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해외도피’ 거물급 오너 총집합

2009.08.18 09:21:07 호수 0호

“도망간 회장님들, 안녕하십니까”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법망을 피해 해외로 달아난 거물급 기업인들의 행방이 묘연하다. 어디에 숨었는지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도피행각은 하나같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의 으름장도 소용없다. 전혀 무반응이다. 검찰은 추적한다고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해외도피자들이 얽힌 각종 대형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비리로 챙긴 돈을 갖고 홀연히 사라진 전직 오너들을 총망라해봤다.

법망 피해 출국 기업인들 ‘못 잡나, 안 잡나’
각종 대형비리로 챙긴 뭉칫돈 갖고 호의호식


국가 간 이동장벽이 낮아지면서 법망을 피해 해외로 달아나는 범죄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각종 비리를 저지른 재계 유력인사들의 해외도피는 ‘범죄 공식화’된 지 오래다. ‘일단 튀고 보자’는 식이다.
형 시효가 끝나 처벌이 불가능해질 때만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여권을 위·변조해 외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거나 아예 여러 국가를 돌며 불법 체류하면서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거물급 전직 오너의 경우 더욱 그렇다.

“돈을 갖고 튀었다”
여전히 ‘갑부 명찰’



법무부에 따르면 사기·횡령·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도피하는 경제사범이 해마다 늘고 있다. 외국으로 달아난 경제사범은 2003년 182명, 2004년 206명, 2005년 271명, 2006년 316명, 2007년 294명에서 지난해 300명이 넘었다. 해외도피 범죄인 청구 건수도 2004년 12명, 2005년 14명, 2006년 27명, 2007년 29명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범죄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기 혐의로 도피한 사범이 매년 40% 이상을 차지해 가장 많다. 이어 횡령, 배임,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의 순이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한 피해액만 4조원에 달한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귀국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기 때문에 해외도피가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며 “외국 수사기관과 공조, 범죄인 인도요청 등 해외도피 경제사범 검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강한 의지를 비웃는 듯 수년째 모습을 감춘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장기 해외도피자 중엔 대형 경제사건 및 게이트에 연루된 ‘거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최근 검찰에 구속된 박성배 전 해태유통 부회장도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는 지난 5일 해외도피 4년 만에 체포된 박 전 부회장을 사기 및 배임 혐의로 구속했다. 법원은 “4년간 도주해 앞으로도 도주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사유를 설명했다.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의 동생인 박 전 부회장은 1996∼1997년 해태유통 분식회계를 통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신용 대출과 회사채 지급보증 방식으로 수백억원을 부당하게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 1998년 자신이 실소유주였던 G사가 사실상 부도가 났는데도 물품구매대금 명목으로 해태유통 자금 수십억원을 선지급해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부회장이 편취 및 배임한 돈은 금융회사의 부실 채권으로 이어져 결국 정부 공적 자금으로 메워졌다”고 말했다.
2001년 12월∼2005년 12월 4년간 이어진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7개 기관이 참여한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부실기업주 등 290명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 박 전 부회장의 혐의를 찾아냈다.

당시 박씨는 출국금지됐지만 “사업상 급한 용무가 있다”며 보증인을 내세워 출금해제신청을 낸 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자 2005년 7월 출국,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해왔다.
박 전 부회장은 검찰의 수사를 피해 미국, 중국 등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자진 입국해 지난 4일 검찰에 체포된 그는 “도피할 의도 없이 사업차 출국했으나 국외로 나가고 보니 변호인 선임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귀국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2년3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올해 86세인 정 전 회장은 2003년 9월부터 2005년 4월까지 경매 중이던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자신의 며느리가 당시 이사장으로 있던 모 대학 학생 숙소로 임대하는 허위계약을 맺고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72억원을 받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정 전 회장이 결석한 상태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정 전 회장은 이번 판결까지 총 4번의 실형 확정 판결을 받아 3차례 구속을 당하고 형 집행정지와 2차례의 사면을 받은 기록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 앞서 1심 재판부는 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건강상 이유와 피해 금액을 갚으려고 시도하는 점 등을 감안해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그는 2007년 5월 항소 중 신병치료를 이유로 출국했다.
당시 일본으로 출국한 그는 카자흐스탄을 거쳐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월 카자흐스탄에 검찰이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자 이를 피해 지난해 3월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긴 것.

