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 플루)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감염 위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겼던 국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공포는 극에 달한 분위기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선 잇따라 휴교령을 내렸고 병원과 보건소 등에는 신종 플루를 의심하는 환자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미리 확보하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신종 플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필요 이상의 공포심이 조성되고 있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병에 대한 오해가 화를 키운다는 것. 신종 플루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추적했다.
신종 플루 사망자 발생하면서 공포심 극에 달해
감염 의심 환자들로 병원, 보건소 문턱 닳을 지경
신종 플루 환자가 3000명을 넘어서면서 감염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웃지 못 할 현상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별것 아닌 병이라 치부하다 느닷없이 사망자가 발생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먼저 신종 플루로 의심해 병원을 찾는 이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녹십자의료재단에 따르면 전국 병원에서 신종 플루 검사의뢰를 받는 건수가 사망자 발생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사망자 발생 전엔 2~3건에 불과했던 검사의뢰가 최근에는 하루 300여 건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병원과 보건소 등은 신종 플루 의심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혹시 나도 신종 플루?”
막연한 두려움 병 키워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물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위생에 도움이 되는 손세정제나 마스크 등의 판매량이 크게 늘어난 것. 롯데마트에 따르면 신종 플루 사망자가 발생한 후 열흘 동안 손 세정제류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18%나 늘었고 마스크 판매도 808% 증가했다. 휴교령을 내린 초·중·고등학교도 빠르게 증가했다.
2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 신종 플루 환자가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개학을 앞둔 일부 학교에서 등교를 금지시킨 것.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6일까지 신종 플루로 인해 휴교령을 내린 학교는 38개교에 이른다고 밝혔다. 휴교령을 내리지 않은 학교들은 예방 교육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일하게 알려진 예방법이 철저한 개인위생인 만큼 손 씻기 교육 등 위생교육을 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경기도에서 영양교사로 재직 중인 김모(29)씨는 개학을 하자마자 급식실 배치를 다시 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급식실 안에 설치되는 손 소독기와 손 씻는 공간을 늘이기 위해 동선을 모두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전에는 손 씻는 공간이 있어도 본체만체했던 학생들이 이제는 자진해서 손을 씻는 모습을 보면 신종 플루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위험군 속하지 않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막연한 두려움 떨쳐야
신종 플루와 관련된 잘못된 정보 그대로 믿어 건강 해칠 우려도
‘신종 꾀병’으로 수업을 빼먹으려는 학생들도 있다. 일선 교사들은 “신종 플루 증상을 호소하며 조퇴신청을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퇴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직장인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사무실에 외국여행을 다녀온 동료라도 있으면 그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그 동료가 기침이라도 하면 순식간에 사무실은 얼어붙기 마련.
휴가기간 동남아로 피서를 다녀온 직장인 이모(32)씨는 “왠지 동료들이 날 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 검사는 해봤어?”라며 농담 삼아 말을 건넬 때만 해도 웃어넘겼던 이씨. 그러나 얼마 전 가벼운 감기몸살을 앓았을 땐 노골적으로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씨는 “감기일 뿐이라는 진단서를 일일이 보여줄 수도 없고 동료들이 야속하기까지 하다”라고 토로했다.
신종 플루 공포증은 이처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종 플루 안전지대라 믿었던 국내에서 감염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생기는 해프닝이다. 일각에선 막연한 두려움이 병에 대한 공포심을 필요 이상으로 키우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신종 플루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소문과 오해들을 그대로 믿어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면 신종 플루와 관련된 대표적 오해들은 어떤 것들일까.
▲신종 플루는 치사율이 매우 높다?
국내에서도 신종 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생기면서 ‘신종 플루에 감염되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면 신종 플루의 치사율은 어느 정도일까.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신종 플루에 의한 사망률은 0.2%에서 0.6% 정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0.7%~1%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환자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망률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특히 사망률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남미지역은 1~1.5%로 높은 편이고 미국 등 다른 나라는 0.2% 이하로 낮다. 우리나라는 0.06%의 낮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겨울에 유행하는 독감이 0.2%의 치사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준.
신종 플루처럼 갑자기 등장한 다른 질병과 비교하면 치사율은 더욱 낮다. 사스(SARS)는 10%의 치사율을, 조류인플루엔자(AI)의 경우 60%의 치사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낮은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타미플루 먹어야 신종 플루 낫는다?
신종 플루가 확산되면서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타미플루란 항바이러스제다. 이 약이 신종 플루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로 알려지면서 타미플루를 확보하려는 병원과 개인들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 보유한 타미플루의 양이 충분하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 가운데에는 약을 사재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타미플루를 처방받을 수 있는 노하우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0대 이하의 젊은 층에서는 신종 플루에 걸려도 타미플루를 꼭 먹어야 낫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감염됐다고 하더라도 감기처럼 가볍게 앓다가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타미플루 등의 항바이러스제는 합병증 유발 가능성이 큰 고위험 집단에게만 투여하도록 방침이 정해져 있다. 59개월 이하 소아와 65세 이상 노인, 임산부, 에이즈 감염자 등이 고위험 집단에 속한다.
항바이러스제를 남용하면 신종 플루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약물을 남용했다간 내성이 생겨 변종 바이러스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타미플루를 맹신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국인들이 신종 플루에 더 잘 걸린다?
외국 여행을 다녀온 이들 가운데 신종 플루 감염자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외국인들은 한국인보다 신종 플루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오해가 퍼지고 있다. 한 주부는 “얼마 전 옆에 서 있던 외국인이 가래를 뱉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다음부터 신종 플루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며 “외국인을 보면 신종 플루에 걸린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이라고 해서 신종 플루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오해일 뿐이다. 신종 플루가 발생한 지역이 남미이고 외국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신종 플루에 감염된 이들이 많을 뿐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신종 플루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근거는 없다.
▲날씨가 더우면 사망률이 높다?
국내에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신종 플루 환자가 사망을 해 온도와 사망률에 관련성이 있을 거란 오해도 생겼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온도와 습도가 낮은 경우 생존율이 높다. 겨울에 공기 비말을 통해 사람 대 사람 감염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런데 신종 플루는 기온이 올라간 초여름부터 발생해 확산되는 경향을 보여 다른 바이러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시원스런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구촌의 일일생활권화, 대중교통 이용 등에 의한 불가피한 신체 접촉 등이 기후를 능가하는 확산 요인으로 보인다”라고 입을 모은다.
▲김치가 신종 플루 막는다?
처음 신종 플루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의 감염비율이 유독 낮은 것을 두고 김치가 면역력을 증가시킨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이 가설에는 김치가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한몫을 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
불안감만 가중시켜
이 같은 가설이 사실처럼 번지자 뜻밖의 호황을 누리는 것은 김치, 된장 등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발효식품 업체들. 이들 식품 업체는 신종 플루가 기승을 부릴수록 매출이 급신장하는 수혜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신종 플루와 김치의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면역력을 높이는 제품이 신종 플루 감염을 억제한다는 믿음으로 갑자기 관련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종 플루 의심될 땐 무조건 확진 검사 받아야 한다?
신종 플루의 증상이 기침, 발열, 코막힘 등 흔히 걸릴 수 있는 감기와 비슷하다 보니 감기에만 걸려도 신종 플루에 감염됐다는 의심을 하기 쉽다. 이 때문에 단순한 감기 증상에도 확진 검사를 받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의심되는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이 좋다. 신종 플루에 걸렸을 때는 검사를 받을 필요 없이 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즉 확진 검사는 신종 플루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필요가 없는 과정이라는 것. 섣불리 검사를 받았다가는 12만원가량의 검사 비용만 날리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