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진훈

2013.10.29 09:47:39 호수 0호

"그림은 하나의 언어입니다"

[일요시사=사회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 "사람이 몸짓을 취하는 게 아니라 몸짓이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달리는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순간'의 몸짓들. 그러나 누군가에겐 순간으로 보이고 또 누군가에겐 영원으로 보이는 무한의 캔버스 안에서 진훈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진훈 작가의 그림은 미술이론가 이영훈씨의 말처럼 끊임없는 해석과 탐색을 필요로 한다. 그림이 온갖 메타포로 둘러싸여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때론 푸르스름하고 때론 불그스름한 캔버스 안에서 진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감성을 표현

"관심 있는 소재가 매번 조금씩 바뀌는 편이에요. 최근 2∼3년은 도시의 이미지를 주로 그렸었죠. 하지만 한쪽에선 틈틈이 다른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전시. 달리는 아이를 소재로 한 전시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진 작가는 소년의 달리는 뒷모습에서 중의적인 형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년은 어디로 '부터', 어디로 '향해' 뛰고 있었다. 즉 소년의 달리기는 어떤 의미에선 경주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선 도피일 수 있다는 것.

"소재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느낌이나 감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지난 전시 제목은 '수동적 시선'이었어요. 얼핏 듣기에 수동적이란 어감은 좋지 않죠. 하지만 저마다 확성기를 대고 메시지를 주입하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저항적인 행위가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동적(Passive)이란 단어와 열정(Passion)이란 단어의 어원은 같다. 진 작가는 "'열정의 이면에는 수동적으로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어 어원이 같은 것은 아닐까'란 구절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존재하는 것들의 이면. 진 작가의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이미지가 전혀 다른 정서로 환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컨대 사진 미학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인 푼크툼(Punctum)이 그것이다.


'달리는 아이'소재로 중의적 표현
수동적 시선 통해 다양한 해석 가능

"제가 하는 작업은 기호적인 이미지로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느낌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어 저건 달리는 아이네' 이렇게 보기보단 관객이 달리는 아이의 형상에서 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걸 발견했으면 하죠. 그렇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저는 시각적 어법이라고 말하는데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언어로 받아들여질까'란 부분에선 불만족스러운 지점이 있죠."


진 작가는 "그림도 하나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말이 먼저 해석을 하고, 말에 따라 감상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진 작가는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그림이고, 작가가 페인팅을 한다면 아무래도 청각(말)보단 시각(그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원래 시각이라는 건 수동적일 수 없어요. 사람은 눈을 이용해서 보고 싶은 걸 보잖아요. 다분히 자의적이고 선택적이죠. 그래서 제가 말하는 수동적 시선은 문맥적인 의미에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놔두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대한 흐름에서 빠져나와 독자적인 시선을 갖고 싶은 의지라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됐을 때 화가인 저는 관객에게 일상을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진짜'에 가까운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면을 보다

진 작가는 대학원 졸업 후 잠시 영상미술로 눈을 돌린 적이 있다. 하지만 영상매체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회화만이 가진 강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실 전 회화가 언젠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감각의 문제거든요. 회화는 언어잖아요.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말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고요. 그런데 희망을 갖게 된 건 그림은 본능의 영역이란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앞에서 긍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그림을 계속 그리다보면 수정도 하고 예쁘게 칠하고 싶고 그래요(웃음). 제 손이 그렇게 움직여요. 어떤 철학자는 현대미술을 '거짓'이라고 규정했지만 전 '거짓'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뭘까. 계속 궁금해 하면서 작업을 할 겁니다. 마치 수학자가 풀리지 않는 공식을 죽는 순간까지 푸는 것 처럼요."

진 작가는 지난 17일부터 대학로 갤러리192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진 작가의 전시는 이번 달 30일까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진훈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 전공
▲1998년 1회 개인전(인데코 갤러리)
▲2011년 6회 개인전(사이아트갤러리)
▲2012년 시선의 경계展(보라갤러리) 외 그룹전 다수
▲2013년 8회 개인전 갤러리192 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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