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진법사’ 전성배씨 집에서 나온 현금 다발은 띠지까지 그대로 붙어있는 ‘관봉권’이었다. 이 돈이 어디서 왔는지 추적할 유일한 단서, 바로 그 ‘띠지’. 그런데 검찰이 그걸 “직원 실수로 버렸다”고 한다. 증거를 실수로 버렸다는 이 말을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증거인멸 의혹을 키우고 있는 일명 띠지 분실을 들여다봤다.
검찰이 건진법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돈다발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증거물인 관봉권 띠지 등을 분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 씨 자택에서 현금 1억6500만원을 확보했다. 그중 5000만원 신권은 한국은행 관봉권이었다.
서울남부지검은 직원이 현금을 세던 과정에서 관봉권을 묶어둔 지폐 띠지와 스티커를 잃어버렸다고 밝혔다. 띠지와 스티커에는 관봉권의 출처를 알 수 있는 지폐 검수 날짜와 담당자, 부서 등의 정보가 기재돼있다. 수사기관은 통상 띠지 등에 적힌 정보를 토대로 돈의 출처를 역추적한다.
수사 과정에서 핵심 단서를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했지만, 서울남부지검은 감찰도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은 해당 직원이 띠지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찰은 결국 전씨 집에서 발견된 현금 출처를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을 ‘김건희 국정 농단’ 특검에 넘겼다.
‘띠지’가 단순한 종이 포장지가 아닌 이유
사건의 핵심을 이해하려면 관봉권과 띠지가 뭔지 알아야 한다. 관봉권(官封券)은 한국은행이 돈을 발행해 시중은행으로 보낼 때, 검수를 마쳤다는 의미로 정부(한국은행)의 이름으로 봉인한 돈다발을 말한다. 비자금이나 뇌물 사건에서 돈의 출처를 밝히는 결정적 증거로 쓰인다.
띠지(관봉 띠)란 바로 이 관봉권을 묶는 종이 띠다. 여기엔 돈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정보가 담겨있다. 언제, 어떤 기계에서, 누가 검수해서 내보냈는지 알 수 있는 고유 코드가 찍혀있다. 즉, 띠지만 있으면 돈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할 수 있다.
결국 검찰이 잃어버렸다는 띠지는, 5000만원의 출처를 밝힐 사실상 유일한 ‘스모킹 건’이었던 셈이다.
이게 없어졌다는 건, 그 돈이 그냥 ‘출처 불명의 현금’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수사의 심장이 멎은 것과 같다.
검찰의 황당한 변명 “단순 실수였다”
사건의 타임라인을 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2024년 12월: 남부지검, 건진법사 은신처에서 관봉권 5000만원 확보
2025년 4월 말: 검찰, 띠지가 사라진 사실을 인지. 이때 돈은 노란 고무줄로 묶여 있었음
2025년 8월 18일: 언론 보도로 사건이 알려짐
남부지검은 4개월 동안 이 중대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언론에 나오니 마지못해 "직원이 돈을 세다가 실수로 버렸다“고 해명했다.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핵심 증거물을, 그것도 봉인된 상태 그대로 보관해야 할 증거물을 직원이 마음대로 뜯어서 띠지를 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심지어 당시 남부지검장은 “수사 중 감찰은 부적절하다”며 감찰도 보류했다고 한다. 제 식구의 중대 과실, 혹은 범죄 행위를 덮어주려 한 건 아닌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수’ 아닌 ‘의도’라고 보는 이유
이 사건을 ‘단순 실수’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명백하다. 첫째, 증거 관리의 기본을 무시했다. 압수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철칙이다. 특히 돈의 출처가 중요한 사건에서 관봉권 띠지는 그 자체로 증거물 1호다. 이걸 실수로 버린다는 건, 형사가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칼자루를 "실수로 닦아버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둘째,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남부지검장은 소위 찐윤(진짜 윤석열) 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과거 건진법사 영장이 부실하게 청구되어 기각됐을 때도 수사 의지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벌어진 ‘띠지 분실’은 윗선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적 증거인멸, 즉 수사 사보타주라는 합리적 의심을 낳는다.
셋째, 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다. 왜 굳이 띠지를 없애야 했을까? 그 돈의 출처가 드러나면 곤란한 누군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대통령실 특활비’ ‘김건희 여사 돈 창고’ 같은 온갖 추측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검찰 스스로 의혹을 키운 셈이다.
이미 법은 만들어졌다, 이제 집행할 시간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드디어 브레이크 없는 검찰 권력을 제어할 최소한의 수단이 생겼다. 지난 6월, 법무부 장관이 직접 검사의 징계를 청구하고 징계 종류에 ‘파면’까지 포함하는 검사징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법무부 장관은 증거를 인멸한 검사, 수사를 뭉갠 검사를 직접 징계위에 세우고 가장 강력한 징계인 파면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건진법사 띠지 분실 사건은 이 새로운 법의 첫 번째 시험대가 돼야 한다. 국민적 의혹의 중심에 선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개정된 법의 칼날을 얼마나 엄정하게 적용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법을 만들었으면 반드시 집행해야 한다. 집행되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라, 그저 폼(form)일 뿐이다.
<hntn11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