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25일 충남 홍성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정 전 의원은 영어의 몸이었던 탓에 민주당의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대선 패배의 책임과 비판을 비켜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어쩌면 그가 민주당 지도부를 편성할 ‘장외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민주당이 내홍을 거듭하고 있어 정 전 의원이 야권 정계개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요즘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출소 첫 일성으로 “아파하는 것은 1년 동안 감옥에서 제가 다 했다”며 “아파하지 말라, 좌절하지 말라, 좌절은 죄송하지만 개나 갖다 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여러분이 좌절하면 여러분을 믿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1469만2632명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길을 잃는다”며 “미래비전을 밝게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권스’ 활약 대단
작년 12월26일 입감 당시 눈시울을 붉혔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정 전 의원은 입감을 앞두고 “판도라의 상자가 다시 열렸다. 진실을 밝히는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전의를 다지던 모습에 비해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정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해 12월22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정 전 의원은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입을 막고 진실을 가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주장한 진실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재학시절 민주화추진위원회 회장을 역임하며 학생운동에 투신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졸업 후 도시빈민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진보적 성격을 띤 월간잡지 <말>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같은 시기 문익환 목사를 4년여 동안 보좌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하자마자 서울 시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기도 한 정 전 의원은 2004년 제17대 총선에 나서 국회의원(서울 노원 공릉동·월계동)에 당선됐다. 이후 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며, 2008년 18대 총선에서 현경병 한나라당 후보에게 2700여 표 차이로 낙선했다.
2010년부터 김어준과 함께 하나TV의 <정봉주 PSI>에 출연하다가, 2011년 김어준, 김용민, 주진우와 <나꼼수>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끌어 명성을 날렸다.
정 전 의원의 여의도정치 경험이라고는 4년여의 보좌진 생활과 제17대 초선의원 4년이 전부다. 게다가 재선까지 실패해 여느 정치인이 그렇듯 그의 여의도 입성은 그대로 끝나는 듯했다.
<나꼼수>에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청취자를 자신의 지지층으로 굳힌 정 전 의원의 영향력은 작년 ‘BBK 연루’ 사건으로 고스란히 방증됐다. 올해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내려진 판결이라 더 그렇다.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이 총선에 당선될 것이 두려워 여권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어쨌든 정 전 의원은 예상을 뒤집는 대법원 판결로 유명세를 탔다. 뒤집어 보면 정치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운’이 정 전 의원에게 작용한 것이다.
미권스’ <나꼼수>로 뜨고 ‘BBK 수감생활’로 굳히기
박영선 중매로 민주당과 WIN-WIN, 부작용 우려도
다행히 지난 1년간 정 전 의원은 꾸준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나꼼수>의 활약(?)도 대단했다. 정 전 의원 지지모임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의 회원수도 꾸준히 증가해 민주당의 주요 세력이 됐다.
지난 10월26일 미권스의 정 전 의원 헌정공연이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진행돼 이 같은 정 전 의원의 영향력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날 자리에는 민주통합당의 정세균, 안민석, 박영선, 이석현, 정청래, 진선미, 서영교, 김용익 의원과 문성근 상임고문,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박영선 의원은 지난 25일 정 전 의원이 출소할 당시에도 참석했다.
정동영계에 속했던 박 의원은 이후 손학규계로 분류됐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민주당에서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힘이 커진 박 의원은 특정 계파에 쏠리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
박 의원과 정 전 의원 사이에 정치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민주당 내 거부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정 전 의원의 정치행보에 대해 민주당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단 정 전 의원의 합류로 민주당은 긍정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평이다. 정 전 의원의 여당을 향한 ‘투사이미지’가 민주당의 계파갈등을 누그러뜨릴 것이란 해석이다. 정 전 의원이 민주당에 합류해 ‘박근혜 저격수’로 입지를 굳힐 경우 민주당과 정 전 의원이 동반상승 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 전 의원의 인기가 정치인과 연예인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별한 정치적 성과 없이 ‘입담’과 ‘적절한 시기의 수감생활’로 당권을 장악하기엔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수감생활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매사 겸손하게 생활하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한다. 정 전 의원이 진심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정치에 임한다면, 민주당 화합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우선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이후 대선 경선을 거치며 정치적 세력을 불릴 것이란 관측이다.
‘최고위원’ 거론돼
미권스, <나꼼수>, BBK 수감생활로 이어진 정 전 의원의 정치인생. 그간에는 사실 실보다 득이 많았다. 정 전 의원이 ‘다소 수월하게’ 얻은 국민적 기대에 그가 ‘야권 구원투수’로 화답할 수 있을지, 한순간의 인기로 막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는 요즘이다.
조아라 기자 <archo@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