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의 권력구도에 풍랑이 몰려오고 있다. 오는 25일 만 2년을 꽉 채우고 본격적인 집권 3년차에 나서는 이명박 정권의 ‘꿈틀거림’을 따라 차기 권력구도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찾아들고 있는 것. 정권교체 후 지금까지 차기 권력구도는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체제로 정리돼 왔다.
하지만 세종시 정국을 시작으로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등을 거치면서 이러한 ‘틀’이 깨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의 전환점이 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변화의 기미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잠룡들의 지지율을 통해 이를 쫓았다.
정몽준·정운찬·정세균·정동영 ‘J4’에 유시민·손학규 가세
흩어진 박근혜 모래알 지지율 정몽준·정운찬으로 ‘모여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2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슈들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당의 지지율도 수차례 요동쳤다. 하지만 잠룡들의 구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체제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잔잔한 수면’과도 같았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 바람이 불고 있다.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순풍’인지 ‘역풍’인지는 다르지만 차기 대선판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해 보인다.
변화는 2년 내내 차기 대선주자로 첫 손에 꼽혀온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며 부동의 선두 자리를 유지해왔다.
2년간 박근혜 독주
굳건한 틈에 ‘구멍’ 생겨
지난 2월1일부터 5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는 35.5%의 지지를 받아 2위를 차지한 유시민 전 장관(13.3% )을 큰 차로 따돌렸다. 그 뒤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10.5%)와 손학규 전 대표(6.8%), 정동영 의원(6.8%), 오세훈 서울시장(6.1%), 김문수 경기도지사(6.0%),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4.2%) 순으로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그의 지지율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세종시 수정 문제와 관련, 이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면서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 외에도 지지율을 지탱하는 ‘축’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지난달 19일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38.7%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비판 입장을 고수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전주 대비 11.1%의 지지율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체 하락률은 1.7%에 그쳤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이탈을 타 정당과 중도·성향 지지층이 메운 탓이다. 같은 달 26일 여론조사에서는 호남 지역과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큰 상승폭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지난 2일 여론조사에서는 수도권에서까지 지지율 하락을 맛봐야 했다. 결국 이날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7.6%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38% 아래로 내려간 수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달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29.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수정안 발표 이전인 지난해 12월21일 29.6%의 지지를 얻은 것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각 지역별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박 전 대표는 충청권에서 47.7%의 지지를 얻어 지난해 12월(23.8%)보다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같은 달 28일 조사에선 충청권내 박 전 대표 지지율이 47.7%로 급등하기도 했다.
반면 대구·경북에서의 지지율은 51.6%에서 45.5%로 6.1% 하락했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달 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0.6%로 지난해 10월12일 조사 결과와 같았다. 하지만 호남에서 10.1%의 지지를 얻어 ‘마의 벽’을 깬 반면 서울에서는 지난해 10월보다 11.8%나 하락한 22%의 지지율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세종시 정국을 거치면서 박 전 대표의 지지층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통적 지지층인 영남·보수·50대 이상 계층에서 지지율에선 균열이 일어난 반면 중도성향의 지지층이 차츰 세를 넓혀가고 있는 것. 이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 지지층이 분열하는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고, 이를 ‘지지층의 확장’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론조사전문가들은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영남 지지율이 5~6% 가량 떨어지고 있다고 나타났다”면서 “다른 지역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진 것이 아닌만큼 전통적 지지층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잠룡들 박근혜 맹추격
‘더 이상의 독주는 없다’
그러나 한 정치전문가는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표의 패인 중 가장 큰 것은 중도성향의 표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영호남에서 두루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박 전 대표의 지지층 변화를 긍정 평가했다. 박 전 대표 뿐 아니라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 등 친이계 잠룡들도 보수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 대표의 지지율은 1년 사이 껑충 뛰었다. 정 대표는 여러 언론사와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지지율을 산출하기 시작할 즈음인 지난해 1월23일 여론조사에서 5.8% 지지율을 기록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박 전 대표와 함께 잠룡군으로 분류됐지만 대권도전설이 제기됐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정계 복귀 논란이 불거졌던 정동영 의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에게도 밀렸던 것.
