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거물급 ‘무기 로비스트’ L회장 실체&의혹 추적

2009.07.14 09:31:07 호수 0호

‘검은 리베이트’물린 DJ정권 실세들 초비상

‘무기 로비스트’ L회장이 코너에 몰렸다. L회장을 포위한 사정기관의 전방위 압박이 심상찮다. ‘썩은 돈’ 악취가 진동하는 이 수사는 자칫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이미 사전 조사를 끝낸 국세청이 검찰과 ‘대협공’을 펼칠 태세다.

여기에 경찰과 국방부 등 지원군까지 가세할 형국이다. L회장으로선 그야말로 ‘독안의 쥐’ 신세가 된 꼴이다. 지난달 이런 정보를 입수한 <일요시사>는 L회장의 구린내를 감지하고 밀착 취재해왔다. 국내 최고의 ‘무기 중개상’으로 불리는 L회장의 미스터리한 행적들을 추적해봤다.


검찰, I그룹 탈세·비자금 조성 등 전방위 수사 착수
정관계 로비 집중 조사… ‘권력형 게이트’비화 조짐


지난달 19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구 삼선동 B교회. 무기중개업체인 I사에 대해 국세청의 탈세 조사와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병행되고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찾아간 I사는 별도의 사옥 없이 B교회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I그룹 사옥 압수수색
검, 혐의점 확보한 듯



B교회 3층 한켠에 마련된 I사 사무실엔 간판조차 걸려있지 않다. 경비원들도 I사가 교회 건물에 입주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주차 관리원은 “교회 건물에 무슨 회사가 있겠냐”며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교회 관계자에게 물어 간신히 찾은 I사 사무실은 소예배당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회사’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그저 굳게 닫힌 철문 너머가 I사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 한 관리인은 “I사란 회사가 3층에 있긴 한데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그 회사 회장이 교회 장로로 사무실에서 회사일과 교회 일을 같이 본다”고 말했다. ‘무기거래 중개상’인 I사는 I그룹의 자회사이자 주력사다. I그룹은 이외에도 S유화, I하이테크, S사 등 계열사 4개와 사회복지법인 산하 복지시설 3곳, 학교법인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 형태를 띤 것은 2007년부터다. 당시 그럴싸한 홈페이지도 오픈했다.

그러나 심해잠수장비, 수송기 시뮬레이터, 야시경, 조기경보 통제시스템 등 일반적인 군수 물자에서 전투기, 헬리콥터, 잠수함 등 최첨단 방위장비에 이르기까지 군 장비를 수입하는 사업 특성상 I그룹의 경영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L회장이 경영하고 있다는 점만 확인된다. L회장은 I그룹 회장직과 재단·학원 이사장뿐만 아니라 1992년부터 B교회 장로도 맡고 있다.

2001년부터 연건평 3000평 규모로 이 교회가 신축될 당시 L회장은 교회건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I사는 이 인연으로 2006년 완공 직후 교회 건물 3층에 입주했다. 하지만 B교회 인근엔 I그룹 사옥으로 알려진 빌딩이 따로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부지와 건물은 지하 1층∼지상 6층의 연건평 약 500평 규모로 L회장이 1989년 토지를 매입한 데 이어 2007년 신축 완공해 회사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용도는 업무시설 및 다가구주택으로 I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L회장의 현 주소지도 이곳이다. 회사 한 직원은 “무슨 일로 왜 왔냐”며 상당히 경계했다. I사의 탈세 부분과 비자금 사안을 묻자 그는 “터무니없다”며 “누가 또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니냐”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세청 조사와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금시초문이다. 전혀 아는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I그룹을 둘러싼 의혹들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는 지난 1일 탈세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I그룹 사옥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조만간 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해 집중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기거래 경험 전혀 없었는데…”
DJ정부 시절 급성장 ‘미스터리’ 


I그룹이 받고 있는 의혹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검찰은 I그룹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캐고 있다. 검찰은 I그룹이 외국 무기를 국내에 중계 판매하는 과정에서 방위산업청 간부 등 군 관계자들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낸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무기 거래 입찰 등에 활용한 정황이다. 문제는 탈세와 비자금 혐의다. 검찰은 I그룹이 거액의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탈세 부분은 앞서 국세청이 조사를 끝낸 사안으로 지난달 말 I그룹이 70억원대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검찰에 접수했다.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대형 무기도입과 관련 I그룹을 포함해 3∼4개 무기 중개업체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세무조사는 ‘대형사건 전담반’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담당해 신빙성을 더한다. 조사4국은 국세청 내에서 심층·기획 등의 특별세무조사만 전담하는 특수조직으로 사실상 국세청장 직할부대로 꼽힌다.

