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이승한 사퇴 진짜 이유

2014.08.19 09:21:31 호수 0호

15년 장기집권 마감 ‘물러났나 밀려났나’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홈플러스를 뒤덮고 있던 이승한 그림자가 완전히 걷혔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15년 만에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것. 연구와 교육에 전념키 위해서라는 게 홈플러스 입장이지만 영국 본사 회장 퇴임과 녹록치 않은 국내 상황이 이 회장의 사임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 내홍을 짊어진 도성환 사장의 어깨는 더욱 처지게 됐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홈플러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지난 8일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이승한 회장의 사퇴소식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도 사장은 "그동안 쉼표 없이 살아오면서 미처 돌보지 못했던 건강을 회복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이 회장의 희망에 따라 회사는 사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사퇴배경을 설명했다.

퇴임 후 막후서
강력한 영향력

경북 칠곡 출생으로 계성고와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로 입사,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를 거쳐 99년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홈플러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14년간 홈플러스 지휘봉을 잡아온 이 회장은 지난 14년간 홈플러스를 연매출 12조원에 달하는 대형마트 2위 업체로 키워냈다.

홈플러스는 99년 삼성물산과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네덜란드 법인 테스코 홀딩스가 1대 1로 합작해 만든 삼성테스코㈜가 모태다. 이후 2011년 3월 삼성과 테스코의 상호 계약기간이 만료돼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이 회장은 2013년 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회장 직함을 유지하면서 홈플러스 e-파란재단 이사장,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 회장, 테스코그룹 경영자문역을 맡아왔다. 지분이 0.1%도 없는데 '왕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이사 퇴임 이후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당분간 경영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도 사장은 "앞으로 이 회장은 지난 45년 동안 경영일선에서 쌓아온 동서양을 넘나드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로벌 경영이론 및 모델 개발 등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내외 독보적인 존재…연구·교육 전념?
돌연 대체 왜? 사퇴 배경 두고 설왕설래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회장은 보스턴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성품 중심의 '인성 리더십' 설파에 나섰고 보스턴대학은 이 회장의 경영이론을 학부 교과과정에 반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프리먼 보스턴 경영대학장은 "홈플러스는 영국기업이 한국에서 성공한 글로벌 사례로서 학생과 글로벌 경영진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의 경영사례를 바탕으로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교과과정에 반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업계가 내놓은 분석은 다르다. 이 회장의 사임이 테스코 회장의 퇴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

필립 클라크 테스코 회장은 지난달 21일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테스코는 지난달 40년 만에 최악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날 <BBC> <블룸버그통신> 등 현지 언론은 테스코의 클라크 회장이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오는 10월1일자로 데이브 루이스 유니레버 퍼스널케어 부문 사장이 후임 CEO로 부임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클라크 회장은 2011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뒤 실적부진으로 압력을 받아왔다. 지난 5월까지 테스코 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8% 하락했고 클라크 부임 이후 주가는 27% 하락해 주주들의 손실이 88억파운드(약 15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은 클라크 회장의 능력 부재가 테스코의 저조한 경영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일선 후퇴 후 테크코 경영자문역을 맡아온 이 회장이 클라크 회장의 퇴임이 여간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경품사기·노사갈등
흔들리는 도성환호

이 회장의 퇴임으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도 사장은 이 회장이 홈플러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사실상 단독 경영을 해 왔지만 '회장님'의 막강한 후광에 가려 최근 홈플러스를 뒤덮은 내홍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승한 그림자'가 걷힌 지금, 업계는 모든 짐을 짊어진 도 사장이 어떤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써 갈지 주목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홈플러스 브랜드 이미지는 '갑질 논란'과 '경품 사기극' '동반성장 꼴지' '국부유출 논란' 등으로 한 없이 추락했고 회사 내부는 '노사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2013 동반성장지수'에서 3년 연속 최하등급인 '보통'을 받았다. 홈플러스 측은 "동반성장 평가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홈플러스의 '상생' 의지에 대한 진정성은 항상 물음표를 달고 있다.

