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초부터 시작된 ‘세종시 정국’은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른바 ‘세종시 전쟁’으로 차기 대권경쟁,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간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박 전 대표가 코너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현재 박근혜 전 대표는 가지고 있는 카드를 조기 소진했다. 세종시 정국을 사자성어로 보면 ‘궁서설묘((窮鼠齧猫)’이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코너에 몰린 박 전 대표는 과연 어떤 발톱을 드러내며 MB에게 대응할 것인가.
MB, 작심하고 박근혜 비판 치밀하고 공세적
‘원칙과 신뢰’ 박근혜 자신감 … 민심은 내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핵심부는 세종시 수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초강경 모드에 들어갔다. 여권은 수정안 논쟁을 4월까지 끝낸다는 방침을 세우고 전열 정비에 나선 것.
정부가 지난달 27일 세종시 수정안을 법제화하기 위해 ‘행정도시건설특별법 전부 개정 법률안’ 등 4개 관련 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한 후, 여권은 반대파의 반발 수위와 여론을 고려해 언제 국회에서 처리할 것인지 고심해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나서서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나서자, 친이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갖추고 있는 양상이다. 그 중심에는 MB가 있다.
지난 9일 이 대통령은 충북도 업무보고에서 “강도가 왔는데 ‘너 죽고 나 죽자’하면 둘 다 피해를 입는다”며 박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박 전 대표도 정면 대응했다. 다음날 박 전 대표는 MB의 ‘강도론’에 대해 “백번 천번 맞는 말씀”이라면서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게 하겠냐”고 맞받아쳤다.
MB, 수정안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
설 연휴 직전 두 사람의 난타전이 시작됐고, MB가 보다 공세적으로 박 전 대표를 밀어붙이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면서 “당 중심으로 토론해 민주적 방법으로 당론을 만들라”(12일 당 지도부 초청 조찬),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치를 위한 세종시’가 결코 아니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세종시’”(13일 설 특별연설)라고 강조하면서 여론전에 직접 나선 것이다.
MB가 세종시 접근법을 과거에 비해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1월 세종시 정국에서 어느 정도 박 전 대표의 체력을 소진시킨 만큼 끝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또 이 대통령이 강조한 ‘당론화’의 주무대는 한나라당이지만, 고비 때는 이 대통령이 언제라도 직접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세종시 법안의 국회 제출 시기를 앞당기로 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16일로 20일간의 입법예고가 끝나는 만큼 이르면 다음 주, 늦어도 다음 달 초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법안을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설 연휴 기간 중 세종시 민심에 변화가 있는지, 또 당내 토론이 얼마나 진전되는지를 지켜보며 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또 한 번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당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취임 2주년(2월25일)에 맞춰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하는 방안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MB의 의지에 따라 여당 지도부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안상수 원내대표는 4월 국회처리를 강조하면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당내 논의를 3월에 끝내자고 강조했다.
16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안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들이 당헌의 요건을 갖춰 의총 소집을 요구한다면 이를 받아들여 의총을 여는 게 제 의무”라고 강조했다.
정몽준 대표도 17일 “국가적 큰 문제인 세종시 성격을 고려한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진지하게 대화를 했으면 한다”며 “국민은 세종시 문제를 답답하게 생각하면서 이제 그만 논란을 끝내라는 말을 하지만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설 연휴 직전부터 시작된 MB와 친이계의 맹공격으로 박 전 대표와 친박계는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특히 지난 9일부터 시작된 MB의 ‘강도론’ ‘인재론’ ‘사과 공방’ 등의 이중적 함의공격에 박 전 대표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이 대통령의 이중적 함의 공격에 박 전 대표가 즉각 반응하면서,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신중함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며 “아직 우리 사회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면서, 특히 예의를 중시하는데 박 전 대표가 바로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처럼 비춰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가 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 MB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했어야 한다”며 “설사 MB가 자신을 지칭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풀어내야 할 것을 감정으로 풀어내다 보니,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이것은 당의 2인자가 1인자인 대통령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극상’으로 보이거나, 가족으로 따지면 ‘예의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 