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검찰총장과 공정거래위원장 인사를 단행했다.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의 중도 낙마로 공석이 길어진 검찰 수장에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이 내정됐다. 김 전 고검장이 천 전 지검장의 검찰총장 발탁 후 스스로 검찰을 떠난 지 한 달여 만이다. 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용호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후임에는 정호열 성균관대 법대 교수가 올랐다. 청와대는 도덕성과 전문성, 지역색을 고려했다며 자신했다. 그러나 야권은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검찰내 ‘국제통’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 검찰 새 수장 발탁
재산 법무부·검찰 간부 중 6위…재산 형성과정 도마 위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학자 출신에 현장 경험 갖춰
현 정부와는 생면부지, 친재벌 성향이 인사청문회 메인 이슈
정부의 인선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있다. 도덕성과 전문성, 그리고 지역 안배다. 검찰 수장 후보에 올랐던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의 낙마는 ‘도덕성’이 좌우했다. 거액을 빌려준 사업가와의 여행에 대해 부인하면서 국회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
MB식 검증 코드
전문성에 도덕성 추가
또한 ‘코드 인사’도 주목된다. 현 정권과 같이 일을 할 사람인 만큼 추구하는 바가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SKY’ ‘고소영’이라 불리는 소망교회·고려대·영남 라인이나 이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 대선 후보 시절 캠프에 속해 있던 이들에게만 인사가 편중되는 데 대해서는 비판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인선과 관련해 청와대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특정 지역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나 현 정권 인사들과 인연이 별로 없거나 정권에 대한 기여도가 없는 이를 인선한 것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검찰총장 인선에서는 특히 ‘지역’이 강조됐다. ‘비영남 비호남’이 인사 기준으로 정해진 것.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는 서울 출신이다. 경기고, 서울법대를 졸업했으며 사법시험(21회)에 합격한 뒤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법무부 법무실장, 대전지검장, 부산고검장, 대전고감장 등을 거쳤다.
사시 1년 후배인 천 전 지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되자 대전고검장직을 퇴임했으며, 현재 국제검사협회(IAP)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는 김 내정자에 대해 “대통령은 능력에 방점을 두고 검찰조직을 선진화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것”이라며 “김 내정자는 검찰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선진적 법치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검찰 내 수사관련 요직을 두루 거치지는 못했지만 검찰 내 대표적인 ‘국제통’으로 ‘검찰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김 내정자는 “검찰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많은 어려운 시기이고, 검찰이 상처를 많이 받은 상황이다. 이러한 때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받아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검찰은 검찰답게, 검사는 검사답게 일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공정거래위원장 인선에서는 ‘전문성’이 강조됐다. 지역 안배 등 다른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고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대로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는 경북 출신으로 경복고, 서울법대, 동 대학원 법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주대 법대 교수, 미국 워싱턴대 풀브라이트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비교사법학회 부회장, 경쟁법학회장, 공정거래위원회 자문위원장, 한국법학교수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정 내정자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으며 공정경쟁과 상사분쟁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정부의 각종 위원회 활동을 통해 현장감은 물론 실무에도 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지난 2003년 공정위 정책평가위원으로 공정위와 인연을 맺은 후 현재 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공정위 현안에 정통하다는 평가다. 또한 홍조근정 훈장을 받을 정도로 공정거래법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정 내정자는 말 그대로 ‘깜짝 인사’다. 그동안 공정위원장 하마평에도 오르내리지 않았고 대선 당시 MB캠프나 인수위에서 활동한 경력도 없다. 정당이나 시민단체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이 대통령과는 안면도 없는 사이다.
그는 청와대 인사라인에서 발굴한 인물로 이 대통령이 인사파일을 살피고 전격적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MB와 생면부지
정호열 ‘깜짝 인사’
그러나 현 정부의 ‘비지니스 프렌들리’ 노선과는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는 평이다. 정 내정자는 친시장주의 경쟁법학자로 언론 등에 기고한 칼럼 등에서 “공정거래법은 재벌규제법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법” “기업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효율성을 지향하는 영리 집단일 따름”이라고 말해 친기업적 색채를 강하게 풍겼다.
그는 공정위원장 내정 후 “공정위는 한국 시장경제를 총괄하는 파수꾼이라고 생각한다”며 “시장경제 파수꾼 역할을 맡게 된 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위는 그동안 시장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노력을 해왔다”며 “앞으로도 친시장 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인사청문회를 자신하고 있다. ‘천성관 사태’ 후 민심이반 현상을 겪으면서 인사검증에 온 힘을 다했기 때문이다. 검찰 간부는 법무부에 검증을 맡기던 관행을 깨고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을 비롯해 법무부, 국가정보원, 경찰 등 관련 기관이 총동원된 고강도 인사검증을 펼쳤다.
