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속도와 절차 사이, 사법 균형은 지켜질까

2025.12.24 08:45:28 호수 0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국회 통과가 남긴 과제

국회가 지난 23일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 이른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내란 혐의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 각각 설치하도록 한 법안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를 이유로 표결에 불참했고, 여당은 필리버스터 종료 이후 표결을 통해 법안을 처리했다.

법안의 취지는 명확하다. 국가 질서를 흔든 중대 범죄에 대해 신속하고 전문적인 사법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사회적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내란·외환과 같은 범죄는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정치·군사·헌정 질서 전반과 맞닿아 있는 만큼, 집중 심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일정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전담 재판’이라는 개념 자체보다 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사법부가 오랫동안 지켜온 무작위 배당 원칙은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특정 사건을 위해 별도의 기준을 설정하고 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식은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신중한 검토를 요구한다.


민주당은 당초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추천위원회를 통해 전담 법관을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위헌 논란이 제기되자 이를 철회했다.

최종안에서는 법원 내부 절차로 재판부를 구성하도록 수정됐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판사회의가 전담재판부 구성 기준을 마련하고, 사무분담위원회가 판사 배치를 정한 뒤 판사회의 의결을 거쳐 법원장이 보임하는 구조다. 형식적으로는 사법부 자율성을 존중한 설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무작위 배당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판부 구성의 작위성’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기준을 누가 어떤 방향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재판의 외관상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 신뢰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먼저 흔들린다.

이 점에서 대법원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대법원은 국회 입법과 별도로 내란·외환 사건 전담재판부 설치 예규를 마련했다. 무작위 배당을 유지한 채 배당된 재판부를 사후에 전담재판부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신속한 심리와 공정성 원칙을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법부 스스로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법률 제정을 선택했다. 법률은 예규에 우선하며, 결과적으로 대법원의 자율적 시도는 제한을 받게 됐다. 이는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 사이의 역할 경계에 대한 판단이 개입된 결과다.

입법부는 국민적 요구와 사안의 중대성을 이유로 들고, 사법부는 독립성과 기존 원칙을 강조한다. 어느 한쪽의 논리만으로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지점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라는 강경한 방식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배경 역시 이 같은 헌법적 우려에서 출발했다. 표현 방식과 정치적 메시지의 강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으나, 재판부 구성 방식이 장기적으로 남길 선례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가볍게 넘기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특별재판부나 특정 사건을 겨냥한 재판 구조는 늘 논쟁을 동반해 왔다. 신속한 단죄라는 명분은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흔들릴 경우 오히려 사법 신뢰를 약화시킬 위험도 안고 있다.

그래서 많은 민주국가들이 특별재판 제도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해 왔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법의 시행 과정이다. 사법부가 얼마나 엄격하고 절제된 기준으로 재판부를 구성할지, 정치권이 재판 과정에 추가적인 압박이나 해석을 덧붙이지 않을지, 그리고 국민이 이 과정을 얼마나 차분하게 지켜볼지가 중요해졌다.

정의는 속도와 함께 신뢰를 필요로 한다. 빠른 판단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 판단에 이르는 절차가 충분히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의 신뢰를 높이는 장치로 작동할지, 아니면 새로운 논쟁의 출발점이 될지는 이제 제도의 운영에 달려 있다. 사법의 균형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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