 자기 나름대로 유력한 후보를 선보이도록 하고 3월 말이든, 4월 말이든 시한을 정해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그 중의 한사람을 정하면 (후보단일화가) 된다”는 것.
그는 기초단체장 공천에 대해서는 “각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 등을 감안해 (정당별로 공천할) 후보의 숫자를 나누고, 서로 연합하는 정당이 후보를 내는 지역이 있다면 (그곳에는) 다른 정당이 공천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의 ‘안’은 ‘지분 공천’ 논란에 휩싸이며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신경전으로 번지고 있다. 유 전 장관이 ‘공천 배분’을 거론하며 “민주당이 기득권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양상을 보일 경우 굉장히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면서 “5개 야당의 연대가 안 되는 것이 확인되면 민주당을 제외한 4당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확실한 연대를 형성할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4당 진보연합이 3파전을 하게 되면 민주당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양보를 촉구한 것도 신경전의 도화선이 됐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유 전 장관은 정치적 야망이 돋보이는 분”이라며 “민주당이 말을 안 들으면 야권에 두 명의 후보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국민이 용인하기 어려운 발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처럼 야권 연대방안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광주광역시·전북도의회의 ‘선거구 쪼개기’ 여파가 ‘5+4 연대’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최근 민주당 일색인 광주와 전북 의회에서 소수 정당의 진출이 가능한 4인 선거구 동네를 2인 선거구로 바꾸는 것을 강행했는데, 이는 민주당이 광주와 전북 등에서 다른 야당과 공동정부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며 “연대기구에서 지방공동정부 등을 결의해도 과연 민주당 지도부가 (이행을) 통제할 지도력이 있는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광주·전북 선거구 쪼개기
민주당 지도부 리더십 상처
‘희망과 대안’도 성명을 통해 “이번 사태를 두고 민주당 지도부는 중앙당이 통제하기 어려웠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지금의 정치연합협상이 선거현장에서 뒤집히는 사태도 그런 자세로 방치하려는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민주당 지도부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협상장에서는 전체 선거구를 놓고서 어떻게 배분하느냐, 어떻게 연대하느냐의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거기서 어떤 합의가 돼도 지역에서 안 먹힌다면 협상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양보할 여지가 있는 지역에서조차도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협상해보나마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조차 “지도부는 야권 단일화를 추진하고 지역의 시도당은 반통합 행위라니, 엇박자도 이런 엇박자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