청와대 ‘무사통과’ 자신
‘철저 검증’ 벼르는 야권
김 내정자는 “나름대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왔다. 이번에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다 보니 음해하는 말이 많아서 억울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조그만 흠은 몰라도 큰 흠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인사청문회에 대해 “당당히 하겠다. 깨끗하기에 숨길게 하나도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공격자’로 나설 야권의 말은 다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벌써부터 김 내정자의 재산 형성 과정과 정 내정자의 친재벌 성향을 지적하고 있다.
야권이 꼬집은 김 내정자의 재산은 지난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기준으로 23억3043만원에 달한다. 본인 명의의 서울 용산구 아파트(12억3200만원)와 경기 평택시에 있는 밭(1600만원), 부인 명의의 서울 종로구 상가(2억2400만원)가 있다. 예금은 본인은 2억6900여 만원, 부인은 5억7900여 만원이다. 사단법인 서울클럽 회원권(7500만원)을 가지고 있고 승용차는 2005년식 그랜저(1480여만원)다. 채무는 8200만원이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김 내정자에 대해서 청와대가 ‘검증할 수 있는 부분들은 전방위로 검증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국민들이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못 미더워하는 것은 당연한 업보”라고 꼬집었다.
이어 23억3043만원에 달하는 김 내정자의 재산에 대해 “검찰과 법무부 간부를 통틀어 6위에 랭크된 자산가”라며 “검사 월급으로는 평생 모아도 모으지 못한다. 재산형성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정 내정자에 대해서는 “2002년에 삼성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 2006년에는 생명보험회사 상장과 관련해 내부 유보를 계약자에게 배분하는 것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논쟁이 벌어졌을 때, 정 내정자는 보험회사 편을 들었다. 당시 상장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생명이었는데 결국 정 내정자는 이른바 ‘법의 논리’를 내세워 보험 계약자 편이 아니라 삼성생명 편을 든 것”이라며 친재벌 성향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이러한 편중인사인 정 내정자야말로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공정거래위원장’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야권의 주장처럼 인사청문회에서는 김 내정자의 재산과 정 내정자의 ‘친재벌 성향’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에 대해 “재산도 많고 소문도 많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종교계 관계자가 김 내정자를 추천했다는 말부터 형제들과 공동소유하고 있는 밭, 요트 승마 등 고급 스포츠를 즐긴다는 것까지 속속들이 파헤친다는 각오다.
청와대는 김 내정자의 재산에 대해 막판까지 고심하다 상속재산으로 확인되자 문제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도 “아파트는 10년 전 구입한 뒤 가격이 오른 것이고 나머지 재산 역시 상속 재산 등이어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 측은 요트 승마가 문제가 되자 “요트는 지난해 부산고검장 시절 아시아 태평양지역 고위급 검사회의를 열면서 요트협회의 지원을 받아 참석자들을 요트 관광시켜 줬던 걸 계기로 5주간 세일링요트를 배워 본 것이 전부”라고 일축했다.
승마와 관련해서도 “올해 대전고검장을 하면서 대전시장의 권유로 시가 운영하는 승마장에서 1만2000원권 티켓 20장을 끊어 승마를 배웠다”면서 “술과 골프를 하지 않는 대신 스포츠를 즐기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배운 것”이라고 해명했다. 골프를 치기는 하지만 8년 전 다리를 다친 이후로 골프장 출입을 끊었다는 것.
청와대 검증 과정에서 돌았던 ‘미스코리아 출신과 어울린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대전지검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지난 5월 ‘2009 미스코리아 대전충남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경기 평택시에 형제들과 공동소유하고 있는 땅 주변에 넓은 땅을 숨겨놓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평택은 선산이 있는 연고지로 근처에 차명으로 땅을 가지고 있다는 음해가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천성관 사태’를 겪은 후 청와대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면서도 “김 내정자의 재산 형성 과정은 물론, 그가 검찰 개혁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철저히 따질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내정자 소문 ‘솔솔’
국회 검증 통할까
또한 정 내정자에 대해서도 “공정위는 ‘재계의 검찰’인데 정 내정자는 친재벌성향이 두드러진다”면서 “재벌을 옹호하는 이가 ‘시장 경제의 파수꾼’이 될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검찰은 ‘매머드급’ 청문회 준비단을 꾸리는 것으로 인사청문회 준비에 나섰다. 민주당도 인사청문회만큼은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각오를 보이면서 정치권과 서초동의 시선은 이달 내 있을 인사청문회로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