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하면 뭐해 갈 곳이 없는데…”

2010.01.19 10:05:00 호수 0호

女사법연수원생 A씨의 심경토로

대형 법무법인·정부기관·기업 채용계획 대폭 축소
“로펌에라도 취업하지 못하면 단독 개업 꿈도 못꾼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운 것 같아요.”
서울 종로에서 만난 사법연수원생 A씨(여)가 기자에게 던진 첫 마디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취업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여성 연수원생들의 취업이 사상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그녀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A씨를 통해 여성 사법연수원생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여성 사법연수원생들의 취업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져요. 여성 법조인의 경우 성적은 좋지만 임신, 육아 등의 사정으로 일하는 데 힘든 점이 많다는 이유에서죠. 성적이 낮은 남성 법조인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A씨는 이에 따라 여성 연수원생 사이에서 연수원 성적을 높여 법원·검찰에 지원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로펌에라도 취업하지 못하면 단독 개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한다.

무한경쟁 속 “갈 곳 어디야”

이 현실은 최근 사법연수원이 밝힌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사법연수원은 “39기 연수원생 978명 중 군입대 인원 188명을 제외한 790명 가운데 아직 취업을 못한 인원은 351명으로 미취업률이 44.4%에 이른다”며 “대형 법무법인이 채용인원을 줄이고 있고 정부기관이나 기업 역시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 없어 연수원생들의 취업 상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조인에 여풍(女風)이 불고 있다고 떠들잖아요. 그런데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사시 통과하면 탄탄대로란 말은 옛말이죠. 연수원에서 마련한 취업박람회 개최나 취업 알선 현장에도 찾아가 봤지만 최근의 경제상황 때문에 취업률이 무척 낮은 편이에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자 연수원생들이 취업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죠.”


A씨는 여성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고 기회가 허락되면 법조인으로서 여성 운동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을 가지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꿈을 펼치기도 전에 높은 취업문턱 앞에서 좌절을 맛보고 있다고. 이력서를 수십 개 뿌려봤지만 면접을 보라고 부르는 곳이 전무하다는 게 그녀의 얘기다.

“선배나 동기생들을 보면 요즘 진로선택도 다양해요. 5년 이상 장기복무를 해야 하는 군법무관에도 10배 이상 지원하고 국선전담변호사 지원율도 두 배 이상 높아졌어요.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셈이죠.”

그녀는 군법무관의 인기가 가장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장기군법무관의 경우 재직 중 해외 연수의 기회도 부여되며 복무를 마치고 나와서 개업을 하더라도 군사, 무기 등 자신만의 특화된 영역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몰린다는 것이다.

국선전담변호사 지원자가 급증한 이유에 대해 A씨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고 향후 경력법조인으로 임관될 가능성이 있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꼽았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그녀는 채용기관의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연수원생 A씨는 로펌 등에서 같은 성적이면 남자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꼽았다. 이 때문에 여자 사법연수생들이 취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 역시 군법무관과 국선전담변호사에 지원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 요즘은 사법연수원생들이 다소 기피하는 사내변호사에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사내변호사의 경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로펌의 보수에 크게 못 미치는 봉급을 받는데 그래도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되잖아요. 하지만 걱정이 앞서네요.”

A씨는 “왜 미리 걱정부터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지원자들에게는 좁은 문”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기업에서 선발하는 사내변호사의 수가 많지 않은데다 이마저 훈련비용에 부담을 느껴 3년 이상의 경력변호사를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만일 법조계에 진출하더라도 첩첩산중에 가로 막힌다고 한다. 가장 큰 장벽은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라고. 새 업무에 적응하고 매일 밀려드는 업무와 씨름하다 보면 세월은 훌쩍 지나고 사람을 만날 기회도 적기 때문에 배우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설명이다.

“결혼을 해도 문제죠. 직장과 가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데 우왕좌왕하다가 망쳐버리기 일쑤죠. 사실 법조인의 일이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선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게 문제예요. 이로 인해 아이 양육을 소홀히 하게 되고 결국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겨 놓고 두 집 살림 혹은 세 집 살림까지 하는 경우도 태반이죠.”

법복 대신 군복 입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난관은 남자들과의 경쟁이라고. 가정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타고난 체력을 바탕으로 업무에 전념하는 남자들과의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것.

“가정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선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어려워요. 정보와 인맥으로부터 소외되기 일쑤죠. 게다가 조직에선 리더십이 중요한데 인간관계 관리나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서툴죠. 이에 반해 남자들은 군대란 조직문화를 경험했기 때문에 리더십에 있어선 여자보다 한 수 위에 있다고 봐요.”

A씨는 “최근 사법연수원의 수료식은 우울하다는 평가가 많아요. 좁은 취업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죠. 법조인 사이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종래의 업무영역에 안주하지 말고 각자 소질과 능력을 살려 새로운 활동영역을 찾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이어 “취업이 되지 않을 경우 언제 해고될지 모르며 급여도 제대로 보장이 되지 않지만 고용변호사가 되거나 개인사무소에 2년 무급으로 들어갈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개업해서 적자를 보는 것보다는 무급으로라도 일을 배우는 게 좋지 않나요. 사법시험을 통과하면 인생이 보장된다는 말은 확실히 옛말이 됐다는 것을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어요”라고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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