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이뤄질 6월 지방선거 불안한 전망
흉흉한 분위기에 지방선거 패배, 급속한 레임덕 이어질라
흔들리는 정몽준 리더십 “지방선거 전에 장수 바꾸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안팎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미리 본 지방선거 결과가 참담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전패를 당하는 초유의 사태마저 예견됐다. 심지어 텃밭인 영남 지역에서도 야권의 후보단일화에 쓴 잔을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의 패배는 ‘새발의 피’라는 흉흉한 전망이 이어지자 한나라당에 비상이 걸렸다. 바닥민심의 이반은 당의 추락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당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에 탄력이 붙고 있다.
한나라당 곳곳에서 ‘최악의 사태’에 대한 우려와 위기감이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방선거와 관련된 예측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 눈길을 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율이 낮은 재보선과는 달리 총선이나 지방선거 등에서는 점차 그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부동층이 움직이고 대세론이 형성되는 등 2차적인 영향력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지난 대선부터는 본선뿐 아니라 당의 후보 경선이나 공천에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게 반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선거라는 큰 선거를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여론조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잔인한 여론조사
여권 지방선거 ‘전패’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내놓은 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수도권에서 전패당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와 한나라당을 충격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다.
모노리서치는 서울·인천·경기·대전·광주·강원 등 7개 광역단체와 서울 광진·구로·노원·양천·중구·영등포 등 6개, 경기 부천·성남·수원·안산 등 4개, 인천 남구·부평·서구·연수 등 4개 기초단체 지역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야권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서울시장 선거를 제외하고 모두 야권이 승리했다. 선거가 3파전이나 4파전으로 전개될 경우 여권의 후보가 우세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후보단일화에는 기를 펴지 못했다. 14개 기초단체 중 서울 노원, 영등포는 박빙으로, 나머지 12개 지역에서는 모두 야권 단일후보가 전승을 거두는 결과가 나온 것.
경기지사, 인천시장의 경우 단일후보와의 승부보다는 높은 재출마 반대 여론과 당 공천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초단체의 경우 경기 4개, 인천 4개 지역 모두에서 야권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세종시 정국의 중심에 있는 충청권에서는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게 나타났다. 대전시장 선거의 경우 박성효 현 시장이 세종시 원안 추진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야권 후보에게 ‘물갈이’ 됐다.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민주당의 세가 강한 충북에서도 야권의 돌풍이 예고됐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변함이 없다면 충청지역은 물론 여권의 세가 강한 수도권 지역 전역에서도 야권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은 물론 한나라당의 텃밭인 영남에서도 야권 단일후보는 돌풍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친노 진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들은 친노 정서가 녹아있는 부산은 물론 대구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5월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이기도 해 ‘노풍’이 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 다른 여당 강세지역인 강원도에서도 민심의 변화가 읽혔다. 김진선 지사가 3선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여야가 각축전을 벌인 전망이다. 출마가 거론되는 후보들의 삼파전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의 세가 강했지만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했을 경우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정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평가의 기준점은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가 될 것이다. 광역단체장은 정치 거물들이 도전장을 내미는 만큼 ‘인물’에 대한 선택이 강하다면 기초단체장은 정당에 대한 바닥민심이 드러나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초단체장 선거가 야권의 후보단일화에 맥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여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 지도부 향한 경고
‘1995년 악몽’ 재현될까
여론조사 결과 외에도 여권 곳곳에서 지방선거에서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세 의원은 지방선거 전망을 어둡게 봤다. 권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는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를 맞아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 보니 현 정부에 반대하는 분들의 투표참여율이 훨씬 높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 의원의 말처럼 최근 투표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의 경우 투표율이 39%에 달했다. 이는 17대 총선 이후 6차례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 평균 투표율인 34.9%를 상회하는 것이다. 또한 4월 재보선의 투표율은 40.8%로 역대 투표율 중 가장 높았다.
권 의원은 “우리가 2006년도 선거를 생각하고 또 2002년도 선거만을 생각하는데, 당시 두 선거는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를 했던 때로 그걸 우리가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며 “거꾸로 우리가 전신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자당이 여당 시절에 치렀던 1995년 선거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1995년 선거에서 민자당은 서울지역 구청장 25곳의 선거 중 2곳에서만 이기고 23곳에서는 모두 졌다.
권 의원은 “6월 지방선거의 상황이 그런 정도로 나쁘지는 않겠지만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가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넉넉하게 이겼던 2002년, 2006년이 아니라 1995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5년의 악몽’은 그 자체로도 살벌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후 YS정권이 급속히 레임덕에 빠져 들었다는 점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이 대통령의 중간평가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1995년의 사태가 재현된다면 이명박 정권도 레임덕 위기를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 당장 세종시 수정이나 4대강 사업 등 이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하는 일들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한나라당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보니 이에 대한 대응책도 거론되고 있다. 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지난 4월, 10월 재보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후 당 쇄신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하지만 논의만 이뤄졌을 뿐 제대로 된 ‘물갈이’는 없었다. 이에 소장파 등 개혁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이 있어왔다. 물리적인 조건과 여야 대치정국 등으로 수그러들었던 조기전대론이 최근 다시 일고 있다.
한나라당 개혁 성향 초선 모임인 ‘민본21’은 조기전대 주장의 맨 앞에 서 있다. 민본21의 김성식 의원은 “당내에서 당원의 신임도 받고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분들이 전면적으로 경선에 나서 정말로 지도부가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더 반석 위에 올라가는 그런 계기가 필요하다”며 조기전대 개최를 주장했다. 내년 3월쯤 조기전대를 열어 화합과 쇄신, 단합의 전당대회를 이루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내 소장파의 리더 격인 남경필 의원도 “당 대표의 지도력을 확립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현 리더십을 가지고는 어렵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해결방법을 당 안에서 논의해야 될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더했다.
조기전대론 확산
장수 바꿔 선거 나선다
조기전대 요구가 빗발치자 내부적으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2~3월쯤 조기전대를 열어 새 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여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제는 계파간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있다는 것과 전대에 참여할 이들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기전대 주장엔 친이계와 일부 친박계, 중도성향 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 주류는 오히려 전대를 8월쯤으로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고 친박계는 7월 전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참여 여부도 관건으로 꼽힌다. 지방선거를 이끌 새 대표에 가장 적합한 이로 ‘선거의 여왕’인 박 전 대표가 한손에 꼽히는데다 조기전대 개최를 위해서는 친박계의 동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광근 사무총장도 “조기전대가 되려면 우선 박 전 대표가 어떤 의중을 갖고 있는가, 본인이 직접 조기전대에 나올 의지가 있는가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가 참여하지 않는 조기전대는 무의미하다는 것은 상당수 친이계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직접 전대에 참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친박계는 조기전대 주장 자체를 지방선거에서 박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속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 한 관계자는 “이미 야권의 강세가 점쳐지고 있는 지방선거를 향해 박 전 대표의 등을 떠미는 것은 박 전 대표에게 지방선거의 책임을 묻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린다”며 “박 전 대표가 지금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기전대 개최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하루하루 다가오는 지방선거 앞에 한나라당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