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야인 조일환 타계

2009.07.21 10:18:12 호수 0호

“다시 태어나도 협객의 길 걷겠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후계자로 알려진 조일환씨가 간암으로 타계했다. 이른바 ‘낭만파 주먹시대’의 대표인물로 꼽혔던 조씨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마지막 남은 인사였기에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17세 때 주먹세계에 들어와 김두한을 만나 후계자가 된 조씨는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당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선교활동으로 여생을 보내던 그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주먹계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씨의 일생을 돌아봤다.

‘천안곰’ 조일환씨가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00kg의 거구로 주먹세계를 이끌었던 조씨의 죽음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굵직한 사건마다 등장



1938년 충남에서 출생한 조씨는 6살에 시골장터에 버려진 뒤 거렁뱅이 생활을 하게 된다. 그후 우연찮게 주먹세계에 뛰어든 조씨는 17세 때 천안 주먹패 대장을 꺾고 충남 주먹계를 평정했다. 10명과 함께 싸워도 이길 만큼 힘이 좋았던 조씨는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스물네 살 되던 해 협객 김두한의 수하로 들어가 후계자 수업을 받은 뒤 공식 후계자로 지명받게 된다.

그러면서 주먹으로서 그의 인생도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사건엔 언제나 그가 있었고 한국 주먹사에서 그의 이름은 빼놓을 수 없게 될 만큼 성장했다.  1970년에는 ‘워커힐 카지노 습격사건’에 가담해 전국적인 거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동원된 주먹 수만 1000여 명이었을 만큼 컸던 이 사건에서 조씨는 두드러진 활약상을 펼쳤다. 또 ‘속리산 카지노 사건’ 등에도 참가해 한국 주먹계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았다.

‘김두한’ 후계자로 알려진 조일환씨 간암으로 타계
마지막 남은 ‘낭만파 주먹’으로 주먹계 정신적 지주


1974년에는 유명한 ‘단지사건’을 일으켜 유명세를 떨쳤다. 그해 8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당시 조씨는 100명의 구국결사대를 조직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했다. ‘단지시위’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그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우국지사’란 칭호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에는 아내 박경자씨와 아들 조승규씨도 일본의 역사왜곡과 ‘다케시마의 날 제정’ 등에 항의하는 뜻으로 새끼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했다. 당시 부인 박씨는 “일본이 억지 주장으로 독도를 유린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들과 함께 손가락을 자르기로 결심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단지사건 이후 조씨는 공익활동에 주력했다. 1975년에는 ‘범죄자 집단 자수식’이란 행사를 열어 천안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우범자들을 집단 자수시켰다. 또 버들회 회원들과 함께 ‘무궁화 마을’을 건립해 집 없는 사람들에게 무상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후 정치에 입문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조씨는 1978년 천안시 아산군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위기는 1980년에도 찾아온다. 당시 그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48일간 각종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구속당하게 된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었던  조씨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후계자로 그려지면서부터였다. 당시 조씨는 <야인시대> 최종회에 출연하기도 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주먹세계를 떠난 이후에도 조씨는 국내 폭력조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1995년에는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의 옥중결혼을 주선했고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이 “일환 형님의 뜻을 받들어 후계자 대열에서 경쟁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해 주먹계에서 그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해 줬다.
말년에는 기독교에 귀의해 전도사로써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2007년 천안성결교회 집사로 전도활동을 하던 조씨는 한 간증집회에 참석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계기를 고백했다.

기독교 귀의해 선교활동

그는 “구치소에서 각종 질병과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면서 “천국 가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양로원, 고아원, 소년원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난날을 반성하기도 했던 조씨는 특히 폭력조직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을 교화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주먹세계가 화려해 보이지만 상처투성이다. 주먹 몇 번 쓰고 수십년간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라는 말로 주먹세계에 들어서길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바꿔놓으려 애썼다. 생전에 “난 결코 한 점 부끄럼 없는 협객의 길을 걸어왔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다”고 말했던 조씨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향력은 장례식장에서도 드러났다. 100여 명이 넘는 주먹들이 장례식장을 지키며 일을 돌봤고 전국의 우두머리들도 앞 다퉈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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