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68)

2013.03.11 11:11:17 호수 0호

적당히 치고 다음을 기약하라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감정에 치우쳐 일 그르치지 말라
인상착의와 신체 특징을 기억하라

“사모님, 죄송하지만 좀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고자 하니 문을 열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 사장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모님 말씀을 믿고 싶지만, 회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확인하고 보고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내가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자 부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내 처지를 이해라도 해주었는지, 아니면 어차피 한 번은 확인 시켜 줄 테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의도인지 말없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감사합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대문 안으로 들어서서 부인을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채무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80세 정도의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채무자의 부인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거실 소파에 눕힌 후 주방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가져다주었다.
“시아버지께서 부도 이후로 몸이 더욱 나빠 지셨어요.”
부인은 서있는 상태로 시아버지가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며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많이 편찮으신가 보죠?”

“지난해에 애기아빠가 부도가 나자 집에도 알리지 않고 도망을 간 후 채권자들이 들이닥쳐 몇 날이고 아빠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며 소란을 피우자 그 충격으로 쓰러지셨지요. 얼마 전 겨우 불편하지만 저렇게라도 일어나 거동을 하고 계셔요.”
부인은 아직 남편이 도망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만감이 교차하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대리점 사장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수십억원의 부도를 내고 잠적을 하는 등 남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상류층에서 빈민층으로 신세가 뒤바뀌었으니 그 자존심과 충격이 오죽이나 컸을까싶었다.
그러나 그런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칠 수 없었다. 부인의 말을 들으면서 거실을 주욱 둘러보니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들이 그리 고급제품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는 채무자와 부인이 애기를 안고 있는 다정한 모습을 담은 가족사진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쓴 보통의 30대 초반 남자로 보였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돌려 부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사장님과 찍은 사진이 자연스럽게 잘 나왔습니다.” 
부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관심이 없다는 듯 무반응이었다. 어쩌면 사진을 찍을 당시의 행복했던 순간과 현재 처해있는 자신들의 처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부인을 의식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거실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마침 거실에 진열되어있는 대형 오디오 진열장속의 앨범이 눈에 들어왔다. 나 사장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인상착의를 알 수 있는 사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앨범 속에서 나 사장의 사진을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잠들어 있던 아기가 잠시 눈을 떠 엄마를 확인 하듯 옹알거리는 것을 달래주고 있는 틈을 타서 나는 진열장 앞으로 다가가 그 부인을 향해 말했다.

“사모님 죄송하지만 앨범 좀 봐도 되겠습니까?”
“앨범은 왜 보시려고요?”
“사실 저는 영업담당자가 아닌 채권관리업무를 하는 관계로 사장님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하는데 사진이 꼭 필요합니다. 어떤 사진이라도 좋으니 한 장만 주십시오.”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럴듯하게 둘러 대면서 부인의 답변이 있기도 전에 이미 앨범을 꺼내 펼치고 있었다. 당시 회사 업무 특성상 거래를 중단하여 미수가 발생되거나 혹은 부도로 인해 피해를 입힌 자들만 상대하다보니 대리점장들의 인상착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알아챌 수 있도록 사진의 인상착의를 유심히 보며,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을 내 잠재 기억 속에 깊이 담아 두어야 했다.
부인은 내 행동을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앨범을 펼쳐보면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자연스럽게 부인을 향해 물었다.

정면으로 승부하라

“사모님! 저희 회사 외에 나 사장님이 부도낸 금액이 모두 얼마나 됩니까?”
“저는 잘 몰라요. 애기아빠를 만나야 상세한 것을 물어 볼 텐데, 애기아빠가 없으니 물어 볼 수도 없고. 식구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대리점 직원들이나 관련자들에게 들었을 것이 아닙니까?”
“대략 한 20억 정도 된다나 봐요.”
“아, 예. 그래도 사모님만은 나 사장님과 연락을 취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내가 유도 질문을 하자 “잘 오지 않아요”라며 채무자와의 연결을 부인했다.

“잘 오시지 않는다고 해도 며칠에 한 번 아니면 몇 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왔을 것 아닙니까?”
나 사장의 행방에 대해 깊이 파고들자 부인은 대답하기가 곤란한 듯, 곤히 자고 있는 애기를 안고 나를 피해서 방안으로 들어가 포대기로 감싸 들쳐 업었다. 나는 일단 이정도로 하고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앨범 속에서 보아두었던 나 사장의 전신이 담긴 사진 두 장을 꺼내 상의 안주머니에 찔러 넣은 뒤 앨범을 덮어 제자리에 꽂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녀가 주방에서 젖먹이 우유통을 들고 나오더니 노인이 있는 방문을 열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애기 우유 사러 슈퍼에 다녀올게요.”

부인이 돌아서자 방안에서 노인이 허리를 굽혀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내가 먼저 집안 문을 열고 나오면서 부인을 향해 말했다.
“사모님, 실례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사장님과 연락이 닿으면 저희 회사에서 한 번 만나 협의를 하자고 전해주십시오. 어떻게든 만나서 해결하셔야지, 언제까지 숨어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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