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국회폭력 사건 무죄 판결에 “판사가 누구야?”
법원 향한 여권 공세 ‘우리법연구회부터 해체하고…’
사법개혁을 둘러싼 여야의 갈등에 우리법연구회가 된서리를 맞았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무죄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무죄판결로 촉발된 사법개혁 논란이 이념논쟁으로 번진 탓이다. 한나라당은 특위를 구성, 사법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강도 높게 주장했다. 우리법연구회 측은 색깔 논란을 일축하고 나섰지만 정권교체 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해체 주장은 쉽게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무죄 판결과 전교조 시국선언 무죄 판결 등 이른바 ‘진보 판결’의 불똥이 한동안 잠잠했던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검찰과 법원간 보이지 않은 파워게임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여기에 사법개혁을 외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뿌리 뽑기’ 작심 행보
법원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진보성향 판사들의 특정성향에 치우친 판결을 들먹이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 점거 농성을 벌인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공소기각 판결, 국회폭력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강기갑 대표의 무죄 판결, 전교조 시국선언 무죄 판결까지 판사들의 성향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강 대표의 무죄 판결 등 최근 ‘색깔논쟁’에 휘말린 판결이 집중된 서울남부지법이 먼저 구설수에 올랐다. 이어 이곳이 진보성향 판사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려있는 곳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평판사 60명 가운데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가 11명으로 비슷한 규모인 서울 동부지법이나 서부지법, 북부지법에 2~5명의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있는 데 비해 많은 진보성향 판사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정작 강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동연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회원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번 제기된 이념논쟁은 그동안 쌓여있던 해묵은 갈등까지 끌어안으며 타오르고 있다.
여기에 이광범 부장판사의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할 수 있다는 발언은 논란을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인 이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이기 때문이다.
때를 같이해 법원을 향한 공세를 벼르고 있던 한나라당에서 사법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거법 등 재판에서 우리법연구회 소속 법관이 주심 판사가 되지 않기를 희망해온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라며 “사회통념과 법 상식에 반하는 편향적 판결이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의 판결인지 알아보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일부 법관들이 보여준 정치성과 편향적 행태는 국민이 우려할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제 개혁으로부터 무풍지대에 있던 법원, 검찰, 변호사 등에 대한 사법제도 개선 필요성은 그 시간을 늦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면서 원내대표 산하에 사법제도 개선 특위를 만들어 사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나라당 사법제도 개선 특별위원회는 첫 회의에서 우리법연구회를 ‘이념 편가르기 사조직’으로 규정하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우리법연구회의 해체를 공식 요구키로 했다. 또한 우리법연구회 해체가 이뤄지지 않을 시 법원조직법을 개정, 법원 내 사조직 구성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특위는 우리법연구회뿐 아니라 법원 내 보수 성향 판사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에 대해서도 법원 내 위화감 조성 여부 등을 판단해 해체요구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판결을 수용할 수 없으면 절차에 따라 이의제기를 하면 되지 법관의 성향이나 이력을 문제 삼는 건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또한 검찰 개혁을 강도 높게 주장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사법제도 개선 특위를 만들자고 한다면 검찰제도개혁특위 구성을 전제로 참여해야 한다”며 “검찰 개혁에 대해선 눈감고 사법개혁을 하자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법연구회는 정치권의 논란에 입을 다물고 있다. 정권교체 후 계속된 명단공개, 해체 주장 등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여의도에서 불어오는 외풍에는 자못 담담해진 분위기다. 하지만 불편한 속내는 간간이 표출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 ‘부글부글’
우리법연구회장을 맡았던 박상훈 변호사는 “빨간색 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모두 빨갛게 보인다”면서 판사의 판결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지만 내용을 가지고 봐야지 판결을 한 판사가 어느 소속인가를 보고 할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우리법연구회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변호사는 민노당 당직자에 대해 판결한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니고 용산사건을 맡은 재판장도 5년 전 이미 탈퇴한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법연구회 해체 주장에 대해 “정치적인 사건에서 사법부 상층부가 흔들리면서 정권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사법부 독립을 지키려는 전통이 있었다”며 “헌법에서 사법부 독립을 부여한 것은 사법부를 위해 한 게 아니라, 정부나 입법부가 너무 심하게 나갈 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준 것”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