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고백'으로 본 국정원사건 실체 '재구성'

2013.05.01 15:46:15 호수 0호

"국정원사건, 윗선의 은폐지시 있었다"

[일요시사=정치팀] 지난해 대선기간 여야는 국정원이 야권 대통령후보에게 불리한 댓글을 작성하며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었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최근 수사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해 또 한 번 파문이 일고 있다. 국정원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경찰내부에선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걸까? <일요시사>가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국정원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9일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하라는 경찰 수뇌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금지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도 대선개입은 아니라는 다소 황당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이었다.

정치개입?
대선개입?

권 과장은 당초 이 사건을 맡아 수사해왔으나 지난 2월4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송파경찰서로 전보처리 됐다. 권 과장은 수사 도중 과로로 병원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도 수사 의지를 불태워 왔기 때문에 그의 전보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찰 주변에서는 권 과장이 수사방향을 놓고 경찰 지도부와 갈등을 겪다 전보조치 된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경찰 측은 규정에 따른 인사였을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권 과장은 이날 작심한 듯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를 갖고 "서울지방경찰청뿐 아니라 경찰청으로부터도 (압력)전화를 받았다"며 "경찰 고위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와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를 떠올리게 하는 용어를 언론에 흘리지 말라'는 취지로 지침을 줬다"고 말했다.

'국정원사건' 수사 발표 때 무슨 일 있었나?
"수사개입" VS "사실무근"…양보 없는 진실공방


권 과장은 "김씨와 함께 댓글을 단 '참고인 이모씨'의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났을 때도 경찰 상부로부터 주의를 받았다"며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한 지난해 12월12일부터 송파경찰서로 전보된 2월4일까지 경찰 윗선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하게 수사에 개입해 우리 실무진들이 수사에만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권 과장의 폭로를 토대로 지난해 대선정국을 집어삼킨 국정원사건을 복기해보면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았던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풀리는 듯하다.

지난해 12월16일은 대선후보들의 마지막 3차 TV토론이 열린 날이었다. 대선을 불과 3일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던 민감한 시기였다. 이날 토론의 최대 화제는 바로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논란. 양 후보는 이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오차범위 내 경합
한순간에 뒤집혀

그런데 토론회가 끝난 직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을 수사 중이던  수서경찰서가 오후 11시경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려온 것이다. 당초 다음 날인 17일 공식브리핑을 하겠다고 이미 공지한 상태에서 돌연 오후 11시라는 늦은 시간에 브리핑을 앞당겨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수서경찰서는 이날 오후 11시20분경 보도자료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단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녀 사건을 두고 박근혜 후보와 치열한 설전을 벌였던 문재인 후보 측으로서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히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시 수서경찰서 관계자들은 "갑자기 서울경찰청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언론에 최대한 빨리 알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며 당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후 불과 3일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경찰은 12월13일 김모씨 컴퓨터 2대를 제출받아 분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댓글은 집에서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김씨가 경찰에 제출하기 전 하드디스크의 저장내용을 이미 삭제했거나 아예 하드디스크를 교체했을 가능성까지 있었지만 경찰은 이러한 조사는 전혀 진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둘러 발표를 강행한 것이었다.



또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보도자료를 직접 만들어 발표 30분 전에야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보냈는데 보도자료가 지방청에서 만들어져 수사팀으로 하달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다. 정작 수사의 주체인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서울청의 발표가 있은 후 이틀 후에야 컴퓨터 분석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대선기간 보여준 경찰의 이 같은 행태는 일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 과장의 폭로대로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권 과장의 폭로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권 과장이 언급한 ‘윗선’으로 지목되고 있는 서울경찰청은 권 과장의 폭로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서울청 측은 "대선 이후까지 수사를 미적댄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발표를 서두르게 됐다"며 "권 과장이 수사 초기 단계에서 '국정원에 혐의가 있다'는 식의 얘기를 언론에 흘려 수사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지휘부에서 자제를 요구한 것을 축소·은폐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정성 당부한 것"
"은폐 지시한 것"

특히 양측이 반박과 재반박을 이어가며 진실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전혀 새로운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오히려 권 과장이 수사과정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쪽으로 유리한 수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편파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다.

권 과장은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컴퓨터 2대를 서울청에 맡기면서 혐의 관련 키워드 100여개를 분석 의뢰했다. 하지만 서울청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키워드를 박근혜, 문재인,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로 대폭 축소해 감식한 뒤 댓글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권 과장은 이를 두고 윗선의 수사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이에 대해 대선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단어가 대다수여서 핵심 키워드만 검색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당장 보수진영에서는 대선관련성을 수사하는 것 치고는 너무 많은 키워드를 제시했다며 권 과장이 수사지연을 노리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수서경찰서는 당시 '가식' '호구' '네이버' 등 대선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도 검색 키워드로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당초 수서경찰서의 요청대로 100여개의 키워드를 일일이 분석했다면 수사는 크게 지연됐을 것이고 자칫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수사결과가 대선 이후에나 발표됐다면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선거판세는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무척 불리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권 과장의 정치편향성을 의심하며 양측 모두 수사의'결과'보다는 수사의 '속도'가 중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폭로 배경은? "진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정치편향성 논란 제2라운드 '엉뚱한 불똥'

그러나 권 과장은 "당시는 증거 수집 단계였는데, 혐의와의 연관성을 운운하며 키워드를 빼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며 정당한 요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선 경찰들에 따르면 "지방청에 증거물 분석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지방청이 상위기관이라도 일선 서의 요구대로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권 과장은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측으로부터 정치편향성을 의심받은 것은 사실이다. 국정원 측은 권 과장에 대해 "본질에서 벗어난 사소한 부분까지 뒤지면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며 "(권 과장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는 것 같다. 우리 측이 고발한 주거침입, 감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등의 항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과장은 광주 출신으로 제4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정으로 경찰에 특채됐다.

이외에도 권 과장은 "서울경찰청이 중간수사 경과를 발표한 뒤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최종 분석자료를 우리에게 안 주려고 했다"며 "우리(수서경찰서 수사팀)가 '당신들, 법 위반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격렬히 항의하고 나서야 뒤늦게 컴퓨터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청은 컴퓨터 반환이 늦어진 건 방대한 검색자료 정리 때문이었다며 수사 축소나 은폐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엉뚱한 진실게임
'정치입문 한다?'

한편 일각에선 권 과장의 폭로가 정치권 입문을 위한 포석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보수논객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번 검찰의 백혜련도 그러던데 권은희도 양심선언 비슷(하게) 한 뒤 민주당에 입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공직자 양심선언 뒤 정계진출 포기 선언도 함께 하도록 여론을 조성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한 치 양보도 없는 진실게임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