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서 동반자살 5건 일어나 12명 목숨 잃어 충격
펜션, 자동차 안 등 연탄불 피워 놓고 같은 방식으로 자살
동반자살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보름간 무려 12명이 조를 이뤄 목숨을 끊었다. 자살한 날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인터넷 자살카페에서 만나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단속으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자살카페는 언제부턴가 암암리에 자살을 원하는 이들을 끌어 모아 동반자살로 이끌었다. 이번에 자살한 12명도 모두 자살카페에 가입해 동반자살을 도모한 것으로 드러나 심각성을 보여줬다. 보름동안 강원도를 싸늘하게 만든 동반자살 사건을 취재했다.
봄이 오면 부쩍 늘어나는 것 중 하나가 자살이다. 생체리듬이 변하면서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등 각종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올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이번 봄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동반자살 사건이 잇달아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다섯 건의 동반자살로 무려 12명이 운명을 달리한 것.
인터넷 자살카페가 화근
암암리에 모여 자살모의
첫 번째 동반자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달 8일이다. 강원도 정선의 한 민박집에서 남성 2명과 여성 2명이 연탄불을 피우고 동반자살을 한 것.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34분경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 모 민박집에서 신모(35·서울), 김모(43·서울), 이모(26·여·인천)씨 등 4명이 숨져있는 것을 주민 곽모(47)씨가 발견했다.
곽씨는 “이웃 민박업주의 부탁을 받고 객실을 관리하던 중 퇴실 시간이 지나도록 방문이 잠겨 있는데다 출입문에 ‘긴 취침 중’이라는 메모가 걸려 있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신고했다”고 말했다.
민박집 안에서는 ‘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의 메모와 화덕 2개, 타다 남은 연탄, 소주병 등이 발견됐다. 그리고 남녀 4명은 이불을 덮은 채 나란히 누워 숨져있었고 출입문과 창문 틈에는 비닐테이프가 붙여져 있어 연탄가스가 새 나갈 구멍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난달 6일 서울에서 빌린 렌터카를 타고 민박집에 투숙했고 이날 정오쯤 퇴실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충격적 사건이 잊혀지기도 전 강원도에서는 또 하나의 동반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15일 오전 11시 54분쯤, 횡성군 갑천면 중금리의 한 펜션에서 김모(26·경기 성남)와 권모(33·대전) 씨 등 남성 2명과 이모(19·여·경기 파주)와 나모(17·여고2·대전) 양 등 10대 여성 2명 등 투숙객 4명이 연탄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펜션 관리인 김모(56)씨는 “퇴실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방에 들어가 보니 4명은 이불을 덮은 채 나란히 숨져 있었고 1명은 현관문 앞에서 신음하고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펜션 객실에는 이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연탄과 화덕이 있었고 각자의 주머니에서 ‘가족에게 미안하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간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에서 렌터카를 빌려 횡성으로 이동한 뒤 14일 오후쯤 펜션에 투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유사한 방식의 동반자살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자 경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에 집중해 수사를 벌이는 한편 인터넷 자살카페의 존재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를 했다.
