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자택에 침입한 흉기 소지 강도를 제압하고도, 집주인이 되레 피의자가 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가해자의 위협에 맞선 대응이었다 해도 그 과정이 과잉방위로 평가되면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배우 나나(본명 임진아)와 모친이 자택에 침입한 강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상해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구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4일 특수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된 30대 남성 A씨는 검찰에 송치됐다. 반면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나나 모녀가 취한 물리력 행사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입건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침해가 있었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들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봤다”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지난 15일 오전 6시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있는 나나의 자택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모녀를 위협하며 돈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당시 미리 준비해둔 사다리를 타고 베란다로 올라간 뒤, 잠겨있지 않았던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집 안에서 모친을 먼저 발견한 그는 목을 조르는 등 상해를 가했고, 비명을 듣고 잠에서 깬 나나와도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모녀가 A씨 팔을 붙잡아 넘어뜨리는 등 제압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나나의 모친이 부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은 뒤 의식을 회복했다. 나나 역시 상처를 입어 치료를 받았고, A씨도 몸싸움 도중 턱 부위 열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구리경찰서 관계자는 이날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당방위 판단 과정’에 대한 질의에 “구체적인 수사 상황은 언급할 수 없지만 임의적으로 판단된 것은 없다”며 “형법 제21조와 판례 등 법에 근거해 결정된 사항이며, 연예인 이슈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적인 사건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피의자가 나나 모녀를 쌍방으로 고소한 사실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제가 아는 선에서는 없다”며 “정당방위 판단은 고소 여부와 별개로 살핀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피의자가 입은 상해에 대해서도 나나 측의 책임 소지가 있는지 검토한 뒤, 정당방위로 결론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당방위 인정 기준과 피해자 보호 제도의 빈틈을 재점검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예인 사건’ 정도로 소비하고 넘어가 버리면, 일상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가 피의자 신세가 되는 시민들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사법기관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데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점도 이런 문제의식에 힘을 싣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형사정책연구’에 실린 논문에서도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2014년까지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고작 14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법원 역시 정당방위 인정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정당방위에 대한 법 조문은 비교적 단순하다. 형법 제21조 1항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해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방위 성립에는 ▲부당한 침해의 존재(부당성) ▲위협이 계속되고 있었는지(현재성) ▲상대방의 수단·공격 정도에 비해 방어가 과도하지 않았는지(상당성) 등이 요건으로 고려된다.
다만 상당성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피해자가 전기충격기 등 공격적 성격의 호신용품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방어를 위해 썼다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에선 이를 순수한 방어 목적이 아닌 공격 성격이 섞인 행위나 ‘싸움’의 일환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싸움의 경우 가해행위는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행위의 성격을 가지므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해 왔다.
또 다른 핵심 요건인 ‘현재성’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자기의 권리를 방위하기 위한 부득이한 행위가 아니고, 그 침해행위에서 벗어난 후 분을 풀려는 목적에서 나온 공격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흉기를 든 상대가 자택에 침입해 덤벼드는 상황에서도 흉기나 호신용품 등을 사용해 상대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상대가 이미 제압됐음에도 가해 행위를 계속했다면 과잉방위조차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정당방위 여부를 일일이 따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로 피해자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일명 ‘도둑 뇌사 사건’은 정당방위 논란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앞서 지난 2014년, 강원도 원주시 한 단독주택에 살던 20대 최모씨는 새벽에 귀가하던 중 거실 서랍을 뒤지던 50대 절도범을 발견해 몸싸움을 벌였다. 그는 상대를 넘어뜨린 뒤 주먹과 발, 그리고 바지 벨트 등 주변 물건을 동원해 범인의 등을 수차례 가격했다.
절도범은 이후 뇌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가 결국 숨졌다. 법원은 최씨의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나 과잉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되레 피해자가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 자체가 현행 제도의 허점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한 사람이 모든 상황을 따져가며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정당방위 인정 요건을 현실에 맞게 넓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형법 21조가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70여년간 문장을 다듬는 수준 변화만 있었을 뿐,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이 같은 의견에 무게를 더한다.
그렇다고 개정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정당방위의 요건 중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현재 또는 임박한 미래의 부당한 침해’로 바꾸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상대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상황처럼 공격이 실제로 개시되기 직전에도 시민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방위 개시 시점의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였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제21대 국회 당시 일명 ‘정당방위보장법’으로 불리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공격자 제압 과정에서 방어 행위가 다소 과해졌더라도 정당한 방어권 행사에 대해선 형을 감경·면제하도록 해 맞서 싸웠다가 오히려 처벌받는 상황을 줄이는 데 초첨을 맞췄다.
정당방위보장법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으며, 조 의원의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서 ‘범위 확장에 따른 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해당 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또 다른 일각에선 정당방위를 지나치게 폭넓게 인정할 경우 오히려 폭력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제3자가 ‘정의구현’을 명분으로 형사 절차를 건너뛰고 가해자를 폭행한 뒤, 장차 발생할 위협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며 ‘정당방위’를 내세우는 식의 사적 제재가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문제에 대해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 2014년 ‘형사정책연구’에 투고한 논문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 방안’에서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우리나라는 정당방위 인정 사례가 극히 적고, 법원에선 구체적인 판단 기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며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법 질서 수호의 원리보다 자기보호의 원리를 우선해 정당방위의 성립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정당방위 인정 범위를 좁게 본다면, 시민들이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가 어렵고, 억울한 피해자로 인해 국민 권리가 침해된다”면서도 “다만 정당방위를 빙자한 폭력은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나나는 이날부터 공식 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소속사 써브라임은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최근 사건으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겪었으나 팬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따뜻한 응원과 격려 덕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예정돼있던 광고 촬영 및 기타 스케줄은 변동 없이 진행될 예정이며 앨범, 화보집 등도 계획대로 이어가고 있다”며 “변함없는 응원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