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허연정

2013.10.22 09:44:30 호수 0호

"현실에 없는 이상향을 그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서양화가 허연정 작가의 작법은 이성적 그리기가 아닌 자신의 감성에 솔직한 표현주의 화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드로잉으로부터 출현된 에너지는 겹겹이 쌓여 낯선 세계의 문을 연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모든 것들. 만약 '운명의 실'이 있다면 이 세계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것들은 실타래처럼 얽혀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우리 주변을 연결하고 있는 이 실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실을 따라 걸어간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혹은 디스토피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허연정 작가는 'Another World(또 다른 세계)'라고 표현했다. 허 작가가 그린 '또 다른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또 다른 세계 표현

"제 그림의 콘셉트는 현실에 없는 이상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과는 빨간색이지만 이상 세계에선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어쩌면 다른 색의 사과가 이미 현실에 있지만 우리가 그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거구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이미지를 구현하다 보니 원색보단 중성적인 색상을 선호하게 된 점이 있죠. 또 강렬한 채색과 거친 느낌의 붓선 역시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제 나름의 의도가 담겨 있고요."

언뜻 보기에 이질적이며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오컬트적인 요소가 스며있는 허 작가의 그림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둡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쉽다. 하지만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일종의 '패러독스'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허 작가 고유의 균형감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선 펭귄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대개의 경우 작품 안의 펭귄은 이상세계로 향하는 주인공이죠. 또 펭귄은 제 자신이 투영된 매개로 볼 수 있어요. 작품 주제가 다소 무겁다보니 보이는 이미지가 재밌고 밝은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른 게 펭귄이고, 개인적으로는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펭귄'을 좋아해요. 남들은 악당으로 부르지만 사실 ‘펭귄’은 우리 사회의 희생양이잖아요."

허 작가의 그림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구성력. 그러나 허 작가는 작품 안의 모든 요소가 짜인 틀 안에서 그려진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강렬한 채색과 거친 붓선…표현주의 화법 구사
어두운 주제·밝은 이미지…탄탄한 구성력 강점

"제가 그린 그림 안의 모든 것이 처음부터 특정 의도를 갖고 그려진 건 아니에요. 다른 작가 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주제에 따라 구도나 색상, 터치 등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제 그림 중에는 장례식으로 불리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사실 그 그림은 장례식이 아닌 부활의식을 그린 겁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장례식으로 본다고 해서 틀린 거냐. 그건 아니거든요. 작가 본연의 의도가 있다고 해서 토씨 하나까지 세세한 분석에 매달릴 필요는 없겠죠. 어디까지나 그림은 심상을 표현한 거니까요.”

허 작가는 "영화나 음악을 선택할 때도 다수가 좋아하는 유형이 아닌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걸 찾아서 보는 걸 즐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 작가는 "'마이너 정서'를 의도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전 장난감을 모으는 취미가 있습니다. 이건 제 나이 또래에선 일반적인 취미가 아니죠. 하지만 장난감을 사는 행위 자체를 하위문화로 치부할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리히텐슈타인도 그래요. 그 당시엔 동료들도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부러워하는 후배가 더 많아졌죠. 세상엔 여러 취향이 존재하는 거고, 여러 작품이 존재하는 겁니다. 제 자아가 강한 탓도 있겠지만 맹목적으로 무엇인가에 강요받고 싶지 않아요."

허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화가였다. 전문 작가가 되기 전까진 고흐처럼 되길 바랐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개성과 그림을 향한 쉼 없는 열정이 허 작가가 고흐를 좋아한 이유였다.

"요즘 들어 '난 고흐가 아니구나'란 생각이 서서히 들어요. 테크닉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현실적인 문제로도 고민이 많죠. 하지만 늘 그림을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전시에 쓸 아이디어 구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영감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서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앞으로도 여행은 많이 할 생각이에요. 사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지루한 이론 강의보단 제 경험담을 녹여서 얘기하는 게 좋은 것 같고요."

때론 코믹하게

허 작가는 이상향을 그린 'NEVER-NEVER LAND' 시리즈에 이어 '환생 전의 세계'를 주제로 다음 전시를 기획 중이다. 어쩌면 무거움이 진동했던 최근작보다 더 황량해질 수 있다는 것이 허 작가의 설명.


"무거운 주제죠.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회화적인 느낌을 유지한 채로 약간 위트 있게 때론 코믹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대중에게 좀 더 와 닿을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의 취향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제 작품을 좋아해달란 얘긴 아니고요(웃음). 너무 유행만 쫓지 마시고 (제 작품 외에) 다양한 작품을 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허연정 작가는?]

▲동덕여대 회화과 졸업
▲10년 Another World 개인전 (미술공간現, 서울)
▲10년 NICAF 남부국제현대미술 아트페어(텐진, 중국)
▲세경대 미술치료학과 외래교수 역임
▲현 인덕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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