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정국 향방 따라 국정동력·향후 정치구도 ‘흔들흔들’
박근혜·정운찬·정몽준·정세균·이회창…최대 수혜주 누구?
세종대첩 한가운데 잠룡들이 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수정 문제가 정국을 뒤흔드는 사안으로 부상하면서 잠룡들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 정국은 크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파워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양팔로 세종시 정국을 주도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와 정몽준 대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여권 대권주자로 확고한 위치를 마련한다는 분위기다. 반면 세종시 수정을 막아선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세종시로 지방선거는 물론 당의 위상까지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종시를 둘러싼 잠룡들의 정치 함수가 복잡하게 펼쳐지고 있다. 잠룡으로 꼽히는 이들 대부분이 정부 여당이나 야당에서 역할을 맡고 있어 대권뿐 아니라 지방선거를 비롯해 당내 상황까지 다각도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야 대표급 선수들
세종시 두고 격돌
이들은 세종시 정국에서 대권을 둔 전략과 전술을 요구받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 여론을 반전시키고 세종시 수정안을 통과시키느냐,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해 원안 내지 원안+α로 가느냐 하는 것은 1차적인 문제다.
정가는 이들이 당익과 대권, 민심의 3박자를 어떤 식으로 연계하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당장 2월까지 치열하게 펼쳐질 세종시 정국은 지방선거의 향배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잠룡들의 대선 시작점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 세종시 정국은 이들의 대선 출발 점수를 미리 볼 수 있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충청권이 역대 대선에서 최대 승부처가 돼 왔다는 것도 염두에 둘 만하다. 세종시 정국은 충청권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대권을 향한 긴 승부를 앞두고 든든한 지원군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차기 잠룡 중 첫손에 꼽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이미 세종시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정국이 시작되면서 계속해서 주도권을 놓지 않고 있다.
그는 세종시 수정 문제가 거론되자마자 ‘원안’ 추진을 강조했다. 정부의 수정안이 발표된 후에도 “내 입장은 이미 다 말했다”며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예 “원안이 배제된 수정안은 당론으로 채택돼도 반대한다”며 쐐기를 박았다.
상황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그가 짊어지게 된 정치적 무게감도 상당하다. 절벽 위에 진을 친 상태다 보니 한 발이라도 물러서는 것은 곧 ‘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 대통령과의 파워게임에서 진 것 외에도 박 전 대표를 노리고 있는 잠룡들에게 뒤를 내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 정객은 세종시를 둔 잠룡들의 기세 싸움을 언급하면서 “박 전 대표가 여기서 지면 그에게 다음 대선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정국에서 물러선다는 것은 ‘제왕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단했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깨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박 전 대표의 기세 아래 숨죽이고 있던 정몽준 대표 등 수많은 잠룡들이 그를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에게도 세종시 정국은 중요하다. 여기서 밀리기 시작하면 조기 레임덕을 피하기가 어려워진다”면서 “결국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죽음의 경기’를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정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단일대오를 유지했던 친박계에서 ‘이견’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친박 의원들은 세종시 수정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한 몇몇은 세종시 수정안과 원안이 조율된 새로운 안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다.
충청 뛰는 정운찬 총리
정몽준, 당론변경 승부수
이 대통령의 ‘세종시 양 팔’로 뛰고 있는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대표의 추격전도 대단하다.
정 총리는 정가에서 ‘세종시 카드’로 쓰인다. 세종시 수정을 위해 기용됐고 세종시 수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고 추진하는 것이 그의 몫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정 총리는 취임 후 세종시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최근 충청권에서 잰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후 일주일여 동안 두 차례나 대전과 연기, 공주를 방문했다. 지역민들과의 만남을 늘려가면서 ‘민심잡기’에 나선 것. 정 총리는 주말마다 충청권을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세종시 예정지뿐 아니라 천안, 아산, 서산, 태안은 물론 충북지역까지 방문해 충청권 행보 반경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정 총리는 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수정안 발표 당시 “개인이든 국가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면서도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있다면 뒤늦게나마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말해 박 전 대표의 ‘약속론’을 꼬집었다.
지난 13일에도 “정치적 계산, 정치적으로 사려 깊지 못한 일을 한 걸 고치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국가 대사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이라는 말로 재차 박 전 대표를 겨냥했다.
정 총리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후 ‘효용가치가 다했다’는 쪽과 ‘여권 대권주자로 부상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하지만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누리는 것이 정 총리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 총리와 함께 세종시 정국을 이끌었던 정몽준 대표는 어느 순간 정 총리에게 선두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 대표는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고 있는 박 전 대표와 본격적인 각 세우기에 돌입했다. 그는 “세종시 대안마련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중국에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했다”고 꼬집었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약속과 신뢰를 ‘세종시 수정 불가’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박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
또한 세종시 문제에 대한 ‘당론 수정’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대표는 “한나라당이 중요한 시험대에 놓였다”면서 “이 대통령에서부터 일선 당원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게끔 분위기를 조성, 당론을 확고하게 정하고 대오를 가지런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와 ‘전면전’을 통해 승부수를 띄운 것.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 대표의 당내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면서 정 총리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세종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끈 예산안 정국, 당내 조기전대 주장을 짚었다.
이 관계자는 “이는 기본적으로 당내에서 정 대표의 지지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박 전 대표를 누르지 못하고는 ‘반쪽짜리 당권’과 ‘불확실한 대권 구상’만을 손에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 대표가 주도하는 ‘세종시 당론 수정’이라는 승부수를 띄우게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세종시 정국에서만은 ‘동지’이자 ‘경쟁자’의 관계다. ‘세종시 수정안 반대’라는 공동전선을 펴고 있지만 충남지역에서의 세 확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충북지역에서 세가 강한 민주당은 이번 기회에 충남까지 세 확장을 노리고 있다. 반면 자유선진당은 충남에서 확고한 지지기반을 마련하고 전국정당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두 당 모두 낮은 지지율을 높이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충청권에 대한 구애를 멈추지 않고 있다.
손잡은 정세균·이회창
겉으론 웃고 속으론 경계
새해 벽두 이슈는 정 대표가 선점했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가 있던 지난 11일 충남 공주 계룡산에서 ‘세종시 원안 사수 결의 등반대회’를 가진 것. 이날 3000여 명의 당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당 지도부는 ‘세종시 원안사수를 통한 지방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 집중됐던 세종시 정국을 향한 이목은 곧 선진당으로 넘어갔다. ‘삭발’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탓이다. 지난 11일 류근찬 원내대표, 이상민 정책위의장, 김낙성 사무총장 등 선진당 의원 5명은 국회에서 열린 세종시 수정안 결사저지 규탄대회에서 삭발을 단행했다.
이회창 총재는 “이 정부의 완장문화에 분노를 느낀다. 오로지 천박한 자본주의에 기대는 하석상대, 아랫돌 빼서 웃돌 괴는 하루살이 정부의 모습뿐”이라며 “국정의 심오한 철학이나 원대한 비전은 전혀 없고 오직 충청권에 신도시 하나 더 만들겠다는 단견과 오기만 드러냈을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권은 잠룡들의 세종시 행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국민의 시선이 쏠린 상태에서 세종시 수정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소신과 당 안팎의 기세 싸움까지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가 한 인사는 “청문회나 국감이 ‘새로운 정치스타’를 찾을 수 있는 자리라면 세종시 정국같이 큰 이슈에서는 정치 거물들의 정치력을 두루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