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충격의 토요일! 노무현 서거>⑥ 못다피운 과업 셋

2009.05.26 13:24:04 호수 0호

‘바보’, 평생 꿈 이루지 못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국민과의 의사소통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선창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과 ‘소신’이 그의 무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뚜렷하고 과감한 자신만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평생 과업도 못다 피우게 됐다. 그가 이루지 못한 세 가지 ‘꿈’을 조명해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 없는 ‘깨끗한 이미지’를 표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초기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정부패를 없애야 한다”며 “부패 사례가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했다.
그는 집권 5년 동안 내내 도덕적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했고, 퇴임 후에도 ‘도덕성’이 참여정부의 핵심 기반이었다고 누차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늘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자신이 공언한 ‘패가망신’의 덫에 걸렸다. 참여정부 역시 비도덕적 정부란 ‘멍에’를 뒤집어썼다.

몸소 행동으로 실천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단절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를 선도했다는 점은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며 “그러나 임기 내내 입버릇처럼 말한 비리 척결은 이제 이룰 수 없는 노 전 대통령의 꿈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함께 줄곧 ‘망국병’인 지역주의 청산을 외쳐왔다. 1990년 3당합당 거부와 1995년 부산시장 도전 실패 등이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경우다.

이 과정에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지만 지역주의 타파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행정복합도시와 공기업 지방 이전, 지역혁신 클러스터 등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방침도 같은 맥락에서 노 전 대통령이 노력한 결과다.
노 전 대통령의 탈지역주의 과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듯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전국 지지율이 과거와 달리 대체로 고른 분포를 보였기 때문이다.

탈권위·수평적 리더십으로 소통 ‘대한민국 개혁’선창
부패 척결,  지역주의 청산, 귀농의 꿈 ‘다음 세상서…’


이도 잠시, 2007년 12월 대선에선 선거 때마다 고질적으로 되풀이되던 지역색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후보별로 영·호남의 표심이 뚜렷하게 갈린 것. 예상했던 대로 영남권에선 한나라당이, 호남권에선 당시 열린우리당이 몰표를 얻었다.
일부에선 지역감정을 이용한 선거운동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지역주의가 희미해졌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뿌리 깊은 지역주의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1년 만에 탈지역주의를 역설하며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호남권과 거리를 두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3년 만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당을 자진 해체하고 호남 쪽으로 기대 의미가 퇴색했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무르익던 ‘귀농의 꿈’도 못다 피우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퇴임식을 가진 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고향마을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귀향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자연정화 활동과 친환경 농사 등에 몰두했다. 농사를 짓거나, 손녀와 자전거를 타는 등 노 전 대통령의 평소 소탈한 모습들이 소개돼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봉하마을엔 전직 대통령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또 “화포천의 쓰레기와 오염은 참 가슴이 아팠다”며 “새마을운동을 다시 하자고 해볼까 싶다”고 밝히며 자연정화 운동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위해 마을 뒤 봉화산 숲 정비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한림면 화포천습지와 봉화마을 봄맞이 화포천 자연정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엔 봉하마을 앞 농경지에다 친환경농법인 오리농법을 도입한 첫 벼 수확의 기쁨을 얻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수확한 ‘봉하 오리쌀’을 청와대로 보내기도 했다.

“조용히 살고팠는데”

그러나 그의 소탈하고 서민적인 귀향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귀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기록물 유출 문제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가 싶더니 지난해 12월 형 건평씨가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돼 결국 구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따뜻해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실상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3일, 영욕의 64년 삶과 파란만장한 15개월간의 귀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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