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국’이 거듭되면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의 보폭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지난해 9월 대표직을 승계할 때만 해도 ‘허술하다’, ‘애매하다’는 시선을 받았지만 올 들어 세종시 문제에 제 목소리를 낸 것을 필두로 사뭇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 정부의 수정안 발표 직후 MJ는 이를 관철하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박근혜 전 대표와의 일전도 불사하면서 친이계의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한동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가 또 다시 박 전 대표와의 싸움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방선거 공천권’ 실탄 장전 출격 준비
‘세종시 정국’ 차기대권 경쟁 이제 시작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며 세종시 정국 전면에 나섰다. 지난달 17, 18일 당 회의에서 세종시 토론 및 당론 변경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친박계 중진들을 향해 “대통령이 왜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대화를 끈질기게 해야 한다”고 선제공격을 날렸다.
이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벌어진 의원총회에서 느닷없이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논의를 위해 박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회동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대표는 지난달 22일 세종시 당론변경을 위해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상의하기 위해 박 전 대표에게 연락했지만 ‘수정안에 대해 또 말할 텐데 그러면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만나지 못했다고 대통령에게 들었다”고 폭로 한 것.
“MB 회동, 박이 거절”
이에 친박계 유정복 의원은 23일 “당대표가 나서서 당이 싸우는 발언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사실관계 확인 없이 박 전 대표가 거부한 것처럼 말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의총장에서 왜 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지,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죄송스럽지만 정 대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실관계가 아닌 것을 말해 오해를 받아 왔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정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제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라며 “대표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절대 박 전 대표에게 부담 드리려 하는 게 아니니 잘 좀 이해해 달라”고 점잖게 받아쳤다.
지난 1월 박 전 대표와의 맞대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시 MJ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분위기로 다소 박 전 대표에게 눌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이른바 ‘사자성어’ 싸움을 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전문기자는 “당시만 해도 MJ는 유약한 도령이었다. 백호 같은 박 전 대표의 기세에 말싸움을 했지만 꽁무니를 빼는 듯 했다”며 “그러나 2월에 들어와서는 달라진 자세로 나서고 있다. 자신의 친정체제가 구축됐고, 친이계의 지원도 한 몸에 받다보니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전사다운 기질보다는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박 전 대표와 2차전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에게 선제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는 MJ의 속내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최근 당직개편을 통해 정몽준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 바 ‘친정(親鄭)체제’를 구축해 세종시 문제와 6·2지방선거를 정면 돌파하고 향후 대권 후보로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당내 입지가 취약했던 정 대표가 이번 당직개편으로 소장파와 손잡고 진정한 친정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병국 사무총장과 정미경 대변인,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대표적인 친이계 소장파로 정 대표가 직접 뽑았다는 후문이다. 남경필 인재영입위원장의 경우, 대표적인 중도개혁소장파로 ‘통합과 실용’을 정 위원장과 함께 이끌고 있다.
즉, 당내 세력기반이 없는 MJ 입장에서 향후 대권도전 등을 위해 세력 기반을 다지고, 친이계 소장파에서는 수장 성격의 중량급 인사가 없는 가운데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 들어갔다는 것이다. 실제 당내에서는 정 대표가 이번 당직개편으로 당 장악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비록 MB의 재가를 받긴 했어도 친이계의 핵심 실세였던 장광근 전 사무총장을 교체한 것은 정 대표에게 힘이 실린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친이계 소장파를 친정체제로 끌어들이면서 MJ계의 확장을 노리고 있다. 현재 MJ계는 안효대·신영수·전여옥·홍정욱 의원 등 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MJ의 진짜 속내는 여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관측이다. 박 전 대표와의 2차전을 출격하면서 향후 지방선거와 당권까지 예비해 포석했다는 것. 특히 이번에 기용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다수가 수도권지역의 의원들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정병국 사무총장, 정미경 대변인, 남경필 의원 등은 경기권 출신들로 차기 당권에도 나오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는 것.
이와 관련 한 여권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 대표가 경기권 출신 의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은 경기지역 공천권을 맞트레이드한 가능성이 크다”며 “현재 경기권은 대의원들이 가장 많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들이 공천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경기권 대의원 공략에 들어간 것이고, 영남권을 박 전대표가, 경기권을 MJ가 차지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당권과 대권까지도 대비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라고 풀이했다.
이에 한 정치전문기자는 “이른바 ‘MB 아바타론’이 있다. ‘정몽준-정운찬’이 어느 정도 소모가치가 떨어지면 버린다는 애기가 나돌고 있는데, MJ도 알지 않겠나”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앞길을 다지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또한 정두언 의원을 쓰는 것도 MB와의 교감을 끊지 않으면서 이재오계에 대비한 전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당권·대권 ‘내 손안에’
지금까지 MJ는 차분하게 자신을 길을 내딛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세종시 정국’을 통해 MJ는 대선후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당내에서 입지를 넓히면서 친이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여론지지도 10%대를 넘어 서면서 한층 고무된 상황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정 대표는 지난 1월 첫 주 조사에서 8.6%였던 지지율이 지난달 23일 13.7%를 기록해 5%가량 올랐다. 2위를 달리고 있던 유시민 전 장관을 뒤로 하고 차기 대권후보 중에 2위로 도약했다는 이 같은 증가세가 정 대표에게 큰 자산이자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MJ는 차분하게 박 전 대표와의 싸움을 이어가면서 입지를 넓히고 지지기반 확충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