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던 제46회 청룡영화상이 현빈·손예진 부부의 남·여우주연상 시상으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날 남우주연상은 <하얼빈>(감독 우민호)에 주연(안중근 의사역)으로 출연했던 현빈이, 여우주연상은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에서 ‘미리’를 연기했던 손예진이 각각 수상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솔직히 어제 청룡 여우주연상은 박지현 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그들만의 리그라…” “손예진 영화가 뭐가 있었죠?” “손예진, 현빈이 주연상을 받았다고요? 이해가 안 가네요” 등의 비토 목소리가 나왔다.
이렇듯 올해 청룡영화상 시상식을 두고 “한국 영화의 축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조명 뒤에서 드러난 것은 한국 최고 시상식이라는 간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타 이벤트 중심의 이해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다.
이번 시상식은 특히 손예진·현빈 부부의 ‘첫 동반 주연상 수상’이라는 기록으로 모든 장면을 덮어버렸다. 역사에 남긴다며 포장하겠지만, 많은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에게 이번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장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들의 수상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부부의 수상을 두고 ▲작품 <하얼빈> <어쩔수없다>가 올해 한국 영화계를 주도했는가? ▲두 배우의 연기가 올해 최고 수준이었는가? ▲두 배우의 수상이 영화적 평가 위에 서 있는가? 라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올 한해 국내 영화계를 빛낸 배우를 선정하는 데 있어 단순히 관객 동원 수나 영화 평점을 잣대로 들이댈 수는 없다. 다만, 어떤 기준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심사가 이뤄졌고 주·조연으로 나뉘어지게 됐는지 정도의 근거 정도는 제시해야 하지 않겠나?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이런 극적인 장면은 우연이 아닌, 미리 설정한 ‘쇼의 흐름’이라는 것쯤은 대부분 안다. 올해의 청룡영화상은 스스로 예능프로그램이자 스타 이벤트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수상 결과는 “청룡은 작품을 보지 않는다. 사람(스타)을 본다”는 하나의 메시지를 던졌다.
올해 후보군만 봐도 뻔하다. 스크린을 장악한 대형 제작사, 인기 배우, 비싼 예산, 광고로 도배된 영화. 이런 작품들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했고, 수상도 거의 그들의 몫, 그들만의 리그였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독립영화, 작은 영화, 새로운 얼굴, 모험적 시도다. 한국 영화 생태계를 다양하게 만들어온 원동력들이 시상식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왜? 흥행이 안 되니까, 스타가 없으니까,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이는 청룡영화상이 더 이상 ‘영화를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이나 심사 구조는 철저히 베일 뒤에 있다. 게다가 누가 심사했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설명조차 없다.
이쯤이면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만든 시상식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관객도, 영화인도 신뢰할 수 없는 시상식이라면 그 시상식의 권위는 종이 한 장만큼의 가치도 없다.
결국 청룡은 영화를 버리고 방송을 선택했다는 비판에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청룡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이유는 단순하다. 다름 아닌 시청률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를 불러야 시청률이 나오며, 부부 동반 수상 같은 이벤트가 있어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방송사 입장에서는 영화 예술보다 시청률이 중요하다.
이제 청룡영화상은 예술적 권위를 가진 영화제가 아니라 ‘연말 예능 특집’ 정도의 역할로 스스로 내려앉았다. ‘청룡’이라는 이름도 아깝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라 시상식이다. 영화인들의 노력과 성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올해도 뛰어난 영화는 많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도 많았다.
실제로 올해 개봉했던 국내 영화 최다 관객수 TOP5 작품은 <좀비딸> 563만명, <어쩔수가없다> 293만8283명, <히트맨2> 254만7598명), <승부> 214만6284명으로 확인된다. 이 중 <좀비딸>은 최다관객상을 받았으나 <히트맨2> <승부> 출연 배우들이 이름은 한 명도 호명되지 않았다.
이날 남우주연상 후보엔 박정민 <얼굴>, 설경구 <보통의 가족>, 이병헌 <어쩔수가없다>, 조정석 <좀비딸>이, 여우주연상 후보로는 송혜교 <검은 수녀들>, 이재인 <하이파이브>, 이혜영 <파과>, 임윤아 <악마가 이사왔다>가 각각 이름을 올렸으나 청룡은 현빈·손예진 부부를 선택했다.
진짜 문제는 그 성취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시상식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훌륭했고 영화인은 제 역할을 다했는데 정작 시상식이 제 역할을 못했다. 여기에 ‘사상 처음’이라는 부부 동반 수상은 이번 시상식이 더 이상 ‘예술 평가’가 아니라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청룡영화상이 다시 일어서고 싶다면 ‘우리는 영화제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청률 쇼를 하고 있는가?’라는 최소한의 질문이라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지금의 청룡영화상은 후자에 가깝다. 안타깝지만, 이 같은 사실을 부정할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한다’는 청룡의 취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