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열풍 중년남성에게도 불어 ‘꽃중년’ 되려는 남성들 증가
미(美)중년연예인 활약과 ‘외모도 경쟁력’ 분위기가 세태 만들어
꽃중년 열풍이 뜨겁다. 20대 젊은 층에서 시작된 예쁜 남자 신드롬이 중년남성으로 옮겨가면서 생긴 현상이다. 중년남성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꽃미남 바람이 아저씨들에게까지 분 것은 매스컴의 영향이 컸다. 최근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등에서 잘생긴 중년 꽃미남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이들을 자극시킨 것. 또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사회분위기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대표되던 중년남성들에게 ‘외모 가꾸기’를 강요하는 것도 한 가지 요인이다. 몸 만들기에 피부 가꾸기, 성형도 불사하는 중년들의 ‘꽃남 만들기’ 열풍을 취재했다.
직장인 이모(43)씨의 아침은 오늘도 분주하다. 머리손질에서부터 기초화장품 바르기, 옷 고르기까지 출근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아침밥은 안 먹더라도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이씨의 출근시간이 예전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출근시간 20여 분 전에 일어나 겨우 세수를 하고 부인이 챙겨주는 옷을 허겁지겁 입고 나오던 것이 불과 1년여 전 이씨의 모습. 이랬던 이씨의 아침이 바뀐 것은 지난해 중학교 동창모임에 나가고서부터였다.
“분명 나랑 동갑인데…”
젊은 동창생 모습에 충격
눈에 띄게 젊어 보이는 외모는 아니지만 또래들과 비교하면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씨. 그러나 일부 친구들의 얼굴과 몸매는 자신과는 달랐다. 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팽팽한 피부와 청바지가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몸매를 가진 동창들이 적지 않았던 것.
그날 나눈 대화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도 외모 가꾸기에 관한 것이었다. 동창들은 아내가 사주는 옷을 생각 없이 입고 스킨, 로션만 대충 바르는 것으로 피부 관리를 끝냈던 자신과는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1~2시간씩 땀을 흘리는 것은 보통이고, 피부 관리실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는 동창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몇몇 친구들은 성형외과에서 보톡스를 맞았다는 이야기까지 꺼내 이씨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들이 외모를 가꾸는 이유였다. 이들은 ‘외모도 실력이다’라는 생각에 성공을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겉모습에 공을 들이고 있었던 것. 그동안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는 남성들을 ‘기생오라비 같다’거나 ‘바람난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말로 폄하했던 이씨에게 친구들의 말은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씨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봤다. 답은 한 가지였다. 배 나온 아저씨.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을 핑계로 자기관리에 등한시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축 처진 뱃살에 근육이라곤 없는 몸, 술과 담배, 피로에 찌들어 주름살과 기미로 가득한 얼굴이 40여 년간 이씨가 만든 자신이었다.
아내와 자식들의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남편과 아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저씨일 뿐이었다. 점점 긴장감을 잃어가는 아내의 외모를 탓하는 동안 그 역시 그저 그런 중년남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를 깨달은 이씨는 생활에 변화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중년남성들을 일컫는 노무족(No More Uncle의 줄임말)의 대열에 끼기로 결심한 것. 이를 위해 이씨는 먼저 술부터 줄였다. 술자리를 좋아해 일주일에 2~3번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동네 헬스클럽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패션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아내의 몫이었던 쇼핑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유행하는 옷 스타일을 공부하는 등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옷을 잘 입는 직장동료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하는 패턴도 달라졌다. 남는 시간이면 인터넷 고스톱을 치거나 증권현황을 알아보는 것이 전부였던 이씨는 그날부터 피부 관리하는 법이나 뱃살 줄이는 방법 등을 열심히 찾아보며 정보를 모았다.
처음엔 이런 모든 행동들이 쑥스럽기만 했던 이씨.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자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 그리고 조금씩 달라지는 거울 속 모습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된 것이다.
자신을 대하는 주위사람들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바람난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던 직장동료들은 몇 개월간 계속 되는 이씨의 노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깔끔한 외모와 부드럽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이씨에게 큰 무기가 됐다.
가족들도 달라졌다. 특히 갈수록 젊어지는 남편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아내는 결혼 전처럼 화장을 하고 몸매를 가꾸는 데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렇다 보니 금슬도 좋아졌다고 한다. 신혼시절의 긴장감과 설렘을 다시 찾아 부부생활도 좋아졌다고 한다.
