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인턴’의 함정

2009.08.11 10:27:51 호수 0호

인턴은 싼 맛에 쓰는 영업사원?

최근 국내 시중은행들은 정부의 일자리나누기 정책에 발맞춰 청년 인턴제도를 확대 실시하고 있다. 사회의 어려움을 분담하는 동시에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미리 업무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일부 은행의 인턴제도가 무리한 영업실적 요구와 낮은 기본급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SC제일은행 ‘세일즈인턴’ 제도의 실태를 파헤쳐 봤다.

SC제일은행은 지난 5월 실제 현장에서 금융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세일즈인턴’ 선발계획을 밝혔다. 근무기간은 총 1년이며 우수 활동자에게는 정규직 채용 시 가점이 부여된다고 덧붙였다. 최종 선발된 인턴 70여 명은 지난 7월1일부터 2주간 은행 업무 지식에 대한 연수원 교육을 받고 이후 2주간 영업점에 배치돼 현장연수를 거쳤다.

그러나 인턴들의 각 영업점 현장연수가 시작되자마자 곳곳에서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세일즈인턴’ 명목 아래 ‘지인영업’ 내몰려
87만원 기본급에 인센티브는 ‘쥐꼬리’만큼


그중 가장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SC제일은행이 인턴들에게 무리한 영업 실적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 한 언론은 은행이 인턴들에게 현장연수 기간인 2주 동안 신용대출 2건, 입출금예금 3건, 신용카드 신규 3건, 인터넷 뱅킹 신규 신청서 4건, 텔레뱅킹 신규 신청서 2건 등을 달성하라고 강요했다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했다.

허울만 좋은 인턴제도(?)



SC제일은행은 “인턴들에게 영업량을 할당한 적은 없다”며 반박했다. 은행 한 관계자는 “각 지점별로 영업에 대한 목표량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인턴들에게 강요하진 않는다”며 “다만 ‘세일즈인턴’이라는 특성상 계약 건당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 측이 밝히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조건조차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조사됐다. 계약 한 건당 부여되는 인센티브는 1000원에서 최대 5000원 수준. 이마저도 예치금액, 예치기간 등 상품별로 다양한 기준을 충족해야 수령이 가능하다.

업계에 따르면 인턴이 500만원의 거치식 예금을 유치하더라도 1년 이상 예치라는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2000원의 인센티브를 겨우 받을 수 있는 정도다.
일부에선 현 인턴들의 기본급이 낮게 책정되어 있어 기본적인 생활이 안 되는 수준의 급여를 지급받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에 따르면 이들의 월 기본급은 87만5000원. 여타 시중은행의 인턴들이 90만원에서 12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것에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은행 한 관계자는 “‘세일즈인턴’이라는 특성상 별도의 인센티브가 주어지므로 타 시중은행과 절대적인 평가를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일즈인턴’들의 영업방식이 또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현재 SC제일은행은 주로 아웃바운드 형태의 영업을 인턴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아웃바운드 영업이란 은행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예금, 보험, 대출 등의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인턴들에게 아웃바운드 영업을 지시하는 건 결국 ‘지인영업’을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 외부 영업을 지시할 경우 주변 친·익척이나 지인들에게 상품 계약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SC제일은행 한 관계자는 “인턴들의 영업형태는 각 영업점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가 병행되고 있다”며 “아웃바운드 영업일 경우에도 각 영업점 인근 상가나 고객들을 위주로 상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은행업무의 상당 부분이 영업으로 이뤄지는 만큼 인근 상가나 아파트를 상대로 한 영업은 각 지점장마저 솔선수범하고 있는 부분”으로 “인턴들에게만 외부영업을 강요한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답변했다. 

금융실명제에 따른 고객들의 개인정보 관리도 화두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본인 확인 시 공개되는 개인정보는 영업점 직원만이 확인이 가능하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개인에 관한 정보는 시중은행 본사 직원들도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인 것.
이런 상황에 정규직 채용이 결정되지 않은 단기 인턴들에게 영업을 통해 개인정보를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이에 대해 “인턴이긴 하지만 근로계약상 직원으로 대우되기 때문에 제도적 문제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을 거쳤으며 이후에도 관리에 철저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SC제일은행의 이 같은 반박에도 업계의 반응은 사뭇 냉담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턴을 지원하는 청년들 모두가 금융권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라며 “그들에겐 조직문화 체험이 바탕이 되어야 함에도 영업 전선에 앞세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개인정보는 각자 관리?

그는 또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건 단순히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기업의 브랜드와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인데 이를 갓 입문한 인턴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의식이 부족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SC제일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C제일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인턴제도는 정부의 일자리나누기에 동참하고자 올 초 신입행원을 뽑았음에도 추가적으로 실시한 제도로 특히 ‘세일즈인턴’은 청년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현장 경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며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인턴제도가 우려의 시선으로만 해석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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