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공석 1년> '주인없는' SK그룹 상황은?

2013.12.09 11:27:33 호수 0호

회장 없어도 회사 잘 돌아간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 상위권 기업의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오너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실적 악화와 유동성 관리 실패까지 더해져 내년 기업 경영활동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런데 SK그룹은 다르다. 최태원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 계열사들이 양호한 실적을 이끌어 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최 회장을 옹호하기 위해 그룹이 제기했던 경영공백 우려는 '엄살'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 1년이 다 돼 간다. 최 회장은 SK그룹 펀드자금 중 약 45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최 회장 측은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에 나섰지만 2심에서도 1심에서의 형을 그대로 선고 받았다. 최 회장은 현재 대법원에 상고,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 SK그룹은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의장으로 김창근 부회장을 선임했다. 수펙스 산하 6개 위원은 전략위원장에 하성민 SK텔레콤 대표, 글로벌성장위원장에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커뮤니케이션위원장에 김영태 SK(주) 사장, 윤리경영위원장에 정철길 SK C&C 사장, 동반성장위원장에 김재열 SK(주) 부회장, 인재육성위원장에 김창근 부회장을 선임했다.

수펙스 중심으로
임직원 똘똘 뭉쳐

최 회장 구속에 대해 SK그룹 측은 그룹 전반적으로 경영 공백이 크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오너리스크'다. 오너리스크는 '오너 경영'의 한계다. 총수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오너 경영의 경우 총수가 경영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SK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을 보면 최 회장의 공백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SK그룹은 수펙스를 중심으로 오너 부재와 유례없는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악재 속에서 계열사들의 양호한 실적을 이끌어 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는 계열사는 SK그룹의 지주사 격인 SK C&C다. SK C&C는 기업규모만 놓고 보면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다른 주력 계열사에 비할 바 못되지만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최고 핵심 계열사다. SK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최 회장-SK C&C-SK(주)-상장 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SK의 상장 계열사는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C, SK케미칼, SK하이닉스, SK네트웍스, SK건설, SK해운, SK, SK가스, SK컴즈, 로엔엔터테인먼트, 실리콘화일, 부산도시가스, 유비케어, SK브로드밴드 등 16개사. SK C&C는 SK(주)의 지분 31.8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SK(주)는 SK텔레콤(25.22%), SK이노베이션(33.4%), SKC(42.5%), SK네트웍스(39.14%), SK건설(40.02%), SK해운(83.08%)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 C&C는 3분기 매출액 5549억원, 영업이익 598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액은 1.8%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고 영업이익은 18.7% 증가했다. 특히 SK C&C는 올 3분기 글로벌 사업에서만 12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22.23%에 해당된다. 전년 동기 글로벌 사업 매출이 766억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61.1% 이상 높아진 금액이다.

계열사 대부분 승승장구…오너 존재감 실종?
주가도 구속 전보다 상승 "공백 우려는 엄살"

국내 SI 업계 경쟁사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실적이다. 독보적 업계 1위 삼성SDS의 경우 3분기에 매출액 1조759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1449억원. 전년 동기에 비해 6% 상승했다. LG CNS는 지난해보다 8% 증가한 7157억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165억원을 기록했다. 삼성SDS와 LG CNS는 오너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주가도 상승 추세다. 최 회장 구속 전날인 지난 1월30일 SK C&C의 주가는 10만4000원. 4월16일 8만76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4일) 13만1500원으로 껑충 뛰었다.

SK C&C는 투르크메니스칸 안전도시 구축사업과 방글라데시 정부네트워크 백본망 구축 사업 등 대형 글로벌 IT서비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하반기 성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중국 현지 공장 화재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 4조840억원, 영업이익 1조1640억원을 올렸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영업외비용 반영 등에 따른 당기순이익은 958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앞서 2분기 매출 3조9330억원, 영업이익 1조1140억원을 넘어서는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월 SK그룹에 인수됐다. 이후 실적은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우시공장의 화재는 ‘전화위복’격이 됐다. 우시공장은 전세계 D램 생산량의 13% 가량을 제조해왔다. 그런데 화재로 인해 D램 수급에 비상이 걸렸고 이에 따라 PC용 D램 현물가격이 대폭 올랐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D램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화재로 인한 출하량 차질을 최소화했다. 생산 물량은 그대론데 가격만 오른 효과를 본 셈이다.

공장 화재 악재
'전화위복'


SK그룹의 또 다른 주력회사인 SK텔레콤의 실적도 양호하다. SK텔레콤은 지난 3분기 매출 4조1246억원, 영업이익 5514억원, 순이익 5022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 같은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 1%, 영업이익 88.4%, 순이익 32.6%가 각각 늘어난 것이다.

