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경찰관이 권총으로 미용실 여주인을 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기난사를 벌인 이유는 다름 아닌 ‘짝사랑’ 때문. 평소 여주인에게 스토킹에 가까운 구애를 펼쳤던 경찰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극단적인 행각을 벌였다. 결국 자신에게도 총을 겨눈 이 경찰은 짝사랑하던 여인과 한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집착에 가까운 짝사랑이 어이없는 참극을 만들어낸 것.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다.
툭하면 일어나는 경찰들의 범행이 도를 넘었다. 이번엔 대낮 미용실에서 총기난사극이 벌어졌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눈 장본인은 군산경찰서 나운지구대 소속이었던 조모(46) 경위. 그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는 전북 군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여주인 A(37)씨다.
“한 번만 만나줘”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서로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7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 경위는 미용실 부근에서 벌어진 도난사건을 조사하던 중 유부녀인 A씨를 알게 됐고 호감을 느껴 그 후에도 자주 미용실을 드나든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에게 수차례 만남을 요구하며 미용실에서 음식을 시켜먹는 등 스토킹에 가까운 행위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끈질긴 구애를 하던 조 경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지난달 29일이다.
군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20분경 지구대에 출근한 조 경위는 곧바로 실탄 3발과 공포탄 1발이 든 38구경 권총을 무기고에서 꺼내 챙겼다. 그리고 군산 야미도에서 주민집회가 열려 순찰직원이 부족하다는 말에 관내 순찰을 자처한 뒤 오전 9시30분쯤 부하직원과 함께 지구대를 나섰다.
하지만 조 경위는 관내 순찰업무 대신 A씨가 있는 미용실로 자신의 차를 돌렸다. 경찰은 “조 경위는 부하직원에게 순찰차에 주유를 하라고 지시한 뒤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미용실로 향했다”고 말했다.
지구대에서 범행 현장인 미용실까지는 직선거리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들은 미장동 모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해서 오전 10시쯤 미용실에 도착한 조 경위는 A씨와 대화를 하던 중 말다툼이 벌어졌고 홧김에 몹쓸 행각을 벌였다.
경찰은 “미용실 여주인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던 조 경위가 이날 말다툼을 벌이다 격분해 순간적으로 권총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총을 겨눴다는 사실을 인지한 조 경위는 곧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쐈다.
경찰은 “이날 사건에 사용된 총기는 38구경 4인치 권총으로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이 장전돼 있었고, 조 경위는 사건 당시 공포탄 포함 4발 모두를 발사해 실탄 2발은 각각 A씨와 조 경위의 머리를 관통했고 나머지 한 발은 빗나가 창문틀에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길을 지나다 미용실에 들른 한모(30·여)씨의 신고로 이들은 병원으로 후송됐다. 한씨는 경찰에서 “미용실 앞을 지나치다 머리를 손질하려고 안에 들어갔는데 내실에 남자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어 곧바로 신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은 한날 운명을 달리했다. A씨는 동군산병원에 후송된 지 3시간여 만에 숨졌고, 조 경위는 사고 발생 7시간여 만인 오후 5시35분쯤 숨졌다.
이처럼 치정으로 인해 경찰이 권총으로 시민을 살해했다는 사건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조 경위가 평소에는 성실한 가장이자 경찰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부인과 2남1녀를 둔 가장이었던 조 경위는 수차례에 걸쳐 수상 경력이 있는 모범경찰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직원들과 업무 외에는 잘 어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그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는 모범적인 경찰로 전해지고 있었다.
가정이 있는 여성을 향해 끈질긴 스토킹 행각을 벌인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때문에 총기 역시 쉽게 소지할 수 있기도 했다.
경찰은 채무나 이성관계가 복잡한 경찰관은 관심대상으로 분류해 총기를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는데 조 경위는 관심대상에 올라있지 않았던 것. 결국 경찰 개인의 신상에 대한 부실한 관리와 치정이 맞물려 이 같은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전북경찰은 이번 사건의 진화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동선(56) 전북지방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 “부하 경찰관이 저지른 권총살해 사건에 대해 도민과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이 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사과한 뒤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찰청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지난달 29일 강이순 군산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는 한편 30일에는 군산서 생활안전과장과 나운지구대장도 직위해제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기에 급급하다는 것.
한 시민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경찰관의 윤리의식과 기본소양의 교육이 거론되는데 사건이 잊혀지기가 무섭게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경찰관을 어떻게 믿고 치안을 맡기겠느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