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혀 절단 사건⋯검찰, 61년 만에 공식 사과

2025.07.23 17:17:19 호수 0호

재심서 최말자씨 무죄 구형
“대한민국 정의 살아 있어”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1964년,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받았다.



23일, 검찰은 오랜 세월 ‘가해자’로 낙인찍혀 살아온 최씨에게 공식 사과하며, 당시 사법기관의 판단이 명백한 잘못이었다고 인정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김현순 재판장) 심리로 이날 열린 재심 첫 공판 겸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증거 조사와 피고인 심문을 생략한 뒤 “본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폭행 피해자의 정당항 행위로써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검찰은) 차별적 편견을 걷어내고, 법률적 시각으로 범죄 사실을 판단해야 했다.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2차 가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할 최씨에게 (검찰이) 고통을 줬다. 사죄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검찰은 “이 사건은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정당한 방해 행위고, 과하다고 할 수 없으며 위법하지도 않다”며 “피고인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최씨는 만 18세였던 1964년, 성폭행을 시도하던 21세 남성의 혀를 깨물어 1.5cm가량 절단했다는 이유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가해 남성은 강간미수 혐의는 적용되지 않고, 특수주거침입·특수협박 혐의만 인정돼 더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최씨는 이날 최후 진술에서 “국가는 1964년 그날의 악몽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할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꼭 부탁하고 싶다”며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을 만들어달라고 두 손 모아 빌겠다”고 호소했다.

변호인단 역시 “이 사건은 시대가 변해서 무죄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무죄였던 사건이 당시의 성 인식과 사법 시스템의 한계로 잘못 판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호인들은 이번 재심을 통해 “검찰과 법원이 과거 세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듯, 변호인들도 선배 변호인이 남긴 미완의 변론을 이제 마무리하고자 한다”며 법원에 정의로운 판단을 촉구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던 최씨는 취재진과 자신을 응원하러 온 이들을 향해 “이겼습니다!”라고 외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최씨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이라도 (검찰이) 잘못을 인정하니,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를 위해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헌신해 주셔서 뭐라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너무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이 사건은 1995년 발간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수록되며 법조계 안팎에서 오랫동안 회자됐다. 특히 형법학 교과서 등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며, 형법상 정당방위의 해석과 한계에 대한 논의의 대표적 출발점으로도 자주 인용돼왔다.

최씨 사건과 비슷한 사건은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20년 부산 황령산에서도 발생했다. 다만, 이 사건은 피해 여성이 성폭행범의 혀를 피해 깨물자, 오히려 중상해 혐의로 여성을 고소했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성폭행범에게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사례 역시 정당방위의 경계와 성폭력 피해자 보호에 대한 기준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씨의 재심 선고공판은 오는 9월10일 열릴 예정이다. 대한민국 법조계가 과거의 왜곡된 정의를 바로잡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jungwon933@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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