배짱 두둑한 초호화 ‘황제 도피’
미스터리 사건 열쇠 쥐고 잠적도


이후 종적을 감춰 27개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의 측근들도 “정 전 회장이 머무는 정확한 거주지를 알지 못한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다만 “이미 다른 사건으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정 전 회장이 또다시 실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입국하지 않고 있다”는 추측만 나돈다.
보다 못한 재판부는 2007년 7월 정 전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소용없었다. 검찰 역시 법무부와 함께 정 전 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해 국제 사법 공조까지 구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국세청도 수천억원이 넘는 체납액을 추징하기 위해 그의 행방을 좇았지만 실패로 끝났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유유자적한 초호화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며느리, 아들, 측근 등이 정 전 회장의 도피자금을 댄 정황 탓이다. 이들은 모두 모 대학 교비를 횡령해 정 전 회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불구속됐다.
정 전 회장의 재산 은닉 의혹도 제기된다. 정 전 회장은 증여세 등 6개 세목에 걸쳐 2127억원의 세금이 밀려 있지만 호화 주택에서 버젓이 생활하는가 하면 고급 외제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이 국내에서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한보일가가 해외로 은닉한 320억원대의 비자금을 찾아낸 바 있다.

공교롭게도 정 전 회장의 4남 한근씨도 검찰의 추적을 받고 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꼴이다. 한근씨는 1998년 한보철강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 수배 상태에서 11년째 도피중이다. 지난해 9월 공소시효 10년이 됐지만 검찰의 재기소로 공소시효가 다시 늘어났다.

유유자적 도피행각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또 동아시아가스 자금 323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흘러간 스위스 비밀계좌를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이 같은 혐의로 한근씨를 궐석 상태에서 불구속기소 처리했다. 앞으로 재판도 부친 정 전 회장과 같이 한근씨가 불출석한 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수 전 거성그룹 회장도 배짱 두둑한 ‘황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경영 부실로 회사를 부도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여전히 ‘갑부 명찰’을 달고 있는 것. 김 전 회장 역시 외면상으론 쫄딱 망했지만 숨겨둔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김 전 회장은 1980년대 후반 삼익가구, 동인보드, 거성종합건설, 거성광업, 새한전선, 남성콘크리트, 새서울공영 등 그룹 계열사를 늘리며 ‘재계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특히 삼익가구는 한때 전국의 대리점이 2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IMF 당시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어려움에 빠졌고 1992년 결국 계열사의 연속 부도로 그룹이 해체됐다.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해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갔다.

문제는 부채다. 1992년 기준 거성그룹의 자산총계는 약 1000억원. 반면 부채가 1150억원에 달했다. 150억원 차입금이 남은 셈이다. 이 돈은 고스란히 김 전 회장의 빚으로 남았지만 그는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서울보증보험에 부채를 떠넘겼다. 그리고 김 전 회장은 이내 미국으로 출국해 종적을 감췄다.
김 전 회장은 미국 최고의 부촌인 LA 베버리힐즈에 거주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빌라촌의 고급 주택들은 1채당 200∼300만 달러(19∼29억원)에 이른다. 그는 LA 현지에서 대형 나이트클럽과 룸살롱 등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들 재산은 모두 부인, 자녀 등 가족 명의로 돌려놨다. 서울보증보험 등 관련 부처가 ‘땡전 한 푼 없다’는 김 전 회장의 연막에 속수무책인 이유다. 한마디로 빚쟁이의 재산을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이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의 조카인 나선주 전 거평그룹 부회장도 사법처리를 피해 미국으로 떠났다. 소규모 주택 건설업체로 시작한 거평그룹은 1980∼1990년대 대동화학, 대한중석, 거평프레야, 라이프유통, 한국시그네틱스, 포스코켐, 새한종합금융, 태평양패션, 한남투자증권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해 재계 30위권 내 진입했다.

당시 나 전 부회장은 삼촌 나 회장의 부름을 받고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투입돼 그룹 M&A를 주도했다. 하지만 IMF 시절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1998년 그룹이 공중분해됐고 곧바로 이어진 공적자금비리 수사에서 나 전 부회장의 혐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1998년 3월 한남투신을 인수한 뒤 대한중석 등 계열사가 발행한 1000억원 상당의 기업어음(CP)과 채권을 한남투신으로부터 할인받아 계열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나 회장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나 회장은 “조카가 주도했다”며 화살을 나 전 부회장 쪽으로 돌렸다. 검찰은 형사처벌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나 전 부회장에게 소환장을 보냈지만 이미 그가 한국을 뜬 뒤였다.