통신시장의 포화 속에서도 SK텔레콤의 LTE 가입자는 9월 말 기준 약 1227만명을 기록, 전체 가입자의 45%를 넘어섰다. 가입자당 매출도 전분기에 비해 2.6% 오른 3만4909원을 기록했다. 평균 해지율은 지난 분기 2.27%에서 2.25%로 감소했다.

16개 계열사의 누적 실적을 봐도 매출은 소폭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급등했다. 올 3분기 유무형자산취득액은 8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5% 감소했고 매출액은 135조7000억원으로 3.3% 감소했다. 하지만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6%나 끌어올렸다. 시가총액 또한 연초 이후 69조7182억원에서 78조5312억원으로 8조8130억원(12.64%) 증가해 10대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SK건설의 해외사업도 우려와는 다르게 상승세다. 최 회장은 '기업 가치 300조원'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해외 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하지만 지난 1월 법정구속됐고 재계는 SK그룹이 중국·동남아·중동·중남미 등지에서 추진해왔던 해외사업과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가 올스톱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존에 벌려놨던 해외사업들의 유지 여부도 미지수로 남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시총,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상승률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SK건설만 봐도 그렇다. SK건설은 지난 6월 12억 달러 규모의 칠레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를 따냈다. 또 터키에서 사업비 9억5000만 달러 규모의 초대형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TSP 사업' 덕분이다.

TSP는 토탈솔루션 프로바이더(Total Solution Provider)의 약자로 고객에게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SK건설의 사업 모델이다. 그룹 계열사들의 역량을 모아 신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기본설계 및 유지 관리까지 수입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시공 중인 주롱아로마틱 콤플렉스 프로젝트의 경우 SK건설은 설계와 시공 등을 맡고 있다. 준공 후 관리는 SK종합화학이 수행한다. 터키 유라시아 터널 프로젝트와 베트남 해상공사 역시 SK건설이 수주했다. 지난 2일에는 6억8000만 달러 규모의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프로젝트도 수주했다.

중국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중국 선전에 최첨단 건강검진센터를 건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을 위해 중국 측 파트너인 비스타와 지난 5월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현재 중국 정부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SK그룹이 중국 헬스시장에 진출한 것은 지난 2004년 SK그룹의 중국 현지법인 SK차이나를 통해 한·중합작병원 'SK아이캉병원'을 개원한 이래 두 번째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9월 중국 국유기업 닝보화공과 합작사인 닝보SK를 출범시키고 고기능성 합성고무인 에틸렌프로필렌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베이징자동차그룹 및 베이징전공과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안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은 내년 하반기까지 연간 전기차 1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팩 제조라인을 구축하고 2017년까지는 생산 규모를 2만대 분량으로 늘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지난 6월 말 중국 최대 정유회사인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와 총 3조3000억원을 추자해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나프타 분해설비 및 하위공정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5월에는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와 각각 3400억원을 투자해 중국 충칭에 연산 20만톤 규모의 부탄디올 생산공장을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SK하이닉스 사상 최대 실적 기록
SK건설 해외 대형사업 연속 수주

SK그룹은 2014년 경영방침을 '위기 속 안정과 성장 추진'으로 결정했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것. SK그룹은 계열사별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오너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에는 속도가 붙고 있다.

SK컴즈는 투자 대비 이익 창출이 적은 싸이월드와 싸이메라 분사를 검토 중이다. 미미한 점유율(1.4%)를 유지하던 검색 서비스도 전문검색 서비스 업체에 이관해 관리 비용을 줄인다. 12월2일부터 13일까지 2주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실본부장급 이상의 간부직원들은 일괄 사표를 결의한 상태다.

SK네트웍스는 '스피드메이트' 매각을 추진 중이다. 2009년 인수한 인도네시아 고무플랜테이션 사업 법인인 'PT인니조아'를 현지 자원개발 회사인 'PT존린'그룹에 매각하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중국 구리광산 지분매각도 검토 중이다.

SK E&S는 인천종합에너지 인수를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 SK텔레콤은 ADT캡스 인수를, SK이노베이션은 호주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 지분 인수를 검토 중이다.

최 회장의 재판으로 2011년부터 2년 연속 임원 인사를 제때 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는데 올해부터 정상화하겠다는 방침이다. SK그룹은 이달 중순 정기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대대적인 물갈이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올해 실적이 좋았다는 점에서 임원들의 승진 규모가 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다.

개편·인사
일사천리

이처럼 SK그룹은 최 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영어의 몸'인 최 회장은 그룹이 오너리스크를 겪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냥 웃을 수 있을까? 같은 처지에 있는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지난 1년 공백에 따른 리스크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이라크 재건' '태양광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들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 회장 구속 이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의 현 상황에 대해 "일부에서는 오너 부재라는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는 점에서 재계 모범사례로 봐야한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있다"면서도 "없을 때 더 잘하는 SK그룹에서 최 회장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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