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범죄학>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이윤호 교수
2025.09.08 13:12:00 호수 1548호

흔히들 범죄 피해라고 하면 신체적 손상, 물질적 손실과 같은 눈에 보이는(Tangible) 것들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Intangible) 피해도 상당하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직접적 피해와 간접적 피해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1차, 2차 피해로도 구분한다.



그러나 최근 공중 협박의 범죄나 스토킹이나 교제 폭력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한 형사사법 당국의 대응에서 너무나 단편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아쉬움이 더 큰 피해를 초래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백화점이나 야구장이나 전철역이나 다중 이용시설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등의 공중 협박 범죄가 빈발하고 있고, 이를 반영하듯 지난 3월부터는 공중 협박 범죄를 규정하는 특별법이 새롭게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결과적으로 입법 전이나 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공중 협박은 여전히 빈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여기에는 공중 협박이나 기타 관계성 범죄에 대한 숨겨진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눈에 보이는 범죄 피해만 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는 그 존재부터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는 주로 비용을 중심으로 하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영향을 피해자에게 가한다. 이는 살인이나 폭력의 범죄처럼 인명 살상이라는 극단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그로 인해 초래되는 영향, 주로 재정적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적 손상이나 감정적 외상으로 인해 직업이나 직장을 유지할 수 없어 생기는 소득의 손실, 부상이나 치료, 재활 등의 의료비용, 손상되거나 손실된 물품의 수리와 대체 비용, 관계성 범죄의 재범을 피하기 위한 거주 이전 비용, 각종 법률 비용, 그리고 추가로 요구되는 보안 경비 등이 대표적인 가시적 피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는 대체로 경제적, 재정적 피해보다는 개인적, 감정적, 정신적, 심리적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범죄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한다. 이는 범죄로 야기되는 직접적인 신체적 고통, 정신적 괴로움(Anguish) 그리고 감정적 피해(Toll)를 말한다. 분노, 우울, PTSD 등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결과인 트라우마와 정신 건강 문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피해이다.

대부분 관계성 범죄가 그렇듯이 피해자는 안전하지 못하고,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손상과 해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겪게 된다.

아마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유형의 범죄 피해로 인한 영향의 결정체는 이렇게 다양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피해의 심각성과 두려움으로 인하여 초래되는 행동과 일상의 변화, 그로 인한 삶의 질의 저하가 아닐까 싶다.

범죄의 두려움으로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 삶의 모습이 아니며, 이처럼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경우는 범죄 말고는 없지 않을까 한다.

그 밖에도, 어쩌면 더 심각한 보이지 않는 범죄 피해가 있다면, 신뢰의 상실, 불신 풍조의 도래일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잔인하게 바라보는 ‘잔인한 세계관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을 가지게 되는 그런 세상은 너무나 무섭지 않은가?

사법제도와 법률은 어떤 범죄라도 죄에 상응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죄라고 하면 당연히 범죄로 인하여 초래되는 피해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법은 범죄 피해에 상응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법제도와 법은 죄의 피해와 그 영향에 아직도 눈에 보이는 피해와 영향만 고려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공중 협박을 법률적으로 재단하면서, 피의자가 애당초 폭파라는 범행을 실행할 의도가 없었다고, 결과적으로 인명 살상이나 재물의 손상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이유로 아예 처벌되지 않거나 지나치게 가볍게 처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공중 협박의 범죄는 경찰력의 낭비와 기업의 영업 손실 등 눈에 보이는 피해도 적지 않지만, 테러범의 궁극적 동기가 사회의 불안과 공포의 조장이듯 공중 협박은 시민과 사회의 불안, 불신, 공포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피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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