최근 홈플러스는 주력하던 대형마트와 SSM의 신규 출점이 어려워지자 편의점 사업으로 골목 상권을 파고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2년 '365 플러스'라는 명칭의 편의점 사업을 시작한 뒤 지난 4월 100호점을 오픈하며 매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상생'과 '성장'을 강조하고 지난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도 사장은 해외에선 "향후 10년간 국내에서 5000개 매장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해 상생의지가 아예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내우외환에 시름
추석 전 파업예고

이를 뒷받침하듯 홈플러스는 잇따른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월에는 명절 알바에 대한 갑질로, 지난 3월에는 액세서리 입점 매장에 대한 갑질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달 들어서는 홈플러스 직원이 협력업체 직원을 냉동창고에 가두고, 수시로 욕설을 하는 등 노예처럼 부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내릴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매장 리뉴얼 시 협력업체의 직원을 동원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영국 본사에 바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로열티로 영국 본사에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홈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 2509억여원의 25% 수준이고 2012년 대비 16배가 넘는 액수다.

상표 수수료 인상에 대해 홈플러스는 "한국에 대한 수수료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너무 낮다는 영국 세무당국의 지적을 받은 영국 테스코 본사의 요청으로 인상이 이뤄진 것"이라며 "이전까지 한국 홈플러스가 본사에 낸 수수료율은 0.05%에 불과하고 다른 국가는 1% 안팎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럽 경기 침체로 영국 본사의 수익이 줄자 이를 한국 홈플러스의 돈을 가져다가 메꾸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국내 홈플러스는 'TESCO'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곳이 없다. 법인명에서도 '테스코'는 빠졌다. 반면 중·인도·말레이시아·체코 등에서는 국가명 앞에 'TESCO'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다. 따라서 도 사장이 영국 본사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텅텅 빈 곳간은 노사 임금 협상 파행으로 이어졌다. 홈플러스 노사는 임금교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사측과의 임금교섭이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10년을 일해도 월급이 100만원 남짓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임금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직원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하필 이때…각종 논란으로 몸살
회장님 그림자서 벗어난 사장님
도성환 경영 능력 시험대 올라

노조는 "사측은 시급은 170원(3.25%)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2015년 최저 임금과 90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며 "임원들은 여전히 수십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회사가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를 계속 무시한다면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4월 노조가 설립된 이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쩜오계약제'로 불리는 '꼼수'가 드러나면서 총파업 직전에 간신히 합의에 이르렀지만 최근에는 임금협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 악재의 정점은 지난달 말 불거진 '경품사기극'이 찍었다. 지난달 27일 <시사매거진 2580>은 홈플러스의 경품사기극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홈플러스가 비싼 경품을 걸고 행사를 한 뒤 정작 주요 당첨자에게 경품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게 방송의 주요 내용. 홈플러스는 지난 2월 수천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외제차 등의 경품을 내걸고 고객대상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행사 1등 당첨자들은 경품을 받지 못했고 다른 당첨자들의 미지급 사례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당첨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1등 경품으로 나왔던 7800만원 상당의 2캐럿짜리 클래식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링은 국내에 한 번도 수입된 적 없는 제품이었고 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경품 행사 진행 사실도 몰랐다.

홈플러스는 지난 2012년 3월, 4500만원 상당의 외제 자동차를 1등 상품으로 내건 행사에서 당첨자를 조작하기도 했다. 홈플러스 한 직원은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었고 외제차를 경품으로 받고 되팔아 3000만원을 챙겼다.

홈플러스의 고객 기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품 행사로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총 동원했다.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제휴보험사에 팔아넘긴 것. 한 명당 2000∼2800원을 받아 챙겼다.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에게 얻어낸 개인정보는 4200∼4500원으로 더 비싸게 팔았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가 홈플러스에서 보험사로 넘어갔다. 올해 목표치(?)는 400만명. 이를 위해 4번의 경품행사를 기획했고 48억이라는 구체적인 수익 목표치도 정해놨다.

말로만 '상생'
뒤로는 '갑질'

논란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연락이 부족해 경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문자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염려로 당첨 고지에 대한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경품이 지급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경품지급을 조작한 직원은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해당직원 2명을 고소했다"며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 홈플러스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불똥은 홈플러스 임대매장에도 튀었다. 홈플러스 식품매장 바깥에 입점한 의류매장, 음식점, 커피숍, 안경점, 피부과 등의 업체 등 테넌트 매장은 홈플러스 불매운동으로 받는 피해가 극심하다.

홈플러스 실적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위기 극복 특명을 안고 도성환호가 출범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지난해 매출(연결재무재표기준)은 8조9297억원으로 전년대비 0.6%늘었으나 영업이익은 3382억원으로 전년대비 24% 급감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 줄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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