유시민·정동영·손학규 정계 복귀전 앞두고 지지율 술렁
오세훈 김문수 지방선고 앞두고 주가 상승 ‘재선 노릴까’
하지만 지난해 10월 재보선을 계기로 당 대표를 맡고 난 후 상황은 달라졌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11.6%, 지난 2일 10.7%, 9일 10.5% 등 최근 여론조사에서 10%대의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다. 원내로 복귀한 정 의원과 이 총재의 지지율도 뛰어넘었다. 박근혜-유시민-정몽준으로 이어지는 선두 다툼에 한자리를 차지한 것.
정 대표는 최근 당직 개편을 단행, 친정체제 구축하면서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자신과 불협화음을 냈던 장광근 전 사무총장 대신 정병국 사무총장을 직접 발탁했으며 당 소장그룹의 핵심 멤버인 남경필 의원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정두언 의원을 지방기획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정치권은 ‘정몽준 체제’ 구축한 정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대권 경쟁에서 박 전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까지 급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총리의 경우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 후보군에는 포함되지 않고 있지만 여권에서는 잠재적인 대선후보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세종시 정국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잠룡으로 인정받느냐 마느냐의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와 사정이 비슷한 이가 야권에도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다. 정 대표는 정권교체 후 2년여 간 제1야당을 이끌었다.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당내에서까지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리더십 문제와 당 지지율 정체 등으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 후보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선거서 재선, 복귀
최대 수혜자 누가 될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상승이 기대되는 5인이 있다.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 유시민 전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지난 10일 민주당 복당으로 ‘날개’를 단 정 의원은 지방선거를 통해 빚을 갚겠다는 각오를 은연 중 내비치고 있다. 그는 복당을 앞두고 “나는 민주당에 빚을 많이 진 사람”이라며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개혁진영의 명운이 걸린 역사적 선거”라며 “여기서 이기면 활로가 열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앞이 안 보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손 전 대표도 정계 복귀를 목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대표는 지난달 21일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용섭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키 위해 광주를 방문한데 이어 25일에는 전북 익산시장 출마를 노리는 천광수씨 출판기념회를 찾았다. 춘천에 ‘칩거’하고 있지만 점차 동선을 넓히고 있는 것.
손 전 대표의 이 같은 행보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를 향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 불리했던 수원 장안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주가가 급상승한 것.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지난달 25일 민주당 내 정세균·정동영·손학규·한명숙·천정배 세력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이를 질문한 여론조사에서도 손 전 대표는 20.6%의 지지를 얻어 정 의원(14.7%)을 따돌렸다.
한명숙 전 총리와 정 대표는 9.4%, 천정배 의원은 2.6%의 지지를 얻었다. 박 전 대표에 이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유 전 장관도 지방선거를 통한 복귀를 노리고 있다. 그는 국민참여당 지도부로부터 서울시장 출마를 제안 받은 상태다. 하지만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출마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가 인사들은 유 전 장관이 국민참여당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출마 혹은 선거 유세 등으로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들 야권 3인방은 각각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 중 여권 인사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이들”이라면서 “칩거하거나 무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정치활동을 최소화했던 만큼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지율의 숨통을 틔울 것”으로 기대했다.
오 시장과 김 지사는 6월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는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자리인데다 지방선거 가상대결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은 4.5%, 김 지사는 2.9%에 불과했지만 지난 9일에는 오 시장이 6.1%, 김 지사가 6.0%로 껑충 뛰어올랐다.
한 정치평론가는 “대선주자들의 ‘진짜’ 지지율이 나오는 건 대선 6개월 전”이라면서도 “지방선거 결과가 대선으로 직결되는 만큼 지방선거를 치르고 난 후 여야 할 것 없이 잠룡들의 지지율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