그러나 동반자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이 벌어진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달 17일 3명의 남녀가 함께 자살을 한 것. 이번에도 자살 장소는 강원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오전 9시10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모 휴게소 주차장에 세워진 카니발 승용차에서 지모(47·강원도 속초시)씨와 이모(29·전남 여수시)씨, 또 다른 이모(21·여·경남 양산시)씨 등 남녀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모두 인터넷카페에서 만나 자살 공모 한날한시에 황천길로
지식인 검색 등 통해 쪽지, 메일로 자살방법 등 정보 공유
또 다시 시도된 동반 자살
펜션 주인 기지로 목숨 살려
이들을 발견한 국립공원 관리인 송모(56)씨는 “산불예방 근무 중 휴업 상태인 휴게소 주차장에 시동이 걸린 차량이 세워져 있어 확인해 보니 화덕과 연탄이 보였고 사람이 쓰러져 있어서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숨진 차량 뒷좌석에는 연탄이 타고 있는 화덕이 발견됐고 차량 안팎은 청 테이프가 붙어 있어 연탄가스가 차 안에 가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한 여성의 소지품에는 “먼저 가서 미안해. 학교 졸업하고 나면 돈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아 힘들었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로 인한 사망임을 알게 해줬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난달 13일 오후, 경북 포항과 서울에서 각각 카니발Ⅱ 및 SM5 렌터카로 인제 한계령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 번째 자살사건은 지난달 22일 벌어졌다. 펜션 주인의 신고로 다행히 자살시도는 수포로 돌아갔지만 11명의 죽음 이후 또 다시 벌어진 사건이란 점에서 충격을 줬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이번에도 강원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22일 오후 7시25분쯤 홍천군 서면 팔봉리 모 펜션에서 이모(25·울산시)씨 등 남성 3명과 유모(16·여·충남 공주시)양 등 여성 2명이 동반자살을 기도하려다 펜션 업주 홍모(50·여)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저지당했다.
홍씨는 “최근 동반자살 사건이 잇따라 관심을 기울이던 중 어린 나이로 추정되는 남녀 5명이 투숙하려고 찾아온 것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거절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홍씨의 신고를 받은 후 인근 지역의 숙박업소 1000여 곳에 ‘회색 렌터카. 남성 3명, 여성 2명 투숙자 신고 바람’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그리고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지 30여 분 후 같은 지역 인근의 또 다른 펜션 업주로부터 ‘남녀 5명이 투숙해 있다’는 추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조사결과 이들이 타고 있던 렌터카의 트렁크와 펜션 객실에는 연탄 6장과 번개탄 6장이 발견됐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인터넷 자살관련 사이트에서 쪽지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날 낮 12시쯤 경기도 모 지역에서 만나 차량을 빌리고 연탄 등을 구입한 뒤 오후 7시경 홍천에 도착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펜션 주인의 발 빠른 신고로 5명의 목숨을 가까스로 살린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섯 번째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오전 11시30분쯤 강원 양구군에서 또 한 차례 동반자살사건이 벌어져 한 명이 목숨을 잃은 것.
이날 양구읍 웅진터널 인근 46번 국도 교차로에 주차된 싼타모 승용차에서 이모(40·서울 중랑구)씨와 박모(19·춘천시)양 등 남녀 각각 2명씩 4명이 동반자살을 기도해 쓰러져 있는 것을 산불감시원 윤모(39)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박양은 이미 숨져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타고 있던 승용차 창문에 청테이프가 부착돼 있었고 승용차 안에는 타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잇달아 벌어진 자살사건들이 모두 유사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 인터넷카페를 통해 자살을 모의했던 것. 경찰조사결과 각기 다른 날 숨진 이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하나씩 드러났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인제에서 동반자살한 지씨의 수첩에서 8명의 휴대전화 번호가 나왔고 이 중에는 횡성에서 동반자살한 김씨의 번호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지씨 수첩의 8명 중 2명은 지씨와 인제에서 함께 숨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이 서로 알게 된 곳은 예상대로 인터넷 자살카페였다. 이들은 한 포털사이트에 자살과 관련해 개설된 비공개 카페에서 쪽지나 메일을 주고받으며 자살을 공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살 정보공유 단속 어려워
인터넷상에 떠도는 자살법들
단속으로 인해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자살카페가 여전히 남아 자살을 원하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 이들 카페는 주로 포털사이트에 숨어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살 등의 단어로는 검색할 수 없도록 숨겨져 있는 것. 그러나 조금만 검색어를 달리 하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어 미성년자들도 문제없이 드나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자살정보가 활개를 치고 있지만 이들을 단속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자살사이트 등으로 인한 폐해가 커져 집중 단속을 실시해 이들 사이트를 줄였지만 쪽지나 메일, 게시물 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정보공유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