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김기태

2013.09.24 14:11:01 호수 0호

"반짝 사라지는 영감을 붓끝에 담죠"

[일요시사=사회팀] 김기태 작가의 작업실에는 미학 관련 서적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김 작가는 순간의 재능보다는 영원한 노력을 선택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작품에 정직한 그는 타고난 예술가였다.






화가로서 너무 이른 나이의 성공이었다. 김기태 작가는 지난 1999년 <MBC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같은 해 <서울현대미술제>에서 최우상을 <미술세계대상전>에서 특선을 거머쥐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타고난 예술가

당시 그가 내놓은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꾸준히 거래됐다. 당대의 거장들만큼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김 작가의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한꺼번에 받은 탓인지 김 작가도 성공이란 수렁에 빠져드는 듯 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여느 조로한 동기들과는 달랐다. 지금에 안주하기보단 더 나은 내일을 선택했던 것. 서울 영등포에 있는 한 작업실에서 만난 김 작가는 자신을 '노력파'라고 소개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조금은 우쭐한 면도 있었어요. 큰 상도 받고, 작품도 제법 팔렸으니까요. 하지만 스트레스도 심했죠.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가 정체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전 제 작품이 걸린 전시회에 가서 벽에 걸린 작품을 일일이 소개해야 하는 게 싫었어요. 전 그냥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인데 미술품 딜러처럼 수완을 부리지 못했으니까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만 해도 뉴욕은 전 세계 미술 흐름을 주도했다. 당시 뉴욕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미술 시장이 존재했다. 그만큼 작품도 다양하고 수요도 많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미국에서 현대 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접한 김 작가는 "솔직히 한국보다 미국 생활이 더 맞는 것 같다"며 뼈있는 농담을 이었다.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한국 사회에서 강요하는 미풍양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한국은 역사가 길어서 그런지 관습처럼 굳어진 부분이 많죠. 그에 반해 미국은 한국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어요.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그때 당시 어울렸던 친구 중에는 50대도 있고, 20대도 있었어요. 경직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활발한 소통이 어떤 예술적 영감으로 이어지지 않나. 전 그렇게 생각해요."

김 작가는 "화가라면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에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보통의 화가에게는 사회적·경제적 보상체계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만족할 수 없다면 이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면 붓을 놓는 게 맞습니다. 이건 작가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아무리 옆에서 칭찬해주고, 컬렉터가 그림을 사줘도 내가 만족 못하면 이 일은 절대 못합니다. 일단 고통스러워요. 돈도 못 벌고 인정도 못 받고. 그렇게 재능 넘치는 많은 작가가 지금도 이 길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림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탓해야죠."

뉴욕 유학파 출신 중견화가 "화가라면 그림에 정직해야"
낡은 흑백사진서 영감, 유채·아크릴로 마무리

김 작가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저 그런 화가였습니다. 지금이라고 대단한 건 아니지만 주위를 보면 이 직업을 계속 갖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난 실력이 없는 걸 알았기에 노력했고,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어요. 모차르트의 라이벌 살리에리처럼 난 노력하는 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보면 언젠가 누군가 알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1997년 여름, 김 작가는 우연히 들렀던 '골동품 가게'에서 주운 흑백사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작자는 미상. 그러나 익명의 작가가 찍은 사진은 김 작가에게 발견됐고, 김 작가가 집어든 사진 속 인물들은 말없이 김 작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김 작가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캔버스에 담기 시작했다. 앞서 김충환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을 "빛이 그린 그림, 시간이 만든 환영"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진과 회화의 중간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먼저 사진을 찍어 현상한 뒤 그 위에 아크릴과 유채로 그림을 덧씌운 작품들입니다. 보통 한 작품에 2∼3달 정도 걸려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죠. 하지만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작품 안의 공기를 함께 호흡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두고 관조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만든 환영"


김 작가는 오는 10일부터 구하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말한 '저자의 죽음'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김 작가가 만들어 낸 놀라운 풍경들은 그가 처음 흑백사진을 마주했을 때처럼 새로운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김기태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97)
▲홍익대 회화전공(00)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대학 회화전공(06)
▲MBC미술대전(99) 대상 외 수상경력 다수
▲개인전 Ommi갤러리 뉴욕(06) 및 김영섭사진화랑 서울(09) 등 14회
▲국내외 단체전 60여회
▲홍익대 등 대학·예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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