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서울 신라호텔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관련한 국가 행사 일정을 이유로 일부 예비부부의 결혼식 예약을 취소했다가 다시 번복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신라호텔은 당초 오는 내달 31일부터 11월 초까지 결혼식을 예약한 고객들에게 “국가 행사가 예정돼있어 부득이하게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며 취소를 통보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중국 측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서울 체류를 염두에 두고 호텔 전체 대관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신라호텔이 즉각 내부적으로 수주를 결정하고 예비부부 8쌍의 예식을 취소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측이 지난 27일 돌연 대관 취소를 통보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신라호텔은 이날 해당 고객들에게 “희망하는 경우 원래 일정 또는 변경된 일정대로 예식을 진행할 수 있다”고 다시 안내했다.
하지만 이미 취소 통보를 받은 예비 부부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결혼식 이전에 일명 ‘스드메’로 불리는 웨딩 촬영, 헤어·메이크업 예약, 드레스 투어 등 예약도 얽혀있어 예비 부부들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또 결혼 준비는 일반적으로 1년 전부터 시작하는데, 수요가 많은 예식장의 경우 2년 전부터 예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라호텔 역시 가격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많아 최소 1년 전 예약 확정이 요구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알려지자 곧장 이재명 대통령의 ‘호텔경제학’을 소환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실제 중국이 예약하고 돈이 들어온 것은 아니”라며 “호텔 신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고 위약금을 물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이재명 대통령은 웃고 있을 것”이라며 “호텔경제학에 따르면 중국 예약 취소 탓에 결혼식과 객실은 취소됐어도 활기가 돌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실상은 활기는커녕 국민의 짜증과 분노만 도는 게 공산 독재 호텔경제학의 민낯”이라며 “이게 바로 이재명정부 경제관이고 민낯”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성일종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중국에 ‘셰셰’한 결과는 ‘노쇼’”라며 “중국 정부는 우리 대한민국에 엄청난 피해만 줘놓고 돌연 예약을 취소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열심히 중국에 ‘셰셰’해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며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던 ‘호텔경제학’이 바로 이런 것이었느냐”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외교·안보 라인 담당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청신 차려야 한다”며 “한미동맹을 저버리고 중국에 ‘셰셰’하는 전략을 세웠다면, 최소한 중국으로부터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할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도 “호텔경제학 수준의 경제 상식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걸 보면 관세 협상이 성공할 이유가 없다”며 “대한민국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텔경제학은 이 대통령이 지난 5월16일 전북 군산 대선 유세 현장에서 언급하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소비자가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을 낸 후 숙박 없이 환불받아 실제 투입된 돈은 없더라도, 예약금 10만원이 인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거치면서 경제가 선순환되면서 경기가 진작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호텔 주인은 명백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므로 이른바 ‘무한루프 선순환 구조’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국정감사에서도 이번 사안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부진 신라호텔대표와 박상오 호텔운영 총괄부사장을 증인으로 신청하며 책임 소재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신라호텔 측은 국가 행사 성격이나 구체적 대관 요청 주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시 주석이 APEC 정상회의 참석 뒤 서울에서 한중 정상회담 등을 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신라호텔이 중국 측의 유력 숙소로 지목돼온 사실이 파문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앞서 취소된 11월 결혼식은 예정대로 가능하다”면서도 “’국가적 행사‘다 보니 자세한 정보는 모르고 취소를 진행하는 예비 부부들에 대한 위약금은 현재 개별적으로 상담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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