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노사 선진화 실태 다시 불붙은 노조전임자 예우 논란

2009.10.13 09:35:32 호수 0호

MB정부 노사관계 혁신 의지“불안하다”

노사 선진화 방안의 핵심 과제인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 게다가 여론까지 금지 쪽으로 의견이 모인지 오래지만 제대로 드라이브가 걸리지 않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눈치 보기와 노동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 가다간 내년 1월 금지법 시행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흐지부지 표류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거꾸로 가고 있는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문제의 핵심들을 짚어봤다.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등 노동조합법 내년 1월 시행
정치권 ‘눈치보기’노동계 ‘강경모드’에 표류 기미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논란의 핵심은 일손을 놓고 있는 노조전임자에게 굳이 회사에서 월급을 줘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뿐더러 노조전임자 주도의 무리한 투쟁을 불러오는가 하면 툭 하면 터지는 비리·부패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여당, 여론…
“건전한 노사 저해”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에서 급여를 받은 국내 전체 전임자는 1만583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는 149명. 1990년 219명, 2005년 153명보다 줄어들었다. 이는 근로자수에 비해 전임자수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참고로 일본은 전임자 1명당 조합원수가 500∼600명, 미국은 800∼1000명, 유럽연합(EU)은 1500명 수준이다. 전임자가 받는 임금 총액도 지난해 4288억원으로 2005년 3439억원보다 849억원(25%) 증가했다.

연구원 측은 “조사 대상 사업장의 83.7%가 전임자에게 평균임금(55.5%) 또는 평균임금 이상(28.2%)을 지급하고 있다”며 “기업 340개 전임자 1199명의 연간 임금 총액이 518억원이므로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이 평균 1인당 43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임자가 존재하는 현실이 발전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가로막고 각종 부당한 관행의 근원”이라며 “전임자 급여 지급으로 인해 ‘노동귀족’이 존재하고 노동운동의 ‘직업화’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노조 왕국’ 현대차만 들여다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한국의 노사관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외 신인도 및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현대차 노사는 당초 단체협약을 통해 98명을 전임자로 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론 임시상근직 110여 명을 포함해 214명이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2배 이상 초과한 셈이다.

이들은 출·퇴근 면제는 기본, 일절 회사일을 제쳐두고 노조 업무에만 몰두하면서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게다가 교대로 일하는 일반 근로자가 기본급과 잔업수당만 받는 데 비해 전임자는 기본급에 고정 잔업수당, 휴일 특근 수당 등 갖가지 수당을 더 얹어 받는다. 핵심 전임자들은 회사로부터 차량 및 유류비를 지원받는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과 같이 기업별 노조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임자 급여를 노조의 재정으로 지급하고 있다. 현대차와 ‘라이벌’인 닛산과 도요타가 대표적인 예다. 닛산도 전임자를 두고 있지만 그 수는 60여 명에 불과하다. 조합원수가 3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1명당 조합원수가 500여 명꼴이다. 이들이 받는 급여와 보너스 등은 모두 노조 재정에서 지불된다.
 
도요타의 노조원은 6만3000여 명으로 이 중 전임자는 80여 명이다. 전임자 1명당 조합원수가 790명인 꼴이다. 선진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은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100% 노조가 부담할 뿐만 아니라 ‘노조에 대한 경비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노조가 전임자 급여 지급을 회사에 요구하는 행위는 물론 기업이 노조에 금전을 지원해도 형사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영국도 회사가 노조에 어떤 금전 및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 노조는 회사로부터 개입을 받지 않는 독립성·자주성 유지를 위해 회사에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관례다. 따라서 국내도 노조전임자에게 회사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여론 반응도 그렇고 재계 입장은 당연히 그렇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71%가 ‘회사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일손 놓은’ 노조 전임자에게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재계는 노사 관계 선진화 차원에서 급여 지급 금지가 반드시 필요하고 대신 조합비로 자체 충당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그만큼 폐해가 적지 않다는 까닭에서다. 재계는 전임자 임금 지급 폐지 이유로 ▲기업의 부담 가중  ▲전임자 지위 유지를 위한 무리한 요구 및 비합리적 투쟁 주도 ▲전임자의 특권화와 권력화에 따른 비리·부패 만연 등을 꼽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노사관계는 근로자가 생산에 필요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며 “그러나 그동안 전임자는 회사가 지급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기보다 투쟁이나 상급활동만 치중해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모 기업 임원은 “올해 파업 한 70여 개 기업 중 협상 타결 후 임금을 보전해준 곳은 한 군데도 없다”며 “반면 노조 전임자 급여는 여전히 지급하고 있어 건전한 노사관계 정착을 저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다시 수면 아래로?
당정 “예정대로 간다”