실제 <일요시사> 취재 결과 I그룹이 그동안 국세청에 신고한 연매출액은 2005년 9억원, 2006년 12억원, 2007년 13억원, 2008년 16억원으로 평균 10억∼2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I그룹의 매출 누락·축소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I그룹은 1985년 자본금 300만원으로 설립돼 연간 매출이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게 관련 업계의 추정이다.

무기중개업 관계자는 “I그룹은 군은 물론 경찰과 소방서 등에 무기와 장비 등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수수료를 받아 사업을 확장해 국내 방위산업 업계에서 최고의 거래 실적을 올리고 있다”며 “해외 시장을 두들겨 회사 규모를 키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사일, 전차, 장갑차, 헬리콥터, 초등훈련기 등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에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잠수함 들여오는데…’
연매출 고작 10억원?

또 다른 방산업체 임원은 “I그룹은 전투기와 잠수함 등 굵직한 무기도입 사업에도 한국 에이전트를 맡아 군에 납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기 종류와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대형 건이 성공되면 중개상엔 보통 1건당 로비자금 명목을 포함해 수십억원이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귀띔했다. 검찰은 국세청의 고발과 함께 자체 수집한 첩보로 I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바로 비자금 조성 혐의다. 검찰은 I그룹이 세금을 탈루해 ‘검은돈’을 만든 정황도 확인하고 있다. 현재 I그룹의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통장 내역을 국세청으로부터 넘겨받아 정밀 분석 중이다.

나아가 이 돈이 정·관계로 흘러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수사가 ‘권력형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는 대목이다. I그룹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급성장한 만큼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작업으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다. 일각에선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종 타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부산 출신인 L회장은 국내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1980년대 초 신군부에 의해 자택에 연금된 김 전 대통령을 담당하면서 ‘동교동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간부로 재직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던지고 충무로에 작은 사무실을 얻은 게 I그룹의 출발이다. L회장은 그전까지 무기중개 사업 경험이 전혀 없었다. L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능력을 펼쳐보고 국가 경제와 방위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사업을 벌였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L회장은 국내 최고의 무기 로비스트인 조풍언씨와도 각별한 사이로 전해진다. 조씨 역시 김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조씨는 국민의 정부 시절 ‘얼굴 없는 실세’라 불릴 정도로 DJ정권의 숨은 가신으로 통했다. 이런 후광을 등에 업은 I그룹은 2001년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당시 3조원 상당) 대신 무기를 도입하는 이른바 ‘불곰사업(2차)’에 참여하면서 공식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I그룹은 ‘신인’에 불과했다.

군납 실적은 물론 러시아와 거래가 전무했던 I그룹이 불곰사업 중개권을 확보하자 사전 정보유출과 특혜 의혹이 일었고 결국 전 국방부 차관에게 군납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재문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1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10년간 군납 실적이 3억여 원에 불과하고 그동안 러시아와 전혀 연고가 없었던 I그룹이 비공개로 진행된 2000년 10월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불곰 2차 사업이 결정되기 직전인 9월7일 러시아 국영무기수출회사와 대리점권을 체결한 것은 정권의 비호와 사전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고 지적했다.

불곰사업 때 깜짝 등장
때마다 정치인 연루설

그는 이어 “I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차관은 구속했지만 I그룹에 대해선 내부 직원이 벌금형을 받았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고 덧붙였다. I그룹은 2002년 총 5조4000억원에 달하는 차세대전투기(FX) 사업에서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의 에이전트로 참여해 미국 보잉사의 ‘F15’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비록 사업권 수주에 실패했지만 당시에도 DJ정부 실세들이 수주전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I그룹은 국방부 군수본부 내외자업체, 국방과학연구소 외자업체, 조달청 외자업체 등으로 선정, 해외 무기생산업체의 크고 작은 대행 업무를 맡아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로 우뚝 섰다. 지난 2월 군수물자 수출로 국가 무역진흥과 경제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한국무역진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엔 국방부가 검토 중인 미국의 아파치 공격용 헬리콥터 ‘AH-64D’도입과 관련 I그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업계에선 I그룹이 지난해부터 로비전에 뛰어들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국방부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극비리에 물밑작업을 끝낸 L회장이 검찰 수사를 넘어 또다시 베팅에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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