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24탄] 한미약품 ‘슬리머’

2009.10.20 09:58:55 호수 0호

위험천만 살빼기… 비만치료제 알고 먹습니까?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식욕의 계절’가을이다. 요즘 부쩍 ‘밥맛’이 좋아 고민인 사람이 많다. 비만자라면 더욱 그렇다. 그만큼 가을은 날씬한 몸매에 유독 신경 쓰는 시기이기도 하다.



3개월 체중 6% 감소
기존보다 가격 저렴

한 조사 결과를 보면 2007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만 19세 이상)의 비만 유병률은 31.7%다. 3명 중 1명이 비만인 셈이다. 지난 10년간 국내 비만 인구는 약 6% 증가했으며, 남성의 경우 10년 동안 해마다 1%씩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는 2025년 성인 2명 중 1명이 비만환자가 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이에 따라 비만치료제 시장이 가열되고 있다. 국내외 제약사들은 저마다 야심작인 ‘살 빼는 약’을 내세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만 인구와 비례하는 비만치료제 시장은 지난 3년간 무려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비만약 시장 규모는 2006년 603억원, 2007년 760억원, 2008년 890억원으로 해마다 약 15∼2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고혈압, 당뇨 등 주요 성인병의 원인 중 하나인 비만 자체를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고 있다”며 “여기에 식욕이 왕성해지는 가을철엔 다이어트를 위해 비만약을 찾는 사람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비만 치료법은 식사요법, 운동요법, 행동조절요법, 약물치료, 치아고정, 위절제술 등이 있다. 이 중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살을 뺄 수 있는 비만치료제를 복용하는 방법이 최근 소비자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한미약품의 ‘슬리머’다. ‘슬리머’는 그동안 외국 제약사들이 독점했던 비만치료제 시장에 당당히 ‘토종’이름표를 달고 도전장을 던져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미약품은 200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 허가를 받아 ‘슬리머’를 시판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최초였다. 한미약품이 ‘슬리머’개발에 쏟은 기간은 5년. 모두 40억원이 넘는 개발비를 투입했다. 한미약품은 앞서 2004년 개발을 완료해 식약청에 제품 허가를 신청했지만, 미국 제약사 애보트의 비만치료제 ‘리덕틸’과 특허 분쟁에 휘말려 3년 만에 선보일 수 있었다.


‘슬리머’는 한미약품의 ‘개량신약 프로젝트’에 의해 탄생한 제품이다. 개량신약은 기존 신약의 일부 성분을 개선해 새롭게 만든 약으로, 신약과 약효성분은 똑같지만 약효를 보강하거나 복용법을 다르게 하는 기술이다. 일찌감치 이 분야에 매달려온 한미약품은 원료합성에서 완제품까지 ‘슬리머’의 전 공정을 100% 자체기술로 개발했다.

3명 중 1명 ‘뚱보’…‘살 빼는 약’시장 갈수록 가열
한미, 국내 제약사 최초 시판 “외국사 턱밑까지 추격”

한미약품에 따르면 ‘슬리머’는 서울아산병원 등 5개 병원(6개 센터)에서 200명의 비만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체중감량 효과가 입증됐다. 투약 3개월 만에 체중은 평균 6%이상, 허리둘레는 5cm 이상, 엉덩이 둘레는 3.8% 이상 줄어들었다. 체질량지수(BMI)도 1.9kg/㎡ 감소했다. 또 중성지방과 LDL 콜레스테롤이 감소한 반면 몸에 좋은 HDL 콜레스테롤이 증가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슬리머’는 이 같은 뛰어난 효능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연구개발상인 ‘IR52 장영실상’과 지난 7월 특허청의 특허기술상인 ‘충무공상’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슬리머’의 매력은 가격이다. ‘슬리머’는 기존 비만치료제보다 절반가량 싸다. 거의 비슷한 효능의 외국 제품들과 비교하면 한 달 복용시 약 40∼50% 정도 싼 6∼7만원선에 공급되고 있다. 

외화손실과 환자 약제비 부담을 줄인 것이다. 한미약품 측은 “개량신약은 산업발전과 국민 의료비 절감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탁월한 효능과 약가 부담을 대폭 줄인 덕에 ‘슬리머’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출시 2년 만에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훨씬 먼저 스타트를 끊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결과를 얻었다. 

한미약품의 ‘효자 상품’이자 ‘대표 상품’으로 군림한 ‘슬리머’는 출시 6개월 만에 14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발매 시작 후 지난 7월 현재 2년간 누적 매출이 35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와 올해 1분기당 평균 매출은 40억원을 넘어 50억원에 육박한다. 지금까지 복용인원만 70만명을 기록 중이다. 나아가 한미약품은 ‘슬리머’를 들고 글로벌 시장을 적극 두드리고 있다. 

이미 ‘슬리머’는 국산 비만치료제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한미약품은 2007년 7월 ‘슬리머’를 내놓자마자 호주 제약회사 아이노바와 7년간 1억4000만 달러 규모의 라이선스 및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슬리머’는 아이노바를 통해 호주, 남아프라카공화국, 대만, 필리핀 등 7개국에 수출된다.