정부의 방침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이 문제를 노사 선진화 방안의 핵심 과제로 삼고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면 반대로 기업 활동 여건이 나아져 생산성 증가, 안정적인 노사 관계 유도 등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전임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아서는 안 되고, 회사도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이미 1997년 개정된 바 있다. 현행 노동법에서 사용자(회사)가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것. 사측이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정 당시부터 노사정간 첨예한 갈등 양상만 보이다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과 노조의 재정적 여건 등을 감안해 3차례의 유예 조치 끝에 최종 합의한 유보 기간이 바로 올해까지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지난 7일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전임자 임금 지급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임금을 조합비로 충당하지 않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내년에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말해 내년 법 시행의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법 시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당론을 정한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또다시 노동조합법 시행이 정치권의 눈치 보기와 노동계 반발의 벽에 부딪혀 표류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법 시행이 지난 13년간 정치권에서 논의만 하다 줄곧 제자리였던 점에서 이대로 가다간 흐지부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노동계가 발목을 잡을 태세다. 노동계는 전임자 임금 부분을 아예 삭제하거나 법으로 규정하기보다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반론을 펼치고 있다.

있으나 마나 ‘타임오프’중재안
이미 법제화 적용…기준도 모호
“더 큰 노사 갈등·혼란 초래”


법 개정시 3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노조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 조합원 300인 미만 노조에선 조합비보다 전임자 임금이 많았으며 100인 이하 노조는 조합비가 전임자 임금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것으로 조사됐다”며 “당장 회사의 지원이 끊기면 300인 미만 사업장 노조는 있으나 마나 한 조직으로 전락하고 단위 노조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전체적인 노조 활동 기반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단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강경 모드로 돌입한 것. 한국노총은 지난 8일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노사정위의 모든 논의기구 참여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아가 한국노총은 조만간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총파업과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등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민주노총도 한국노총과 연대해 반 정권 투쟁을 벌인다는 복안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장외투쟁 본격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민주노총 측은 “전임자 문제는 한국 노동현실에 맞게 다뤄야 하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를 금지시키려는 것은 노조를 없애려는 의도”라며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야당도 힘을 보태고 있다. 야당은 노동조합법이 노조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만큼 반대하거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여당 일부 인사들도 정부와 시각 차이를 보이는 등 법 시행까지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무엇보다 노사정위에서 중재안으로 마련한 ‘타임오프’(Time-off)에 대해 말들이 많다.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노조공동 활동을 한 시간만 임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노사공동 활동은 노동자 고충처리, 단체교섭, 산업안전 관련 활동, 권리구제기구 활동, 노사공동기구 및 노사협의 등이다. 유급 처리되지 않는 순수 노조활동은 노조 가입 권유 등 조직활동과 조합홍보, 노조 자체 회의, 상급단체 활동 참여 등이다.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 노조전임자와 노사 공동업무에 종사하는 협의위원은 명확히 다르다.

결국 전임자 대상과 활동 시간 등 범위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선 기존보다 더 큰 노사 간 갈등과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타임오프 폭을 넓혀 달라는 노조의 요구가 뻔하고 이럴 경우 오히려 제도권에서 음성적으로 전임자를 지원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는 타임오프제가 새로운 제안이 아니라고 일축한다.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사업무 종사자는 타임오프제를 적용해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는 노사협의회 등에 참여하는 근로자에게 해당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타임오프제’저울로
시행 시기 늦춰지나

재계 한 관계자는 “전임자 급여 지원 금지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이자 노사협력부문에서 세계 최하위의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는 등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며 “과거 세 차례 유예와 같이 또 유예될 경우 법적 안정성에 심각한 훼손이 우려되고 있어 혁신 의지를 굽히지 않는 정부를 비롯해 정치권이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