전 대표가 MB의 술수에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반증하기라도 하듯 친박계의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12일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강도론’에 대해 “세종시 법안과는 관련 없는 일종의 접촉사고”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한 뒤 “어제 오후에 일단 마무리를 지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송구스럽게 되었으나 국민께서는 큰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다”며 긴급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코너에 몰린 박 전 대표가 계속적인 ‘강경모드’를 고수하는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MB와 정몽준 대표와 정면충돌을 마다하지 않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권력의 최고점에 올라있는 MB와 맞불 작전을 서슴지 않고 있는 박 전 대표의 행보에는 자신감이 차 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지난 대선 때 원안 수행을 고리로 민심에 표를 호소한 만큼 약속을 지키려는 그의 입장은 어느 때보다 방향성이 확고하고 분명해 보인다. 즉 朴의 원안 고수 입장은 ‘원칙과 신뢰’ 유지를 통해 차기 유력 주자로서 대국민 신뢰도 제고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
치밀한 MB공격
‘내상 입은 박근혜’
또 여야를 통틀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위상을 감안, 미래권력 구도상 독주체제를 굳히려는 복선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몽준 대표 등 ‘다자 구도’로 형성된 여권 차기 구도에서 수정안 찬성론자인 정 총리·정 대표와 확실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향후 민심 평가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친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던 대규모 낙천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6월 지방선거 공천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수정안 국회 제출 이후 예상되는 치열한 당내 토론과정과 상임위 등 국회 법안 심의를 앞두고 만일의 이탈표를 방지하고 친박계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는 ‘동기부여’도 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수세에 몰린 것으로 보이는 박 전 대표에게는 히든카드가 있다. 그것은 정 총리 해임 안이다. 정 총리는 친박계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정 총리는 수정안의 야전사령관이면서, 박 전 대표에 대해 “정치인이 속한 정당, 계파 보스 목소리를 대리하는 분들이 국민보다 (계파) 앞세우기에 정쟁을 야기한다. 정치집단의 보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보가) 달라져 안타깝다”며 폄하했다.
이에 친박계는 이를 갈고 있는 것. 이와 관련, <미디어워치>의 변희재 대표는 <일요시사>의 만남에서 “박 전 대표에게 있어서 회심의 카드는 정 총리 해임 카드다. MB와 친이계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면 박 전 대표는 야당과 공조해 정 총리 해임안을 통과 시킬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MB는 수족이 잘리는 것이 된다. 물론 이 카드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에게도 출당의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피해는 MB가 더 클 것이다. 정 총리가 해임이 되면 다시 총리를 세우기가 힘들 뿐 만아니라 다음 총리카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카드는 ‘선거의 여왕’답게 이번 지방선거에서 친박 돌풍을 또 다시 일으킨다는 것이다”며 “세종시 문제를 빌미로 친이계와 여권핵심부는 친박계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다. 공천 받지 못한 친박계는 선거에 나가 다시 살아오면서 친박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끝으로 어느 정도 실탄이 채워지면 ‘박근혜 신당’ 카드를 가지고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주전사’ 박근혜,
총리 해임·신당 카드 있다?
친박계가 최후 수단으로 정 총리 해임안 카드를 들고 나온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총리 해임건의안은 국회의원 재적수인 297명의 과반인 149명의 찬성만 있으면 가결된다. 현재 국회 분포를 볼 때 민주당이 88명, 자유선진당 17명, 친박연대 8명, 민주노동당 5명, 창조한국당 2명, 진보신당 1명으로 야당이 총 119명이며 김형오 국회의장을 제외한 무소속 의원이 5명이다.
해임건의안 가결을 위해 124명∼127명 정도를 야권에서 확보했을 때, 60여명 가까이 되는 친박계에서 20여명 정도만 확보하면 정 총리를 낙마시킬 수 있다.
또 다른 속내는 세종시 원안 고수로 최대 이슈를 선점해 주도권을 장악하고, 현안을 주도해 나감에 따라 2010년 지방선거·2012년 총선·대선을 친박계의 승리로 이끄는 데 주도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정치권 인사는 “박 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계는 친이계와 더 이상 타협하지 않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역으로 MB와 친이계를 궁지로 몰겠다는 속내”라며 “지방선거에서 살아온 전사들과 친박연대, 호남+충청권을 묻는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신당’과 함께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미국식 정·부통령제를 들고 나와 정동영계와 연대해, 박 전 대표가 대통령후보로 부통령은 DY로 세운다는 것이다. 만약 성사 된다면 영호남의 화합과 단합을 강조하는 정치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계 인사들을 대거 데리고, ‘박근혜 신당’을 창당한다고 해도 제1여당인 한나라당에 버금가는 정당을 창당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최대 세력을 확보하는 작업에서 한나라당보다 더 우월한 세력을 유지해야만 앞으로 2012년 대선에서 정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언제쯤 히든카드를 내놓지는 미지수이다. ‘양날의 검’으로 자신마저도 큰 상처를 받을 수 있기에, 박 전 대표는 고심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