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새 대통령에 바란다 - 진형식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상임대표

2025.05.26 14:33:37 호수 1533호

“대통령 직속 소통 채널 원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수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곳곳서 마이크와 확성기를 들지만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늘 다음으로 밀린다. 쉽게 지워지는 목소리에 실망하면서도 “다음 정권은 다르겠지”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자립이란 단순히 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주도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자립이라 부를 수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이하 한자연)는 장애인이 시설이나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사회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가는 삶을 목표로 한다. 다음은 진형식 한자연 상임대표와의 일문일답.

-간단한 센터 소개를 부탁한다.

▲한자연은 장애인의 자립을 실현하기 위해 전국 116개 자립생활센터가 연대해 만든 조직으로 2006년 출범해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가 없는 데서 우리를 논하지 말라”는 당사자 결정권 존중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우리가 결정하고, 또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당사자주의를 표명하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자립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립은 물리적으로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스스로 삶을 결정하고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돼야 하며 이는 인권의 핵심이다.


자립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을 바꾸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곧 사회 전체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넓히는 길이며 사회 통합의 실질적인 계기가 된다.

-장애인이 자립하는 데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장애인 관련 복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전반적으로 주거, 일자리, 이동권, 돌봄 인프라 등이 부족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 지원제도는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아 모두에게 합리적인 활동 지원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주거 불안정도 문제다. 자립을 위해 독립적인 주거 공간은 필수지만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수는 제한적이고 입주 자격 요건도 까다롭다. 민간 임대시장에서는 장애인을 꺼리기도 한다.

“우리도 세금 내고 싶다”
갈 길 먼 장애인 노동권

-유독 취약하다 느끼는 권리가 있는가?

▲단연코 노동권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시급을 받는 분들이 대다수다.

우리도 세금 내는 장애인이 되고 싶은데, 교육권, 의료권 등이 보장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다. 장애인 가족 3인 가구가 살 때 필요한 비용은 약 450만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저시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우니 오히려 기초생활 수급자를 선택하는 분들도 계신다. 일하면 복지 급여가 깎이는 모순된 제도 구조도 자립 의지를 꺾고 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장애인도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중증장애인은 병원에 가고 싶어도 이동이 불편해 10번 가야 할 것을 5번, 3번밖에 못 간다. 그렇다 보니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생명이 단축된다.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는 평균 수명이 55세 정도다. 그런데 지금 국민연금은 어떤가? 65세가 돼야 받는다. 장애인에 대해서는 조기 수령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되면 좋겠다.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배분 방식을 다시 고민하는 것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효과적이라고 느낀 장애인 정책이 있었나?

▲장애인은 항상 열외 대상이라 느낀다. 지난해 정부가 2025년 장애인 복지 예산으로 126조를 책정했는데, 당사자가 느끼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복지 비용 126조원 편성됐지만…
“당사자 느끼지 못하면 무쓸모”

우선 정부가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만들면 시설에 대한 예산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예산을) 안 올렸어요”라고 하면 복지부는 “올렸는데 기재부서 잘랐어요” 하는 식으로 핑퐁 게임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달 20일 장애인의 날에 자립생활 대회를 열었는데 정부는 “6·3 선거 이후에 보자” 이런 식으로 논의를 미뤘다. 정부와 제대로 된 소통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지 못하는 정책만 시행되고 이상한 곳에 돈이 쓰이는 것이다.

진보가 됐든 보수가 됐든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혜택을 받는 정책을 만들면 좋겠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있을까?

▲‘국가장애인위원회’ 같은 대통령 직속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 정부와 장애인 단체를 잇는 컨트롤 타워가 마련돼야 한다. 정책은 ‘대상자’가 아닌 ‘주체’와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처럼 대통령 직속인 소통 채널이 꾸려진다면 부서 간 칸막이를 부수고 합의를 통해 합리적인 예산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

-끝으로 새 정부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앞서 말한 소통 창구, 컨트롤타워와 더불어 유니버설 디자인이 상용화되면 좋겠다. 남녀노소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약속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실행되는 정권이 되길 바란다. 예산을 핑계로 미루지 않고 정권 초기부터 장애인 정책을 국정 과제 핵심에 포함시키는 등 전 부처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는 특별한 게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다. 다음 정부는 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말이 아닌 실천으로 증명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hypak28@ilyosisa.co.kr>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