나 전 부회장은 1998년 거평그룹 부도 직후 출장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한 뒤 지금까지 10년째 도피 중이다. 인터폴에 의해 적색수배가 내려진 나 전 부회장은 2006년 6월 모 TV 시사프로그램에 캘리포니아주 부촌 샌디에이고 커즈웍 델마에 있는 10억원대의 고급 주택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이주영 전 태창 사장은 행방이 묘연하다. 이 전 사장도 공적자금비리 수사과정에서 100억원이 넘는 공적자금과 회삿돈을 불법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자 잠수를 탔다.

그의 거처는 알려진 바 없다. 검찰은 2004년 이 전 사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검거에 나섰지만 그는 이를 피해 외국 어디론가 사라졌다. ‘빅맨’ 속옷브랜드로 유명했던 태창은 1973년 설립된 뒤 의류대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다 1998년 부도로 화의에 들어갔다.
검찰의 허술한 감시를 틈타 도주한 기업인도 있다. 정상교 전 레이디가구 사장이다. 정 전 사장은 DJ정부 시절 권력형 비리 사건인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 회삿돈을 빼돌리고 주가조작을 벌인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건강 이상으로 2004년 6월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 도중 달아났다.

그는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검거 불능 상태다. 정 전 사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기업의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가 추가돼 2006년 2월 결석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구지역 ‘4조 다단계사기’혐의를 받고 있는 조희팔 전 리브 회장은 수사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몰래 튀었다. 조 전 회장은 2004년부터 다단계 방식의 의료기구 임대사업을 해오면서 고수익을 미끼로 전국 각지에서 5만여 명의 투자자를 모아 4조원대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여 경찰의 수배를 받다 지난해 12월 안면도에서 어선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해경은 조 전 회장이 밀항하기 한 달 전 제보를 받고도 검거에 실패해 멍든 피해자들의 가슴을 한 번 더 후벼 팠다. 경찰은 인터폴, 중국 현지 주재관 등과 공조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관계를 뒤흔들 만한 메가톤급 ‘폭풍’을 머금고 있는 대형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잠적한 재계 인사들도 수두룩하다. 한상률, 김영완, 최성규, 허문석 등이 대표적이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고가의 그림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 1월 청장 자리에서 물러나 3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사실상 도피성 외유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한 전 청장은 ‘박연차 게이트’의 축인 태광실업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혐의도 받고 있어 도피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사건 관련자들이 한 전 청장의 피신을 종용했다는 ‘기획출국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수사는 한 전 청장의 부재로 올스톱된 상황이다.

김영완씨는 수많은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규명하지 못한 ‘현대 비자금’ 사건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핵심 인물이다. 나아가 김씨는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사망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도 꼽힌다. 
 
허술한 감시 틈타
잡혔다 다시 도주

무기거래상인 김씨는 2003년 3월 대북송금 특검 당시 150억원의 뭉칫돈을 세탁한 혐의를 받다 미국으로 출국한 뒤 지금까지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검찰은 “김씨의 입이 열리면 모든 의혹이 규명될 것”이라며 김씨의 소재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으나 무위로 끝났다. 지난 대선정국 때 김씨의 ‘비밀 입국설’이 나돌아 정치권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이었던 최성규 전 총경은 DJ 정부 말기인 2002년 4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다 갑자기 미국으로 도주했다. 최 전 총경의 출국을 두고 권력 실세들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많았다. 그는 ‘최규선 게이트’뿐만 아니라 재직 시절 권력 실세들과 친인척 비리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던 인물로 평가된다.

철도공사 유전 의혹인 ‘오일게이트’사건 땐 핵심 열쇠를 쥐고 있던 허문석 코리아크루드오일(KCO) 사장이 해외로 도피했다. 2005년 4월 철도공사가 러시아 사할린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350만 달러(당시 약 35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불거진 ‘오일게이트’는 권력형 비리로 확대 조짐을 보이다 핵심 연루자인 허 사장이 인도네시아로 출국하는 바람에 ‘용두사미’격으로 수사가 흐지부지 종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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