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외 일 경험 사업 ‘내정자’ 선발 의혹

2025.08.27 07:13:18 호수 1546호

공고 전 사전 모집?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해외 일 경험 지원사업을 둘러싸고 일부 운영기관이 정식 공고 전에 ‘사전 모집’을 진행해 내정자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년 누구나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미 누군가 꿰차고 앉은 사실도 모른 채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청년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해외 일 경험 지원사업(WELL·Work Experience Learning Ladder)은 고용노동부가 지원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이하 산인공)이 주관하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정책의 한 축으로 추진하는 사업으로, 청년들에게 해외 기업에서 일정 기간 직무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해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고, 귀국 후 국내외 취업의 발판을 마련하도록 지원한다.

취업 발판

사업 구조는 정부가 예산을 배정하면 산인공이 운영기관을 선정하고, 선정된 운영기관은 운영 지원금을 받는다. 해외 기업과 협약을 맺어 직무 자리를 확보하고, 참가자 모집부터 교육·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운영기관 대상으로는 다양한 기관이 있지만, 대체로 대학교가 선정된다.

대학이 운영기관으로 선정되면, 실무의 상당 부분은 민간 에이전시가 맡는다. 대학은 운영기관으로서 책임을 지되 실제 해외 기업 섭외나 현지 관리 업무는 경험이 많은 민간 에이전시에 맡기는 방식이다. 외형상으로는 대학이 주관하지만, 실무의 상당 부분은 에이전시가 담당하는 형태다. 이들은 청년 관리, 해외 기업 매칭을 맡는다.

이 같은 협업 구조는 사업 운영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마련된다.


참여 청년 모집 절차는 산인공이 운영하는 월드잡플러스(이하 월드잡) 사이트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공고문에도 이 같은 절차가 명확히 명시돼있다.

2025년도 운영기관 모집 공고문에 따르면 ‘참여 청년은 반드시 월드잡에 게시된 공고에 지원해야 하며, 별도 운영기관이 운영하는 시스템·메일 등을 통한 모집 및 지원 절대 불가’라고 규정돼있다. 이는 운영기관이 자체적으로 선발 절차를 진행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일부 운영기관이 정식 공고 이전에 이미 사전 모집을 통해 내정자를 확보한 사실이 확인됐다. 실제 한 청년은 에이전시가 먼저 사람을 뽑은 뒤, 나중에 월드잡에도 신청을 해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제보자는 “운영기관을 통해 먼저 선발된 뒤, ‘이제 월드잡에도 신청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실제 에이전시 관계자와 청년이 나눈 카톡 대화방에는 “일 경험 지원금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약속이 오갔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라는 안내가 아닌 ‘내정자’를 만든 뒤 뽑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미리 합격자 뽑아 놓고…
월드잡에 형식적으로 지원

이는 공식 절차를 통해 선발해야 한다는 사업 규정과 달리, 내부적으로 이미 선발자를 정해둔 뒤 형식적으로 지원 절차를 밟게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전 모집이 있었다면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하다. 다른 청년들은 월드잡에 공고가 게시된 뒤에야 지원하는데, 특정 인원을 먼저 확보했다면 경쟁 기회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모집 정원이 한정돼있는 상황에서 일부가 사전에 자리를 선점한다면, 정식절차를 따르는 다른 지원자는 영문도 모르고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다.

해외 일 경험 지원사업은 경쟁률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참가자 1인당 수백만원의 재정 지원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지원자들이 몰리고, 한 해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다.


참가자는 2~4개월간 해외 기업에서 직무를 수행하며, 정부는 준비금·체재비·수료금 등 다양한 형태의 재정 지원을 제공한다. 미국에서 4개월간 근무할 경우 최대 900만원, 프랑스는 600만원, 일본은 500만원 수준의 지원이 이뤄진다. 한 명당 수백만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가 자격도 명확히 정해져 있다.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이 대상이며, 군 복무를 마친 경우에는 만 39세까지 지원이 가능하다. 어학 성적도 요구된다. 영어권 국가는 TOEIC 600점, IELTS 5.5 이상, 일본은 JLPT N3 수준이다. 또 최근 3년간 정부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경우 중복 참여가 제한된다.

참가 절차는 ▲월드잡플러스 공고 확인 ▲서류 심사 ▲면접 ▲최종 선발 순으로 진행된다. 합격자는 출국 전 25시간의 직무·소양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현지에서 2~4개월간 직무 체험을 수행한다. 귀국 후에는 최대 12개월 동안 사후관리가 이뤄지고, 취업 연계 지원도 제공된다.

“지원금 받을 수 있다”
에이전시 관계자 약속

이 같은 정식 절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모집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사업 신뢰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제보자는 “운영기관이 미리 인원을 확보해두는 건 결국 내정자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정식 공고가 뜨기 전에 사람을 뽑고, 이후 월드잡 지원을 형식적으로 받는 방식은 정당한 절차를 거친 지원자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운영기관 모집 공고문에서도 공정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공고문에는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이 확인된 경우 선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전 모집은 이 조항과도 충돌할 소지가 있다.

일 경험 참가를 준비하는 청년 입장에서는 이 같은 사전 모집이 특히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원자는 어학 시험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대비 등에 수개월을 투자한다. 실제로 한 청년은 ‘TOEIC 시험에만 여러 번 응시해 수십만원을 썼는데,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허탈했다’고 토로했다.

운영기관이 사전 모집을 시도하는 데에는 구조적 배경도 있다. 대학은 운영기관으로 선정될 경우 인원 달성도(개시율)와 관리 실적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성과가 낮게 평가돼 이후 재선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많은 인원을 확보해 연결을 성사시키면 운영 지원금도 늘어나고, 학교 차원에서는 ‘글로벌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는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대학들이 정식 공고 이전에라도 인원을 확보하려는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편, 제보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산인공에 민원을 넣었다. 이에 산인공 해외 일 경험 운영부는 해당 문제에 대해 사전 모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불어 답변을 통해 제제 조치도 예고한 상태다.

짜고 쳤나

이와 관련해 산인공 담당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운영기관이 자체적으로 모집 통로를 통해 합격자를 내는 경우는 사전 모집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모집 정황이 있다고 해도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사전 모집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만약 부정한 방법으로 모집이 이뤄졌다면 제재위원회 상정 후 제재 수위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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