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에서 난투극을 벌인 조직폭력배(이하 조폭) 100여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쇼핑몰 점유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온 시공사와 시행사 측에 각각 고용된 두 조직의 싸움이었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용역직원으로 위장한 이들의 싸움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난폭했다. 도심 한가운데서 조폭들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펼친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서 호텔 운영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처럼 지금의 조폭들은 굵직한 돈거래를 따라 각종 이권에 개입해 돈벌이에 나서고 있어 이와 유사한 활극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지난 1월 도심 한복판서 이권다툼 벌인 조폭 4개월 만에 덜미
용역업체 직원으로 가장, 조폭들의 대범한 패싸움 비일비재
지난 1월20일 오전 5시49분쯤, 인천시 남구의 한 쇼핑몰 앞 대로변. 지나가는 이도 없는 새벽녘 갑자기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쇼핑몰 앞 대로변에 세워져 있던 관광버스에서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 수십 명이 줄지어 내렸고 한쪽으로 줄을 섰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각목과 쇠파이프 등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새벽에 웬 날벼락?”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들은 곧바로 몸싸움을 시작했다. 새벽 거리는 흉기가 맞부딪히는 소리와 남자들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소화기를 분사했고 주변은 뿌연 연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대편은 물대포를 쏘며 소화기 연기에 맞대응했다. 평화롭고 조용하던 새벽은 이들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들의 싸움은 순찰차가 도착한 뒤에야 끝이 났다. 이날 도로를 점거하고 약 10분간 패싸움을 벌인 것은 서울 지역 폭력조직 A파 조직원 90여 명과 인천 지역 폭력조직 B파 조직원 60여 명. 경찰은 4개월여의 추적 끝에 이들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인천 삼산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에서 폭력조직을 결성해 활동 중인 기업형 신흥폭력조직 2개파 108명을 붙잡아 이중 서울지역 폭력조직 두목 김모(42)씨 등 5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10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이 도심에서 혈투를 벌인 이유는 쇼핑몰 점유권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A파와 B파는 1600억원 상당의 쇼핑몰 점유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벌여온 시공사와 시행사 측에 각각 고용돼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조폭은 경찰에 자신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용역직원이나 경비원 등으로 위장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구속된 이들 중 두목 김씨는 이날 싸움에 앞서 조직원들을 모아두고 ‘이권 현장은 우리가 접수하고 우리가 지킨다. 후배들은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주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건현장 주변 폐쇄회로 화면 분석과 현장탐문 등을 통해 피의자들의 신원을 파악한 뒤 5개월간 서울과 경기도, 인천 일대에서 기획수사를 벌여 이들을 붙잡았으며 이들이 패싸움 당시 사용한 흉기 166점을 압수하고 범행에 가담한 나머지 조직원 50여 명을 쫓고 있다.
결국 이번 난투극은 이권다툼을 하는 세력에 조직폭력배가 해결사로 투입되면서 벌어졌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싸움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현재 조폭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업 중 하나가 용역·경비업이기 때문이다.
불황 속에서 돈을 찾아 헤매는 조폭들에게 든든한 돈줄이 되는 사업 중 하나가 몸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는 일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현장에서의 이권개입은 물론 개인의 사주, 자치단체의 의뢰 등도 도맡아 한다. 굵직한 돈거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비용역업체를 가장해 이권현장에 모습을 드러내 해결사 노릇을 한다. 처음에는 10명 이내로 투입되지만 마찰 상황에선 많게는 100명까지 동원되기도 한다. 경찰이 덮치면 용역업체 직원들만 남고 조폭들은 모습을 감춰 수사망을 피한다. ‘치고 빠지는’ 행태를 보이는 셈이다.
정부단체나 국가유공자 단체를 만든 후 조폭사업에 개입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합법적인 사회단체를 결성한 후 이권사업에 뛰어들어 해결사 역할을 하는 형태다. 최근 벌어진 리버사이드호텔 폭력사태에도 한 사회단체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폭력사태를 이끈 주역은 ‘설악산팀’이었다. 세간에는 세입자와 호텔간 마찰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270억원의 리모델링 공사금을 둘러싼 암투였던 것이다. 리모델링 공사를 담당했던 D사 사장 L씨가 최초 K사장과 계약을 했는데 중간에 명도자가 바뀌면서 공사대금을 떼일 상황에 처한 것.
L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설악산팀에 용역을 맡겼고 설악산팀은 오전 2시쯤 급습한 200여 명의 용역직원들을 상대로 활극을 펼쳤다. 하지만 급습한 용역직원들은 완강한 설악산팀에게 패퇴한 후 호텔 밖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발생했다. 방어한 설악산팀과 급습한 용역직원들 중 설악산팀 조직원이 조우한 사실이다. 인터넷을 통해 급작스럽게 연합되어 급습했던 설악산팀 조폭들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됐다’며 당황해했다는 후문이 떠돌았다.
같은 조직끼리 ‘치고받고’
이처럼 최근 조폭들은 용역업체 직원 등으로 가장하고 도심 한가운데서 대범하게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공포심에 휩싸이게 되는 시민들.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조직폭력배들의 피 튀기는 싸움이 눈앞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은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조직폭력배를 규합해 합법적인 회사를 설립하고 그 회사를 기반으로 전국의 이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규모 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유사한 난투극이 벌어질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