이씨는 “1년여 전의 나를 생각하면 남자이길 포기하고 살았던 것 같다”며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과 돈이 외모 가꾸기에 들지만, 그것과는 바꿀 수 없는 자신감을 얻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꽃중년 활약상
중년남성 자극 충분
이씨처럼 외모를 가꾸는 데 공을 들이는 중년남성들은 적지 않다. 특히 최근의 ‘꽃중년’ 열풍은 중년남성들을 더욱 자극시켜 ‘꽃미남’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0대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몸매와 외모를 가진 꽃중년 열풍이 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20대의 젊은 축구선수 못지않은 실력과 노련미를 과시했던 홍명보, 황선홍 등이 여성들에게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중년남성의 위치는 조금씩 격상하기 시작했다.
보통 중년남성은 배 나오고 머리숱 빈약한, 남성다운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였지만 이들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중년남성도 충분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남성으로써의 매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셈.
이처럼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중년남성들의 매력이 폭발한 것이 최근이다. 이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 것은 드라마. 주인공의 아버지나 주변인물에 그쳤던 중년남성들이 드라마에서 어엿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와 남성다운 얼굴에 중년의 중후함까지 더한 매력적인 남성들이다.
최근 막을 내린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 등장한 윤상현과 최철호가 대표적 예다.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달리고 있는 이들은 20대 스타를 넘어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영화배우 차승원, 김수로 등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40대들 역시 남성다운 매력을 선보이며 중년남성들을 자극하고 있다.
이들의 비현실적(?) 외모는 비슷한 또래의 남성들에게 질투심과 함께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꽃중년, 미중년의 대열에 합류하고픈 남성들의 노력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제품들이 중년남성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닭가슴살이나 헬스보충제 등 근육을 만드는 데 좋은 식품을 찾는 30, 40대 남성이 크게 늘어난 것.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4월15일부터 한 달간 닭가슴살 매출이 작년 대비 10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매고객 중 75%가 남성인데 이들 중 30대가 37%, 40대가 23.4%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헬스보충제 등 다이어트 식품에서도 40대 남성의 구매비중이 늘고 있다. 옥션에서 다이어트 식품의 최근 한 달간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40대 남성 구매비중은 24%로 지난해보다 10%p 이상 늘었다.
패션업계 역시 중년남성들을 잡기 위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높은 소득과 왕성한 구매력을 자랑하는 중장년 남성들은 불황 속에서 든든한 블루슈머로 급부상하고 있다. 젊은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탄탄한 경제력을 가진 중년남성들은 명품 등 비싼 제품을 사는 데 망설이지 않는 경향이 있어 이들을 노린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화장품업계도 마찬가지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중년남성들을 노린 기능성화장품들을 잇달아 출시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제품들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안티에이징 제품. 주름살을 완화해주는 등 좀 더 어려보이는 피부를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중년남성들의 최대 적인 ‘탈모’와 관련된 제품들도 쏟아져 풍성한 머리숱을 원하는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남성, 특히 중년남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성형외과 역시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패션으로도, 몸매관리로도 해결되지 않는 노화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중년남성들로 붐비고 있는 것.
영업직에 종사하고 있는 정모(44)씨도 최근 성형수술을 받았다. 직업상 호감 가는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정씨는 거울을 볼 때마다 불만이었던 팔자주름을 없애기 위해 자가지방이식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후 자신감이 두 배는 더 생겼다는 정씨는 눈 밑에 처진 살을 제거하는 수술과 쌍꺼풀수술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남자가 무슨 성형이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단순히 미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사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한 수술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정씨처럼 중년남성들이 성형을 결심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원만하고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이다. 연예인들과 같은 꽃 같은 외모를 바래서가 아닌, 좀 더 부드러운 인상과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수술대 위에 오르는 것이다.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중년남성들도 많다. 넉넉한 뱃살이 곧 인격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 오늘도 많은 남성들이 복근을 만들기 위해, 날렵한 턱선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안 되면 주사바늘이라도…
성형외과도 북적북적
이처럼 중년남성들의 ‘꽃남 만들기’ 열풍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며 외모관리에는 등한시했던 중년남성들이 사라졌던 ‘남자의 매력’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개 숙인 아버지’와 ‘위기의 남자’로 불리며 존재감을 잃어가던 중년남성들이 외모를 변화시킴으로써 자신감을 얻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그러나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일부 매스컴의 지나친 행태는 경계해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