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화가 임태규

2014.02.05 10:52:12 호수 0호

"그림 보는 법?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세요"

[일요시사=사회팀] 한국화가 임태규는 자신의 그림과 관련한 온갖 질문에 대해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대학로 푸에스토에서 '흐린 풍경(Blurry Scene)'이란 주제로 전시를 연 임태규는 소탈한 웃음과 함께 "작품은 감상자의 것"이란 견해를 거듭 드러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상으로 꼽는 임태규는 그림을 통해 관객과 예술가가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임태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말했다. 감상은 객관이 아닌 주관의 영역, 더구나 계량화가 불가능한 마음의 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것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밥은 얼마나 먹었고, 소주는 얼마나 마셨으며, 먹이나 물감은 얼마나 썼는지…. 이런 것들은 수치로 계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림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림을 그리며 내린 순간의 판단 등은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조차 계량화시키려고 해요. '그림을 그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 '작품의 주제가 한 마디로 뭐냐'처럼요."

임태규는 지난 전시 주제였던 '보여주는 것,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서 자신의 철학을 슬쩍 드러냈다. 그는 관객에게 흐린 풍경을 '보여주면서' 작품 안의 특정 대상(인물이나 소나무, 나룻배 등)을 '보이도록' 했고, '보이지 않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장지 위에 백토를 쓴 다음 사포질을 하는 수고로움도, 세밀하다 못해 조심스럽기까지 한 정교한 붓놀림도 그에겐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제 그림은 그때그때의 감성을 표현한 건데 각각의 선과 색에 어떤 의도가 담겼냐고 물으면 실은 저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나이가 들어 그런지 기억이 흐릿해지는 거 있죠? 그래서 이번 전시 주제가 '흐린 풍경'인 거고요(웃음)."


임태규의 작가 노트를 보면 '흐린'이란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우린 비 내리는 날을 흐린 날이라고 하며,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의 갈대를 볼 때도 시야가 흐릿하다고 한다. 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떠올린 기억들이 가물가물할 때도 사람들은 흐릿하다는 말을 쓴다.

임태규는 이번에 걸린 작품들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았던 '구체적인 자연'의 '흐릿한 기억'과 '사실'로 남아있지만 떠오르는 '추억'들이 반영된 모습인 것이다.

"이번 작품은 강원도 풍경이 많아요. 영월, 정선, 평창 등 강원도를 다닌 지 한 30년은 된 거 같아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또래(40~50대)고,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나이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바람을 현실로 보면 의인화된 소나무가 현실을 버티고 있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고요. 나룻배 같은 경우에는 떠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딘가에 정박해 있어요. 자유롭고 싶은데 현실에 걸쳐져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놓인 인물의 감정을 다룬 거죠."

흐릿함과 진함 대비로 관객 참여 유도
'동양의 미' 지키면서 현대 흐름 수용

임태규는 "모든 그림마다 사연 없는 그림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그림도 동양적인 것을 지키면서 현대적인 흐름을 수용하는 과정 속에 탄생했다고 밝혔다. "흐린 풍경이라 처음 보면 잘 안보이지만 30분 정도 얘기하면서 천천히 보면 점점 잘 보인다"는 농담도 곁들였다.

"한국화는 서양화와는 접근을 달리해야 해요. 이건 인상파야, 이건 고흐풍이야. 이렇게 객관화 혹은 범주화해서 그림을 보는 건 서양식 감상법이죠. 동양의 감상법은 달라요. 그림도 주관적이라는 거죠. 작가마다 각각의 형식이 있고,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냥 그리는 풍경은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 그림에 빈 땅과 빈집이 많이 등장하는데 요즘 시골에서 생긴 어떤 사회문제를 읽으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임태규의 풍경은 어느 한 시점으로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흐릿함과 진함의 대비는 시선의 변화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이를 따라가는 관객은 마을로부터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호수를 지나 산 위로 오르기도 한다. 작품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작가가 의도한) 인생의 갈래를 경험하는 셈이다.

사연 있는 그림

임태규는 작품 활동 중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도가 철학을 배우고자 서울 한 유명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보지 않는 그의 감성은 장자의 가르침과 맥이 닿아있다.

"여기저기서 동양미학에 대한 번역이나 출판 요구가 많아 고생입니다. 하지만 장자 연구도 그림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가올 5월에는 아내와 함께 2인전을 하게 될 것 같아요. 300호 정도 되는 대작을 준비 중인데 작업이 끝나면 또 오십견이 올까 걱정이네요(웃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임태규 작가는?]

▲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동양화 전공
▲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 박사
▲ 개인전 18회(인데코화랑,백송화랑,샘터갤러리,가나아트스페이스,조선화랑 등)
▲ 기타 기획전 및 초대전 250여회
▲ 동아미술제 회화1부 '동아미술상' (92, 국립현대미술관)
▲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 '우수상' (93, 국립현대미술관)
▲ 『장자 미학 사상』『의경(意境)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2013) 저
▲ 성균관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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