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 청부살인’ 사건 재조명> 교사 둘러싼 <‘A씨-윤·김씨-검찰’> 진실게임

2010.02.02 09:18:47 호수 0호

8년 전 닫혔던 판도라상자 ‘들썩들썩’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하양 청부살인’ 사건. 재벌기업 부인이 사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한 이 사건의 공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범은 명백하지만 살인교사 여부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현재 수감 중인 범인은 그동안 청부 사실에 대한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하양 청부살인’ 사건의 풀리지 않은 의문점을 짚어봤다.

최대 쟁점 ‘재벌가 사모님’ 살인교사 여부 곧 판결
공범들 “사주 받지 않았다”진술 번복…검찰은 외면


지난달 27일 오후 2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청주교도소. 40대 후반의 재소자가 예리한 시선으로 접견실에 들어섰다. 여대생 하모양을 공기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윤모씨였다. 처음 “모르는 사람”이라며 면회를 거부한 그는 마지못해 얼굴을 비췄다.
 
사위-하양 불륜 의심
장모가 감시·미행



유리벽 너머 윤씨는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상당히 경계했다. 그는 다짜고짜 “미안합니다”라며 눈을 흘긴 뒤 뒤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강한 인상을 풍겼다.
그를 붙잡고 기자 신분을 밝힌 뒤 “사건의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조심스레 운을 떼자 윤씨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서 버렸다. 퇴장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란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잡아 세운 윤씨는 고개만 돌린 채 “할 말이 없다”며 뚝 자르고 곧장 접견실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른바 ‘하양 청부살인’사건의 최대 쟁점인 살인교사 여부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조만간 내려져 그 결과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살해를 지시했다”는 판결을 뒤집고 새 국면을 맞을지가 관심거리다.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는 최근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하던 모 재벌기업 회장 부인 A씨가 조카 윤씨와 공범 김모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 “심리절차를 모두 마쳐 2월18일 오후 2시 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2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견기업 회장의 부인 A씨는 1999년 외동딸과 결혼한 사위의 지저분한 소문을 들었다. 서울 명문 법대를 나와 판사로 있던 사위가 서울 명문여대 법대생이었던 하양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양은 당시 22세였다.
불륜을 의심한 A씨는 이때부터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감시원들을 붙여 뒤를 밟는가 하면 감시와 미행도 모자라 직접 요지에서 ‘잠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투리를 잡지 못한 A씨는 결국 하양에게 ‘자백’을 받기로 했다.

행동대원으로 조카 윤씨와 그의 동창생인 김씨가 나섰다. 이들은 수개월간 치밀한 모의 끝에 2002년 3월 하양을 납치했고, 하양은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등산로에서 머리와 얼굴 등에 5mm 구경의 공기총 실탄 6발을 맞고 잔혹하게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를 벌여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이 사건 배후에 A씨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검거했다. 해외로 달아났던 윤씨와 김씨는 1년여 동안 중국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이듬해 3월 경찰에 붙잡혔다.

‘범죄 입증해야 할 검찰이…’
이상한 피고인 무죄 고집


이 사건은 재벌가 ‘사모님’과 변호사, 판사 등 사회 지도층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 공기총으로 ‘확인사살’까지 했다는 경찰 발표는 충격을 키웠다. 윤씨와 김씨는 하양을 공기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1심과 2심을 거쳐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모두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문제는 A씨다. 경찰은 당초 A씨에 대해 납치감금 교사 혐의만 적용해 구속했지만 윤씨와 김씨가 “A씨의 납치·살해 부탁을 받았다. A씨의 지시로 하양을 죽였다. 이 대가로 1억7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착수금조로 5000만원을 받았다”고 시인하자 살인교사 혐의를 추가했고 A씨도 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A씨는 “살인을 사주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A씨는 사건의 핵심 고리인 살인교사 혐의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윤씨와 김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고 항고·재항고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냈고, 법원이 2008년 7월 “살인교사에 의문이 든다”며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청주지법에서 다시 재판이 진행됐다. 오는 18일 예정된 청주지법의 선고가 사실상 이 재판의 종착지인 셈이다.