주성분 ‘시부트라민’
의사 처방 전문의약품

한미약품 관계자는 “‘슬리머’는 7개국 이외 다른 국가로의 수출작업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 글로벌 사업에서 가시적 성과가 곧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조만간 해외 진출 첫 사례가 아닌 전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다른 약제품과 마찬가지로 ‘슬리머’도 부작용을 주의해야 한다. ‘슬리머’는 의사 처방이 있어야 구입이 가능한 전문의약품인 만큼 반드시 필요한 비만 환자만 복용(1일 1회 1캡슐씩)해야 한다.

‘슬리머’의 주성분은 시부트라민에 염산염(리덕틸의 주성분 염산시부트라민)을 메실산으로 치환한 메실산염을 부착한 ‘메실산 시부트라민’이다. 메실산 시부트라민이 첨가된 비만치료제는 세계 첫 제품으로 국내 특허는 물론 미국,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해외 10여 개국에 특허 등록됐고, 50여 개국에서 특허출원 심사 중이다.


11.51㎎과 17.26㎎ 두 종류인 ‘슬리머’에 첨가된 시부트라민은 1캡슐당 각각 8.37㎎, 12.55㎎이다. 식약청은 시부트라민의 1일 최대 허용량을 12.55㎎으로 제한하고 있다. 비만을 치료하는 전문의약품들의 주성분은 시부트라민과 오르리스타트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식욕억제 작용을 하는 시부트라민은 지방흡수 억제로 비만을 막는 오르리스타트 성분에 비해 채식 위주인 한국인에게 적합한 비만치료제로 평가받는다. 

혈압, 두통, 불면증 등 부작용 주의 

회사 측 “식욕억제 자연스런 현상”

FDA(미국식품의약청)에서도 장기간 복용이 가능한 비만치료제로 승인했다. 시부트라민은 대뇌 시상 하부의 포만중추에서 세로토닌과 노아드레날린의 재흡수를 차단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오래 느낄 수 있게 한다. 보통 식사량을 20% 정도 감소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심혈관·고혈압 환자가 섭취할 경우 혈압상승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또 뇌졸중과 가슴 통증, 두통, 소화불량, 구갈, 변비, 수면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임신, 수유 중인 여성과 소아(16세 미만)에겐 권장되지 않으며, 임의대로 구입할 수 있는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에 사용이 금지돼 있다. 눈에 띄는 우려는 정신계 부작용이다. 불면증, 우울증, 어지러움, 신경증, 졸음, 감정불안 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극히 드물지만 심하면 자살 충동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게 전문의들의 전언이다.

실제 지난 7월 중국에선 시부트라민 성분 20㎎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 10여 명의 여성들이 심각한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보건당국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다이어트 정보를 공유하는 국내 인터넷 카페에도 ‘슬리머’를 복용한 소비자들이 이런 증상을 호소한 글들이 올라있다. A씨는 “병원에서 처방해준 ‘슬리머’를 먹은 뒤 입이 바짝 마르고 헛구역질도 자주 한다”며 “복용 1주가 지난 뒤엔 불면증으로 잠을 잘 못자고 있다”고 전했다.

B씨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겠지만 복용 초기 심장이 뛰고 하루 종일 짜증만 났다”며 “4주 정도가 지나서야 이 증상들이 없어졌으나 여전히 머리가 멍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 체험자는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다가 갑자기 죽고 싶다는 자살 충동이 들었다”며 “증세가 심해 병원에서 정신 치료까지 받아 현재 병원과 약국을 상대로 고소와 소송도 생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시부트라민의 위험성을 감안해 ‘슬리머’는 비만치료 경험이 있는 전문의의 처방이 필수인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인터넷 불법 거래가 이뤄지는 등 무분별한 유통 실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약사법에 따르면 처방받은 약을 판매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개인이 먹다 남은 약을 팔아도 그렇다.

한 전문의는 “비만치료제는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을 병행해야 효과가 높은데 통상 4주에서 3개월까지 먹어도 효과가 없으면 복용을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약 투여 후 이상반응이 나타나거나 고혈압환자,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환자 등은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살 충동 들었다”
인터넷 불법 거래도

또 다른 의사는 “아무리 중독성이 없는 비만치료제라도 장기 복용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한 달 이상 처방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다이어트에 열성적인 소비자들은 처음엔 일반의약품을 찾지만 효과가 없을 경우 더 센 중독 성분의 약품을 찾을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약품 측은 ‘슬리머’의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신했다. 복용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증상들이 식욕을 억제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란 설명이다. 

정신계 부작용에 대해선 임상시험 결과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단언했다. 회사 관계자는 “보통 개량신약은 일부 전임상, 임상 1상만 거치면 되는데 ‘슬리머’는 신약에 준하는 개발 과정인 전임상과 1상에 이어 3상 시험을 실시해 임상적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했다”며 “이는 외국 유명 기관들의 논문에도 게재돼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작용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 일반 약품들에서도 흔히 주의를 요하는 극히 일부의 일시적 현상”이라며 “시부트라민 성분도 의사의 적절한 처방과 기준치 이하로 사용하면 안전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며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복용해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