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해 벽두부터 정국 뇌관의 핵으로 떠오른 세종시 문제를 놓고 보수우파 진영 내에서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간 보수진영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던 박 전 대표에게 큰 위기가 닥친 것이다.
좌파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보수진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원칙론에 적극 동조하면서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고 있는 박 전 대표를 향해 강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 이른바 보수우파진영의 ‘탈 박근혜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 이에 <일요시사>가 주요 인사들을 만나봤다.
박근혜 세종시 원안 고수 ‘노무현 대못 사수’
보수진영 세종시 문제로 박근혜 재평가 착수
지난 12일 보수진영 시민단체들은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이들 단체들은 “세종시 수정안에서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한 것은 국가 백년대계와 국익을 우선한 현명한 선택으로 적극 환영한다”며 “세종시를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과 대립을 보이고 있는 정치권은 지역이익이 국익을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서 세종시 수정안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박근혜 원안고수’,
노무현 대못 사수인가?
보수진영의 시민단체들은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한목소리로 세종시 문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아 놓은 ‘대못’이라고 규정하고 세종시 원안 추진에 대해 적극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일요시사>는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인사인 <월간조선> 조갑제 전 대표, 헌정회 장경순 명예회장,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 등의 주장을 들어봤다.
대표적인 보수진영의 언론인인 조갑제 대표는 “세종시 문제는 본질적으로 ‘노무현의 대못’이다. 이것을 완전하게 제거해야 한다”며 “그 제거방법은 국민투표다. 이 방법을 통해 신행정수도로 출발한 대국민사기극의 막을 이제 그만 내려야 한다”고 성토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해 “세종시 때문에 박근혜씨의 정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
박근혜씨는 수도분할법을 통과시킬 때 한나라당 대표였다”며 “원안대로 하는 것이 약속이다? 그 약속은 한나라당이 노무현의 꼼수에 말려 마지못해 표를 위해 합의해준 잘못된 선택이다. 사실 원안대로 하려면 헌재가 ‘수도이전은 위헌이다’라고 판단한 게 원안이다. 수도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을 공개 천명한 후에 그 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 정면에서 반발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처음이다. 세계 민주주의 정치사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선문답하듯 한마디 던질 게 아니라 진지한 토론을 해서 누가 맞는지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라며 “이 사건뿐만 아니라 미디어법, 촛불 시위, 용산 참사에 대한 시각도 틀렸고, 이전 그의 언행들을 연결해 보면 이명박-한나라당 노선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보수 분열의 가능성이 있어 대한민국 헌법수호세력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적 원로인사인 장경순 헌정회 명예회장은 제 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쿠데타에 가담해 농림부장관을 역임했으며 박 전 대표에게는 큰 어른 격이다. ‘세종시 논란’에 대해 장 회장은 “세종시는 수정안대로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표가 주장하고 있는 국민과의 신뢰도 중요하다.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국민과의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공이 끝으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하다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바꾸는 데 인색하지 말라’고 답했다. 이처럼 하다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치는 게 중요하다. ‘세종시 원안’ 추진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박 전 대표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행정수도 이전과 전시작전권 환수는 노무현 정권 시절 대표적인 ‘대못’이다. 왜 이것을 박 전 대표가 두둔하는가. 표를 의식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도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의 대못으로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드는 것이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 말고도 한미연합사 해체, 전시작전권 이전 등 국가정체성을 뒤흔드는 행위들을 해왔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다면 ‘노무현 대못’을 지키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를 누구보다 ‘박정희 후예’로 생각하고 박 전 대표를 돕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노무현 대못’은 결국 제2의 남침을 허용하는 것으로 지금이라도 세종시 문제에 대해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 당시 잘못 동의했다면 지금 사과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남한적화통일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적화통일을 노리는 간첩정권인 노무현의 짓”이라고 성토했다.
계속해서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정관록에 ‘계룡산 근처에 도읍을 하면 600년이 간다’고 기록돼, 수도를 옮기고자 계룡산에 가봤더니, 명산이긴 한데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고 다시 한양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며 “국가지도자는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이성계도 포기한 천도를 지금에 와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박 전대표가 원안고수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노무현 좌파정권이 저질러놓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고 국가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 보수를 분열시키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며 MB정권이 잘돼야 박 전 대표도 대권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충고했다.
들썩거리는 보수진영
“박근혜로 인해 보수 분열”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도 박 전 대표에게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했다. 봉 대표는 “지금의 세종시 논란은 2002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 행정수도 공약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며 “2003년 12월29일 국회에서 통과된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이 선고됐다.
노무현 정권은 행정수도를 행정도시로 바꾼, 수도 ‘이전’이 아닌 ‘분할’이라는 편법으로 만든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특별법을 2005년 3월2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정부부처를 옮겨 국가의 중추기능을 분산시켜 엄청난 예산과 국익의 낭비를 초래할 망국적 행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걱정스럽다”며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원안 고수는 잘못된 선택이다.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결단이 필요하다. 이보다 우려되는 것은 박 전 대표가 야당 등과 연대하는 것이다. 노무현의 대못을 왜 박 전 대표가 지키려는가. 지금이라도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이고 대통령과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중도우파 진영에서도 박 전 대표에 대한 우려감을 표출하고 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도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야당으로 가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조갑제·장경순 ‘MB가 성공해야 박근혜도 성공’
보수진영, MB 대 박근혜 세력 분화…우려감 증폭
연세대 김동길 전 교수도 16일 “요새는 박근혜가 밉다. 박근혜를 포섭하지 못한 이명박도 밉지만 그의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안대로 나가자는 박근혜는 더 밉다”며 “그 원안이 끝까지 ‘국민을 위해서’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수도를 대전으로 옮기겠습니다’라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2002년 대통령선거 유세 중 막판에 가서 불쑥 한마디 던진 사람은 당시 여당의 대통령후보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자신은 당선되고 나서 자신의 그 말을 두고 ‘좀 재미를 봤지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계속 ‘원안’을 고집하면 정계는 아수라장이 되고 한국 정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며 “이렇게 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을 하겠나. ‘수정안’이 옳다는 걸 국민은 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관련, 보수진영의 한 소식통은 “지금 보수진영은 박근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보수인사들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며 “그러나 이번 세종시 논란으로 박 전 대표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고 있고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단체들은 세종시 문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 가타부타 말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박 전 대표에 대한 이탈자가 많이 생길 것 같다”고 귀띔했다.
걱정 없는 친박 진영
“우리는 아직도 든든”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대선 당시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우파인사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보수진영의 분열”이라면서 “박 전 대표가 세종시 문제에 대해 너무 앞서 나간다는 의견이 많다. 이러다가는 지존 지지자들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한편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체성까지 거론하는 인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런 움직임에 대해 친박계 한 의원은 “MB를 지지하는 인사들만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수진영의 대부분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국민과의 약속’ ‘신뢰의 정치’가 통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 지지층은 틀림없이 박 전 대표와 같이 갈 것이다. 보수진영의 분열은 이 대통령의 책임이지 박 전 대표의 잘못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먼저 ‘파트너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