A씨가 제기한 윤씨와 김씨의 위증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면 재심 청구가 불가능하지만 유죄가 선고되면 A씨는 대법원에서 확정된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최종 판결의 근거가 된 증언이 거짓으로 밝혀질 경우 이전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가 가능하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해 고소인이 불복할 경우 직접 고등법원에 재판 회부를 요청하는 제도다. 고등법원이 심리 결과 검찰의 불기소 판단이 부당하다고 결정하면 직권으로 재판을 진행한다.

3명 모두 무기징역
위증 유죄 시 재심

하지만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검찰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건을 맡는 데 모순이 있다. 과거 재정신청 사건의 공소권은 검찰이 아닌 법원이 지정한 변호사(특별검사)에게 있었다. 그러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 검찰이 맡도록 바뀌었다.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하자는 재정신청의 취지와 의미가 무색해진 것이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런 재정신청의 기형적 구조 탓이다.


검찰로선 불기소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의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구형하는 것은 수사가 잘못됐다는 점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기소하지 않기로 결심한 검찰에 공소유지를 맡기는 건 현실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며 “검찰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을 다시 시작하더라도 무죄라고 판단했다면 무죄구형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부당해 재판을 다시 시작토록 하는 재정신청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재정신청에 따른 위증 공판 과정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범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피고인에게 또 다시 무죄를 구형하는 희귀한 일이 벌어진 것. 검찰은 법원의 공소 재기 명령에 따라 피고소인 신분이 된 윤씨와 김씨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존 ‘혐의 없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더욱이 윤씨와 김씨는 경찰 조사와 달리 “사주 받지 않았다”고 진술을 뒤집은 상태다. 윤씨는 대법원 상고 직전, 김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A씨의 살인교사 부분을 번복했다.

이들은 위증 공판 과정에서도 “A씨에게 살인을 사주 받은 사실이 없다” “A씨가 미행 지시만 내렸다” “A씨는 살해 얘기를 농담처럼 건넸다” “A씨 사위와 하양 사이를 떼어 놓으려다가 충성심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말을 바꿨다.
A씨 측 변호사는 “경찰·검찰, 1·2심과 대법원 재판에서 두 사람의 오락가락 진술은 수시로 변경되거나 일관성이 없고 서로 진술이 엇갈리는 등 진술 자체에 모순이 많았다”며 “그 모순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다 보니 A씨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A씨 “살인 지시한 적 없다”
윤·김 “부탁받지 않았다”
검찰 “양측 다 거짓 주장”


그는 이어 “윤씨와 김씨는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라도 감면받으려 거짓 진술을 하다 무기징역이 떨어지자 나중에서야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며 “피고인의 단독 범행 자백에도 검찰이 끝까지 무죄 의견을 밀어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A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확신하고 있다. A씨가 단순히 혐의를 벗기 위해 윤씨와 김씨의 위증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와 대법원 판결대로 A씨가 살인을 지시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윤씨와 김씨가 위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일단 위증 사건으로 두 사람을 기소했지만 (무죄) 확신이 있으면 그대로 구형하는 게 당연하다”고 자신했다.
검찰은 A씨-윤씨·김씨간 모종의 거래도 의심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윤씨와 김씨가 돌연 진술을 바꾼 것은 어떠한 교감이 있지 않고선 쉽게 납득할 수 없다”며 “두 명 모두 무기징역이 확정된 상태에서 위증 혐의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양측이 서로 사전에 입을 맞췄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재정신청 기형 구조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전국을 들썩이게 한 ‘하양 청부살인’사건. 실제 살해 청부는 있었을까. 아니면 궁지에 몰린 범인들이 꾸며낸 시나리오일까. 곧 열릴 이 사건의 미스터리를 담은 ‘판도라 상자’에 잊혀 가던 관심이 다시 모이고 있다. 

<다음 호에 하양 청부살인 미스터리 후속으로 「총 쏜 자들의 심경 고백 ‘진술 번복한 진짜 이유’」편이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